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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컬럼] 배추 파동이 남긴 교훈

[심상복 컬럼] 배추 파동이 남긴 교훈

서민을 위한다는 언론 보도가 때로는 그들에게 더 고통을 줄 때도 있다. 일만 터지면 정부를 욕하는 행태도 도움이 안 된다. 역설 같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해결책이 될 때도 있다.
▎심상복 포브스코리아 대표·발행인

▎심상복 포브스코리아 대표·발행인

불과 달포 전인 10월 초, 나는 이 나라가 배추 파동으로 거덜나는 줄 알았다. 언론들은 뛰는 배추 값을 생중계하다시피 했다. 한 포기에 1만원을 넘어서자 김장이 큰일이라며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그 덕에 배추 값은 1만5000원까지 찍었던 모양이다. 걱정하던 김장철이 왔다. 하지만 조용하다. 지역별로 차이는 좀 있겠지만 요즘 배추 한 포기는 2000원 안팎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어느 언론도 반성문을 쓰는 곳은 없다.

배추 소동은 약 3주 만에 잦아들었다. 추석 직전 큰비가 자주오면서 출하가 제때 안 됐던 게 일시적으로 수급 애로를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일반 가정의 김치 수요는 갈수록 줄고 있다. 사다 먹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설재배로 배추를 대신할 다른 야채도 많이 생산되는 요즘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과거의 잣대로 타성적으로 보도했다. 재배 면적이 작년보다 얼마나 늘었는지 줄었는 지에 관한 분석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양태는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평소 배추를 잘 먹지 않던 사람들까지 시장으로 내몰았다. 값을 더 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얘기다. 표피적인 보도와 3주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을 드러냈던 셈이다. 게다가 좌파 언론들은 4대 강 공사로 인해 경작지가 줄어든 것이 문제의 근원인 양 몰고 나갔다. 배추를 비롯한 야채 값 파동 보도는 언론의 단골 소재다. 값이 오르면 도시 서민에 초점을 맞추고, 떨어지면 농민 입장에서 기사를 쓴다. 식탁경제인 데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까지 더한다. 하지만 농산물은 공급이 달린다 해서 밤새 공장을 돌려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소나기 보도는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한다. 농산물 파동이 나면 언론은 늘 중간상들을 혐의자로 지목하 지만 도식적이다. 중간상들은 얼핏 범인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배추 값이 오를 것 같다고 판단되면 농촌과 고랭지를 돌며 미리 물건을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어수룩한 농민을 상대로 밭떼기로 계약했다 하더라도 칼을 들이대지 않는 한 그저 오래된 상행위일 뿐이다.

사재기를 법으로 단속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어감이 부정적이라 그렇지 사재기는 쌀 때 샀다 비쌀 때 파는 장사의 기본 원리에 속한다. 어디까지를 사재기로 보느냐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중간상들이 대부분 영세하고 숫자도 많아 단속 공무원들이 그들을 다 쫓아다닐 수도 없다. 만만한 이들에게 돌팔매질을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오기 일쑤다. 배추 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엉터리 전망을 했고, 그 결과 가수요가 촉발되면서 상인들만 재미를 봤다. 그들이 걱정하던 서민의 고통은 오히려 늘어났던 것이다. 일만 터지면 정부를 욕하는 행태도 사태 해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정부를 닦달했더니 중국산 배추가 빨리 수입돼 가격이 안정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배추값이 그렇게 비싸지면 정부가 안 나서도 수입은 자연히 늘어나게 돼 있다. 야채류 파동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예산으로 산지에 저온저장고를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찬성한다면 당신은 더 많은 세금을 낼 것을 서약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큰일이라고 하는 것 중에는 지나놓고 보면 의외로 별것 아닌 게 많다. 이번 배추 파동도 그런 예다. 그냥 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괜찮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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