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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는 서툴러도 ‘펀드 수출’ 자신 있죠

중국어는 서툴러도 ‘펀드 수출’ 자신 있죠

▎1963년생 고려대 경영학과·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 동원산업 입사·동원증권 상무·동원증권 부사장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2005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겸 한국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

▎1963년생 고려대 경영학과·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 동원산업 입사·동원증권 상무·동원증권 부사장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2005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겸 한국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

오너라기보다 전문경영인 호칭이 어울린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증권 부회장(한투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47) 얘기다. 재벌 2세 같지 않은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이다. 외모부터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풍채가 좋다. 둥글둥글한 인상에 목소리는 시원시원하다.

그의 별명은 곰이다. 체구 때문이 아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우직하게 해낸 데서 붙여졌다. 그는 1991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동원증권에 입사해 1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주변에서는 경영감각이 탁월하다고 말한다. 동원산업에서 금융부문을 독립시키더니 2005년엔 한국투자증권을 성공적으로 인수했다.

동원증권과 한투증권의 합병은 국내 금융회사 합병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자산관리 업무에 강점을 지닌 한투증권과 IB업무에 경쟁력을 갖춘 동원증권을 효율적으로 통합해 장기 성장의 기반을 마련한 까닭이다. 한투증권은 합병 전 자기자본금이 5000억원에 불과했지만 올 6월 말 기준 2조2537억원으로 늘었다.

현재 한국금융지주는 한투증권·한투신탁운용·한투밸류 자산운용·한투파트너스 등을 거느린 거대 금융그룹이다. 김부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금융수출을 꿈꾼다. 유망한 투자처로 꼽는 곳은 중국이다. 올 들어 중국 출장이 잦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9월 말 한국금융지주 9층 부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중국에 장기간 출장을 다녀왔다고요.“1년에 한두 달은 해외에 나가 있습니다. IR도 할 겸 세상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죠. 인터넷 세상이지만 직접 만나 얘기하는 게 정보교류가 더 잘되는 거 같아요. 이번에는 중국에 가 두 달 반 동안 중국어 공부를 하고 왔습니다. 그동안은 한국이 미국시장을

발판으로 성장했잖아요. 다음은 중국시장이 될 거 같아요. 중국을 알려면 언어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중국어는 많이 늘었나요.“조금요.(하하) 두 달 반 배웠는데요. 이제 간단한 회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기초는 다졌으니까 더 배워야죠.”



회사 경영으로 바쁘실 텐데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거 보면 중국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앞으로 중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를 겁니다. 요즘 <메가트렌드 차이나> 등 중국 관련 서적을 읽고 있어요. 중국 외환보유액이 2조6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죠. 이 돈으로 전 세계 금·구리·석유 등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채권 투자도 활발해요. 미국 채권은 물론 한국 채권도 사들입니다. 그 규모가 상당해요.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려도 시중 국채 금리가 안 올라갑니다. 중국이 그만큼 사버리기 때문이죠. 중국 파워가 갈수록 커질 겁니다.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려면 직접 가 배워야죠.”



이미 중국에는 HSBC 등 외국계 금융사가 진출해 있습니다. 한국 금융사는 현지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요?“맞습니다. 하지만 중국시장의 벽이 높기는 해외 금융사도 마찬가지죠. 중국에는 외래어가 없습니다. 버스라는 말을 안 써요.공공기차라고 하죠. 코카콜라도 중국어 발음으로 ‘커커컨라’라고 하죠. 뭐든지 중국 스타일로 받아들이죠. 이곳에선 규모의 경쟁이 아닙니다. 중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지화 전략을 얼마나 잘 짜느냐에 달려 있죠.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4위 정도예요. 제조업 분야에서는 삼성전자, LG, 포스코 등 세계적 톱브랜드가 많습니다. 반면 금융회사는 어떤가요? 국내 리딩 뱅크라고 할 수 있는 KB금융지주가 80위입니다. 제조업과 금융산업 경쟁력 차이가 심해요. 한쪽만 발전하면 안 좋습니다. 영국은 금융만 지나치게 발전했다가 금융위기를 버티지 못했죠. 제조업 위주로 성장한 일본은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국내 금융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 계획입니다. 한국 금융시장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중국에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돈뿐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제가 대주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1~2년 안에 승부를 내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할 생각입니다. 저는 중국이 적어도 20년 이상 세계 시장을 이끄는 중심에 있을 것으로 봐요.”



