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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빛 향한 추격전 돌입

한국 빛 향한 추격전 돌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태양광 전기 값이 화력 에너지원보다 저렴해지는 ‘그리드 패리티’가 도래한다. 태양광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예고한다. 이미 치열한 ‘태양 잡기’ 경쟁이 더 긴박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그리드 패리티 시대를 준비하는 한국의 전략과 과제를 살펴봤다. 아울러 태양광 산업지도를 가치사슬별로 정리했다.

# “태양을 잘 활용하면 값비싼 석유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 태양광 업계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사실이라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선 호재다. 과장된 말은 아닐까. 2009년 국내에서 생산된 태양광에너지는 12만1731toe다. 1toe는 석유 1t을 뜻한다. 12만1731toe를 배럴로 바꾸면 89만2288배럴. WTI(서부텍사스유) 기준으로 7914만 달러(약 905억원)를 줘야 구입할 수 있는 양이다. 태양광 발전으로 연간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는 셈이다. 세계 5위 수입국 한국에 태양은 정부 곳간을 불려주는 재테크 수단이다.

# 그리드 패리티. 태양광 발전단가와 화력(석유·석탄 등) 에너지원의 시장가격이 같아지는 지점이다. 가설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태양광의 전기 값은 화력의 4배가량이다. 하지만 웬걸. 태양광과 기존 화력 에너지원의 가격이 점차 좁혀진다. 지식경제부 자료를 보면 화력 에너지원의 1㎾h당 평균 시장단가는 2007년 79원에서 올해 118원으로 49% 올랐다. 태양광 가격은 같은 기간 716원에서 506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추이를 따져보면 2016년 두 에너지원의 가격차는 14원(기존 에너지원 177원, 태양광 191원)으로 준다. 2017년엔 태양광(138원)이 화력 에너지원(186원)보다 48원 싸진다. 그리드 패리티. 남의 나라 얘기도, 먼 이야기도 아니다.

태양광 산업이 중천(中天)에 떴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빠르게 성장한다. EPIA(유럽태양광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태양광 시장 규모는 2000~2009년 연평균 37% 커졌다. 2009년 규모는 7216㎿로 2000년(278㎿)의 26배다. 2008년 불어닥친 글로벌 불황도 태양 앞에선 무기력했다. 올해 시장 규모는 전년비 76% 늘어난 1만2715㎿에 달할 전망이다.

태양광, 사실 낯설지 않다.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손목시계·전자계산기는 널렸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닥쳤을 때도 태양광 ‘붐’이 일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관심은 금세 사그라졌다. 이런 태양광 산업이 다시 인기를 끄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가 심각하다. 빙하는 줄고, 해수면은 상승한다. 석탄·석유 등 기존 에너지원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다시 말해 온실가스의 역습 탓이다.



점점 커지는 태양광 시장2000년 이후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줄이기’에 나섰다. 신재생에너지 개발도 서둘러 모색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담은 ‘교토의정서’가 발효된 2005년 이후엔 더 가속화했다.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주목을 끈 건 단연 태양광. 그만큼 장점이 많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h당 57g에 불과하다. 석탄(991g)·석유(782g)의 각각 17분의 1, 14분의 1이다. 태양이 꺼지지 않는 한 고갈 우려도 없다.

경제적 효과도 크다. 국내 태양광 발전 누적설치 규모는 올 현재 0.6GW. 전력소요 대비 태양광 발전비율은 1%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이를 2%로 늘리면 석유수입량은 연 5477억원 감소한다. 이산화탄소 감축효과는 753억원에 이른다. 태양광 발전 시스템 구축비 등 각종 부대비용(5711억원)을 감안해도 마진이 큰 장사다.

해외 각국이 태양광 사업 확장에 힘을 쏟는 이유다.

