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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는 잡았고 환율 꼬리는 놓쳤다

대마는 잡았고 환율 꼬리는 놓쳤다

1월 3일 서울 G20 정상회의가 개막하기 일주일 전. 미 FED(연방준비제도)는 내년 6월까지 6000억 달러를 풀어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환율전쟁의 휴전을 이끌었던 이른바 ‘경주 합의’가 무색해지는 상황. 10월 23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선 “환율을 시장에 맡기겠다”고 합의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미국이 합의를 깬 것이다. 불과 보름 만에 찾아온 위기였다. 환율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서울 G20 정상회의가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컸다.

로이터통신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전개될 환율전쟁은 미국과 G19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갈등 초래를 암시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서울 선언문 조율과정은 진통의 연속이었다. 서울 G20 정상회의에 앞서 G20 재무차관(8일)·셰르파 회의(9일)가 열렸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공식 개막된 11월 11일 오후까지도 그랬다.

경주에서 합의된 ‘경상수지 예시적 가이드라인’ 방안을 둘러싼 논의도 지지부진했다. 갑론을박이 거듭됐다. 이 방안은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는 경상수지를 환율의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주요 수출 흑자국 중 한 곳인 독일의 반발이 가장 심했다. “독일 환율은 유로중앙은행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경상수지를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맞불을 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경상수지 예시적 가이드라인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상수지 예시적 가이드라인의 제안국은 미국. 독일과 미국은 마주 보고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처럼 충돌할 태세였다.

이런 위기를 해소한 주인공은 서울 G20 정상회의 의장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그는 “각국 정상의 양보”를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후 각국 정상의 분위기는 점차 누그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G20 준비위원회 김윤경 대변인은 “환율문제가 긍정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그제야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의장국 한국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된 사례다. 아쉽게도 환율 합의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말이다.



한국 의장의 일침 “각국 정상, 양보하라”시계를 거꾸로 돌려 서울 G20 정상회의 개막 1년 전. MB 정부는 한국이 의장국에 등극했음을 크게 선전했다. 물론 가치는 대단했다. G7을 제외한 국가 중 첫째 의장국.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최초였다. 하지만 많은 경제 전문가는 우려했다. 이유는 대략 이랬다. “G20 회원국의 공조를 제대로 이끌어야 하는데 각국의 이해관계가 제각각이다. 특히 G2(미국·중국)가 환율문제로 충돌하고 있어 걱정이다. 의장국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간 한국 리더십이 흠집 날 수 있다. 국제공조와 우리의 국익이 충돌할 땐 ‘의장국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

다행스럽게도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G20 정상회의 좌장 역을 수행한 한국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다. 이견은 있지만 “괜찮았다”는 평이 적지 않다. 특히 우리가 직접 세팅한 어젠다 ‘서울 이니셔티브(개발과 글로벌 안전망)’ ‘서울 컨센서스(후진국 공동 성장)’의 합의를 이끌어낸 건 최고의 성과로 남을 만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앙헬 구리아 사무총장은 “한국의 경험이 다른 국가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극찬했다.

서울 이니셔티브 합의는 많은 걸 바꿀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가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IMF(국제통화기금)의 금융시스템. 일단 재원이 두 배로 늘었다. 국제금융시장 불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대출 문턱도 낮췄다. 위기 전 대출해주는 PCL(예방대출제도)을 신설했고, 우량국 한 곳에만 조건 없이 대출하는 FCL(탄력대출제도)을 확대 개편했다. 그 결과 공통 위기를 겪는 여러 나라가 (IMF로부터) 동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IMF의 예방 기능이 강화된 것이다. CMI(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등 지역 안전망이 IMF와 협력할 수 있는 길도 활짝 열렸다. 내년 11월 열리는 프랑스 칸 G20 정상회의에서 구체 안이 논의된다.

IMF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유럽 중심 지배체제의 종식이다. 역시 요지부동이었던 IMF의 쿼터(출자할당액)가 변했다. 선진국 지분 6%를 신흥·개발도상국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6위였던 중국은 3위로, 한국은 18위에서 16위로 뛰어올랐다. 인도·러시아·브라질은 10위권 안에 진입했다. 신흥국의 IMF 내 지위가 크게 상승했다는 얘기다. 유럽국 이사직 2개도 신흥·개도국에 이전했다. IMF 역사상 가장 획기적 개혁이다.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잘 수행한 결과다.

‘다 함께 성장을 위한 서울 컨센서스’가 확정된 것도 알찬 결실이다. 개도국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서울 컨센서스는 단순 원조를 지향하지 않는다. 개도국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 마련이 목적이다. 행동방안은 구체적이다.

‘선진국은 무역장벽을 개방하자’ ‘(개도국에서) 수입하는 물품관세를 없애 수출 성장 기회를 주자’. 이 방안은 1980년대 말 빈곤국에 자유시장 도입을 촉구했던 미국 워싱턴 컨센서스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행동방안은 엄격한 재정규율, 규제완화, 민영화였다.

서울 컨센서스의 합의로 한국은 두 가지 성과를 올렸다. 국제 리더십을 확보하는 한편 NON-G20 국가의 신뢰도 받았다. G20 국가의 GDP 비율이 전체의 85%에 달하지만 NON-G20 국가는 170개에 달한다. 우리가 놓쳐선 안 될 국가들이다. 이 대통령은 “코리안 컨센서스의 합의로 세계경제는 균형발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G20 정상회의에선 글로벌 금융규제도 강화됐다. 2008년 글로벌 불황을 초래한 리먼 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데 G20 정상들은 뜻을 모았다. 초점은 은행 규제에 맞춰졌고, 이른바 바젤3가 도입됐다. 바젤3는 세계은행의 자본적정성 기준이었던 바젤2를 대체하는 새로운 틀. 자본규제 강화, 유동성·레버리지 비율 도입 등으로 요약된다.