그렇다면 운용사와 증권사가 동시에 중국에 진출하나요.“지금 계획으로는 운용사부터 세울 생각입니다. 우선 내년 2월께 상하이에 사무소를 낼 예정입니다.”



운용사의 강점은 뭔가요.“운용 시스템입니다. 제가 2005년 한투증권을 인수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게 운용 시스템을 바꾼 겁니다. 지금도 상당수 운용사가 스타 펀드매니저를 중심으로 돈을 굴리죠.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전문가라도 신이 아닌 이상 실수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체계적으로 시장을 분석하고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안전합니다. 저희는 세 단계 전략으로 운용합니다. 우선 애널리스트가 펀드매니저와 함께 중장기 관점에서 종목을 찾는 모델 포트폴리오를 짭니다. 다음에는 주식운용본부장과 운용책임자(CIO)가 국내외 시장 상황을 분석해 업종 비중을 조절하는 전략 포트폴리오를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결정은 펀드매니저에게 맡겨요.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적으로 돈을 굴리는 시스템이죠. 투자 문화로 정착되면서 펀드 수익률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한투신탁운용의 간판 펀드는 ‘네비게이터’ ‘한국의힘’ ‘삼성그룹적립식’ 세 개다. 김 부회장이 운용 시스템을 바꾸면서 안정적으로 수익률을 내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금융위기 때 빛을 발했다. 2008년 9월 리먼 사태 이후 한투신탁운용의 누적성과는49.9%로 주요 운용사 중 최고를 기록했다. 간판 펀드들도 성적이 좋다. ‘네비게이터’는 지난해 10월 말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2005년 12월 설정 이후 누적수익률이 95.32%(11월 20일 기준)에 이른다.

2004년 선보인 ‘삼성그룹적립식’ 펀드도 성과가 뛰어나다. 금융위기 등 시장 변수에 상관없이 꾸준히 실적을 내고 있다. 최근 1년 수익률은 24.42%이고 2년 수익률은 83.3%를 기록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대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한국의 힘’이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활약하고 시장 지배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 주 종목이다. 금융위기 이후 성적이 가장 뛰어났다. 2년 수익률은 126.36%(11월 15일 기준).

▎여의도 한국금융지주 본사

▎여의도 한국금융지주 본사



중국에서도 수익률이 잘 나올까요?“저희 회사의 운용철학이 ‘3할 타자’입니다. 홈런 쳤다가 삼진아웃 당하지 않고, 꾸준히 안타(지속적 수익률)를 치자는 거죠. 그 철학을 바탕으로 운용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중국시장에 맞게 다시 구성해야죠. 지난해 9월 홍콩에 현지법인 ‘한국투자운용아주유한공사’를 세웠습니다. 중국 정부 영향을 받는 홍콩 주식시장에서 일차적으로 우리 시스템을 검증해 볼 겁니다. 과연 한국시장에 최적화된 모델이 중국시장에서도 통할지 지켜봐야죠.”



그러고 보니 국내 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운용사의 성과가 기대만큼 높지 않아요. 국내 금융사보다 역사나 시스템 운영 면에서 훨씬 앞설 텐데요.“국내 시장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는 충분한 테스트를 거친 후 현지화 전략으로 접근할 예정입니다. 라면은 일본에서 개발됐지만 나라마다 맛이 다르잖아요. 그나라 입맛에 맞게 만들어야 잘 팔립니다. 저희도 중국 투자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겁니다.”