세계 태양광 누적 설치 규모 1위인 독일(9.8GW·2009)은 적극적인 가격보장·생산전력 매입보장책으로 투자를 유인했다. 태양광 사업자에게 투자금액의 30%를 공제했고, 생산 시점부터 10년간 판매전력을 1㎾h당 1.5유로씩 보조했다. 일본은 폐지했던 보조금 정책을 2009년 부활해 ‘태양광 르네상스’를 꿈꾼다.

‘태양광 세계 공장’으로 떠오른 중국도 강력한 정부정책을 등에 업고 쾌속질주를 거듭한다. 태양광 기업은 영업이익이 발생해도 3년 동안 법인세가 면제된다. 4~6년은 감면 시기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세계 각국의 태양광 산업은 보조금 등 정부정책의 힘으로 성장했다. 정부가 뒷짐을 지면 태양광 산업의 성장세가 한풀 꺾일 거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보조금 지급 한계용량’을 설정한 뒤 세계시장 1위를 빼앗긴 스페인의 예는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태양광 산업은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 태양광 기업의 과제는 모듈 가격을 절감하는 것이다. 그래야 지속적인 수요가 발생한다. 최근 세계 각국이 보조금을 내리고 있지만 그 폭이 태양전지 모듈 가격보다 작다. 태양광 기업이 자립하고 있다. 무턱대고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LG경제연구원 양성진 책임연구원의 주장이다.

사실이다. 태양전지의 모듈 가격은 실제로 하락세다. R&D(연구개발) 효과다. 신재생에너지 연구기관 ‘솔라앤에너지’에 따르면 독일의 보조금은 2009년 32.7유로에서 올 하반기 31.3유로로 16% 감소했다. 태양전지 1W당 모듈 가격은 같은 기간 22%(2.3유로→1.8유로) 내렸다. 보조금은 감소했지만 독일 태양광 기업은 결과적으로 6%가량 이득을 봤다. 프랑스도 마찬가지. 보조금은 12% 줄었지만 태양전지 모듈 가격은 22%나 떨어졌다.

LCOE의 감소로 태양광 기업의 ‘홀로서기’를 이끈다. LCOE는 발전 시스템 소요비용을 에너지 생산량으로 나눈 값. 숫자가 높을수록 발전 시스템 비용이 크다는 뜻이다. 금융자문사 라자드의 자료를 보면 태양광의 1㎿당 LCOE는 11만4000~18만3000원이다. 가스(26만3000~41만9000원)보다 싸고, 복합화력발전(8만7000~13만3000원)과 비슷하다. 태양광 발전 시스템 구축비용이 이젠 화력과 유사해졌다는 소리다.

여기엔 광변환효율이 향상된 게 한몫했다. 광변환효율은 태양광 100이 들어왔을 때 생성되는 에너지 양을 말한다. 50이 생성되면 광변환효율은 50%다. 숫자가 높을수록 좋다. 폴리실리콘을 원료로 쓰는 ‘결정질’ 태양전지의 변환효율은 평균 15% 안팎. 유기화학물이 원료인 ‘박막형’ 태양전지는 9~10%다.

이 효율은 더 오를 여지가 많다. 원료의 질이 개선되고 기술력이 향상되면 품질은 좋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는 태양광 발전 시스템의 구축비용 감소로 이어진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김제하(박막 태양광 기술연구팀) 팀장은 “광변환효율이 1% 향상되면 (장기적으로) 부대비용의 50%가 절감되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보조금 없으면 태양광 산업 추락할까기술력 향상, 생산량 확대, 원가절감…. 이런 상황은 그리드 패리티를 앞당긴다. 기술력이 발달하면 생산량이 늘고, 가격이 하락한다. 고려대 김동환(신소재공학부) 교수는 “한국의 그리드 패리티 도달 시점은 2015~2020년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신성홀딩스 기술연구소 이은주 차장은 “이르면 2~3년 후”라고 전망했다.