먼저 자본규제 강화다. 은행의 최저 보통주 자본비율을 2%에서 4.5%로, 4%인 최저 기본자기자본비율은 6%로 올리기로 했다. 손실보전 완충자본비율 2.5%도 추가됐다. 이를 적용하면 보통주 자본비율은 7%, 최저 기본자기자본비율은 8.5%로 증가한다. 경기대응 완충자본제도 또한 도입됐다. 신용 증가 속도가 빨라지면 은행 스스로 추가 자본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과열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자본규제는 2013년부터 국가별로 시행된다.



서울 컨센서스 합의로 NON-G20 끌어안아유동성 비율과 레버리지 비율 규제도 새로 생겼다. 단기 유동성 비율은 30일 이내에 빠질 돈보다 같은 기간 입금량을 많이 보유해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는 제도. 기준일을 장기로 설정한 게 중장기 유동성 비율이다. 레버리지 비율은 차입 한도를 제한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쉽다. 최저 기본자기자본비율을 3%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SIFI(중요한 글로벌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체계도 마련했다. 추가자본부과, 조건부자본, 채권자손실부담제도가 주요 규제다. 추가자본부과는 SIFI로 지정된 은행에 자본을 더 쌓도록 하는 방식이다. 조건부자본은 은행이 생존하기 어렵다고 감독당국이 결정하거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경우 하이브리드채권과 후순위채를 은행 보통주로 강제 전환하거나 계획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채권자 손실분담제도는 위기 시 은행의 선순위 무담보 채권을 보통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SIFI 회사의 기준과 수 등은 내년 상반기 중 결정될 예정이다.

무역 분야에선 DDA(도하개발어젠다) 협상을 조속하게 타결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내년이 협상 타결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며 “막판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호주의를 배격하고 자유무역주의를 확대한다는 G20의 뜻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비록 선언적 의미지만 부패척결도 밝혔다. 부패를 뿌리 뽑고 투명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9개 분야에서 구체적 행동계획을 수립했다.

글로벌 핫이슈였던 환율문제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작은 합의점을 찾았다. G20 정상들은 글로벌 불균형을 초래하는 환율 왜곡문제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환율은 시장이 결정하고, 경제 기초체력을 반영해 (환율의) 유연성을 늘린다’는 원칙을 정해 국가별 운신의 폭을 넓혔다. ‘경상수지 예시적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 일정도 구체적으로 잡혔다. G20 정상들은 먼저 환율을 적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종합지수’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IMF가 아닌 G20 실무그룹에서 제정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구체적 지수를 만들고,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경과를 논의한다. 이후 칸 G20 정상회의에서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IMF ‘조기경보체제’를 가동하기로 한 건 새로운 시도다. 조기경보체제는 경제지표에서 경상수지의 과도한 불균형이 감지되면 각국에 통보해 상호 감시하는 것이다. 환율문제가 의제로 채택된 건 서울 G20 정상회의가 처음이다. 지난 6월 캐나다 정상회의에선 중국의 거센 반대에 부닥쳐 환율 논의를 못 했다. 이런 맥락에서 환율문제를 서울에서 처음 다루고, 그 공을 프랑스 칸에 넘긴 건 실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아쉽지 않다는 건 아니다. 환율문제는 서울 G20 정상회의의 핵심 이슈였다. 외신들은 G20 정상회의를 보도하면서 환율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일부 외신은 ‘최후의 무역전쟁 담판’ ‘통상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경상수지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가 서울 G20 정상회의의 초점”이라고 보도했다. G20 정상회의 최초로 환율문제를 다뤘다는 점을 감안해도 완전히 종식하지 못한 건 아무래도 아쉽다. 합의문 곳곳에 예외를 인정하는 문구가 삽입돼 환율 갈등의 씨앗을 남겼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G20 성과와 과제, 냉정히 짚어야서울 G20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 외신은 냉랭한 반응을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경주 선언과 비교했을 때 큰 진전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G20 정상들은 견해 차이로 글로벌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목표를 합의하지 못했다”며 꼬집었고, AFP 통신은 “중국의 강력한 반대 탓에 과감한 대책을 만들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평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아쉬움을 준다. 언급했듯 서울 G20 정상회의에선 효율적 글로벌 안전망을 구축했다. 금융규제안이 강화됐고, IMF의 변화도 이끌어냈다. NON-G20 국가를 파트너로 삼았다. 동아시아 최초 의장국으로서 정상회의를 무리 없이 치렀음은 물론이다. 이런 성과가 환율 이슈에 묻혀 조명 받지 못하는 것이다. G20 준비위 관계자는 “환율전쟁에 시선이 몰려 다른 성과의 빛이 바랬다”며 안타까워했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 하면 북한이나 북핵 문제를 먼저 떠올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결정적 원인이다.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한 G20 정상은 물론 외신기자들은 화려한 서울의 모습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이 분위기가 곧장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국격(國格) 상승의 발판이 마련됐다. 세계 주요국의 좌장 역할은 이제 끝났다. G20 정상회의는 수많은 과제를 남겼다. 서울 G20 정상회의의 성과와 과제를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 그래야 진짜 좌장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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