운용사가 먼저 진출하는 이유가 있나요.“국내에서 성과가 좋으니까 중국 투자자에게 수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증권사도 준비하고 있죠. 증권사는 규제가 많습니다. 우리가 대주주가 될 수 없는 구조예요. 중국과 합작회사를 세워도 우리의 철학대로 운영할 수 없어요. 고객에게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받아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자신 있고 잘할 수 있는 운용사를 앞세우는 겁니다. 중국 진출을 앞두고 아버지(김재철 동원그룹 회장)께 상의 드렸더니 “태평양에 아무리 고기가 많더라도 준비된 자만이 고기를 잡아온다. 그냥 간 사람은 짠 바닷물만 들이켜다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중국 시장이 크다고 무조건 돈 벌 수 있다고 욕심부터 갖지 말고 정말로 필요한 것을 갖고 가라는 얘기죠.”



11월 30일 한국투자증권은 베이징에 투자자문사를 설립한다. 이름은 ‘진우투자자문유한공사’. 2007년부터 중국사업을 추진한 이상윤 대표가 경영을 맡는다. 한국 투자자를 위한 중국시장을 분석하는 게 주요 업무다. 중국 기업의 한국 주식시장 상장도 추진할 계획이다. 내년 2월에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상하이에 사무소를 낼 예정이다. 원활한 중국 본토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증권사와 합작 자산운용사도 검토 중이다. 운용사가 설립되면 한국뿐 아니라 중국 현지의 투자자금을 모집해 운용할 방침이다.

김 부회장은 기자에게 ‘사람들이 왜 종교를 믿는지 생각해 봤느냐’고 물었다. ‘본인의 행복을 위한 것’ 아니냐고 답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죠. 상당수는 신 때문에 종교를 믿기보다 본인을 위해 믿을 거예요. 삶이 보다 윤택해지니까요. 마찬가지예요. 제가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선보이면 결과적으로 회사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삶을 되돌아볼 기회가 많았나 봅니다.“하하하. 아침 7시에 출발해 오전 수업 받고 오후에 과외 받고 나면 오후 5시예요.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본 자유로운 시간이었죠. 서울에 있으면 하루 종일 회의로 시간에 쫓기며 살았거든요. 시간이 많으니까 그간 업무일지도 살펴보며 앞으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가 증권사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지주잖아요. 여기에 은행이나 보험회사를 인수해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출 생각은 없나요?“있으면 좋죠. 하지만 급변하는 금융시장에서 증권사만큼 신속하게 대응하기 쉬운 곳도 없을 겁니다. 은행과 보험사는 고객 돈을 갖고 운용하면서 일정 금액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죠. 그러다 보니 정부 규제를 받는 부분이 많습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중심이지만 증권업은 사람이 중요합니다. 은행에 가 ‘대출되느냐’고 물으면 기준에 따라 한도 금액이 나오죠. 누가 일해도 똑같은 한도가 나올 겁니다. 증권사는 다르죠. ‘A종목 투자해도 되느냐’고 물으면 온갖 데이터를 보여주지만 최종에는 사람이 합니다. 그만큼 능력이 중요한 곳이죠. 제가 매년 대학교를 찾아 다니며 취업설명회를 하는 이유도 똑똑한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서예요. 금융시장이 발전 가능성이 큰 곳이니 함께 도전해 보자고 하죠.”



부회장님도 도전을 하셨네요. 아버지께서 이뤄 놓은 동원그룹 대신 동원증권을 선택했잖아요. 만족하시나요?“그럼요. 자기자본금 5000억원에 불과했던 회사가 이제는 2조2000억원 이상으로 커졌습니다.”



올 4월 김 부회장은 모교인 고려대에서 취업설명회를 했다. 그 자리에서 평소 친분이 깊은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김부회장이 젊은 나이에 한국에서 가장 큰 투자금융지주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잘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해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장 교수는 “하지만 증권가의 작은 회사에 불과했던 동원증권을 불과 몇 년 만에 우리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으로 키워낸 것은 전적으로 김남구 부회장의 능력”이라며 “그가 처음 경영을 맡았을 때의 동원증권과 지금의 한국금융지주는 규모나 경쟁력 면에서 도저히 같은 회사라고 보기 힘들 정도”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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