예상대로 그리드 패리티가 달성되면 태양광 시장에선 불꽃 튀는 경쟁이 긴박하게 펼쳐질 거다. 태양광이 화력보다 싸졌으니 에너지 소비자는 어떻게 하겠는가. 값싸고 변환효율이 높은 태양전지를 찾을 게 뻔하다. 글로벌 태양광 기업이 기술력 향상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서슴지 않는 이유다. 세계 각국이 태양광 발전량을 대폭 늘리겠다고 선언한 까닭도 같다.

우리는 어떨까. 아쉽게도 행보가 빠르지 않다. 태양광 발전량을 늘리는 데 주저한다. 한국의 태양광 발전 누적 설치 규모는 520㎿(2009)다. 세계 6위. 괜찮은 순위 같지만 실속이 없다. 1위 독일(9.8GW)의 20분의 1에 불과하고, 3위 일본(2.6GW)의 5분의 1 수준이다. 5위 이탈리아(1.2GW) 규모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기술력이 월등한 것도 아니다. 원천기술력은 많지 않다. 중국 태양광 기업을 압도하는 핵심기술도 아직 없다. 도리어 중국이 낫다는 평가도 많다. 중국이 자랑하는 태양광 기업 선테크·잉리가 생산하는 결정질 태양전지의 변환효율은 18% 이상이다. 삼성전자·LG전자는 세계 최고 효율의 결정질 태양전지를 개발했지만 아직 양산단계가 아니다.

2세대 태양전지로 불리는 박막형의 기술력은 더 떨어진다. 박막형 태양전지는 유기화학물 등을 얇은 (유리)기판에 입히는 방식이다. 글로벌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 우리에겐 기회가 많다. 하지만 세계 박막형 태양전지 10대 기업 중 우리나라 업체는 없다. 생산규모 1.1GW를 보유한 미국 퍼스트솔라가 시장을 이끌고, 미국 유나이티드솔라(123㎿), 일본 샤프(94㎿), 독일 선필름(60㎿), 중국 트로니솔라(50㎿) 등이 뒤를 받치는 구조다.

구리(Cu)·인듐(In)·갈륨(Ga)·셀레늄(Se) 화합물을 활용하는 ‘CIGS형’ 태양전지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북미·유럽 기업이 강세다. 미 NREL(국립신재생에너지연구소)은 2008년 19.9%의 변환효율을 달성했다. 중금속 카드뮴 텔룰라이드가 원료인 ‘CdTe’ 태양전지는 퍼스트솔라가 절대강자다. 프라임스타를 인수한 GE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 기업은 별다른 실적이 없다.

태양 빛을 활용해 전기를 만드는 ‘염료감응’ 태양전지 시장의 경쟁도 뜨겁지만 우리에겐 먼 얘기다. 2006년 변환효율 11%를 달성한 일본 샤프는 13% 달성을 목표로 R&D 투자를 계속한다. 일본 소니도 고체화 염료감응 태양전지로 변환효율 10%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기업으론 다이솔티모가 있다. 11㎿급 생산용량을 갖춘 이 회사는 2011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인데, 변환효율은 아직 7% 수준이다. 충남 천안에 1㎿ 규모의 파일럿 라인을 가동하고 있는 TG에너지는 양산계획이 아직 없다.

한국의 태양광 산업 경쟁력은 유럽·일본·중국 등에 뒤져 있다. 유럽·일본보단 기술력이 떨어지고, 중국엔 규모에서 밀린다. 샌드위치 신세다. 추격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태양전지 제조공정은 반도체·LCD와 다르지 않다. 한국은 디스플레이·메모리반도체 분야의 글로벌 강자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꼬리를 잡을 수 있다. 꼬리가 안 보인다고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언제는 안 그랬나. 전례 없는 버블을 딛고 일어나 명실상부한 IT강국에 오르는 데 15년이 걸렸다. 출발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가속도가 붙으면 그만이다. 잘 추격하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일굴 수 있다. 이번에도 주춤한다면? 추격 시기를 놓친 우리는 태양의 ‘흑점(黑點)’에 빠질 거다. 태양에서 가장 어두운 곳, 한국 태양광 산업의 수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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