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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 STORY] 해가 지지 않는 럭셔리 시계 제국

[WATCH STORY] 해가 지지 않는 럭셔리 시계 제국

지난해 6월 타계한 니컬러스 G. 하이에크 전 스와치 그룹 회장.

2010년 6월 스위스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스와치 그룹을 이끌던 니컬러스 G. 하이에크(Nicolas G. Hayek) 회장의 별세 소식이었다. 시계 업계에 종사하려면 그의 비위를 절대 거스르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는 스위스 시계 산업의 구원자이자 시계 분야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82세의 고령에도 양손에 시계 5~6개를 착용한 채 직접 인터뷰와 설명을 해준다. 열정적인 Mr.스와치를 본 것은 작년 바젤 월드가 마지막이었다. 그의 아들 닉 하이에크(Nick Hayek)가 뒤를 이은 스와치 그룹을 비롯한 다른 시계 브랜드의 행보는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까.

시계 업계의 가장 큰손, 스와치 그룹. 1970년대 일본산 쿼츠 시계의 해일 속에 스위스에서 전통적으로 기계식 시계를 제조하는 브랜드들은 도산하기 시작했고 장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1980년대 하이에크 회장의 발 빠른 움직임이 없었다면 오늘날 시계 하면 스위스가 떠오르는 명성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컨설팅 업체인 하이에크 엔지니어링 CEO였던 그는 스위스 시계사에서 중요한 2개 회사를 인수한다. 1930년에 스위스 정부와 은행 주도로 설립된 가장 큰 시계산업연합 AGUAG(Allgemeine Schweizerische Uhrenindustrie AG), 1931년 설립돼 티쏘와 오메가를 보유한 SSIH(Société Suisse pour l’Industrie Horlogére)다. 인수 후 1983년 SMH(Swiss Corporation for Microelectronics and Watchmaking Industries Ltd)를 창립, 적정 가격에 고성능과 예술적·감성적으로도 뛰어난 세컨드 시계, 스와치를 내놓았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면서 SMH 그룹은 5년 후 시계 시장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가 됐다.

스와치 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지 30년. 지금은 시계에 관한 모든 가격과 종류를 제공하는 19개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그룹이 됐다. 브레게, 블랑팡, 글라슈테 오리지날, 레옹 아토, 자케 드로, 오메가와 작년부터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합류한 티파니, 론진, 라도, 유니온 글라슈테, 티쏘, ck 캘빈 클라인, 세르티나, 미도, 해밀튼, 발맹, 스와치, 플릭 플락, 소수를 위한 주문형 시계를 제공하는 엔듀라, 이 모든 브랜드를 판매하는 리테일 숍, 투르비옹까지 운영하고 있다. 숨이 찰 정도로 많다고 여겨지지만, 이 또한 빙산의 일각이다.



최강자 스와치의 무기는?스와치 그룹이 시계 업계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브랜드가 아닌 시계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시계 브랜드에 심장과 같은 무브먼트를 제공하는 에타와 프레데릭 피게 등 무브먼트 제조사, 이스케이프먼트 부품을 제조하는 니바록스, 시곗바늘을 제작하는 유니베르소, 스포츠에서 시간 측정을 지원하는 스위스 타이밍 등이 있다. 이런 까닭에 스와치 그룹의 입김이 작용하면 시계 산업이 들썩거릴 정도다.

2002년 7월, 그간 많은 시계 브랜드에 반조립 상태의 에보슈 무브먼트를 공급하던 에타가 2003년부터는 이를 축소하고 2006년부터 완제품만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일이 있었다. 에타의 대체품이 없는 상태에서 조립 세트 공급 중단은 여러 시계 브랜드의 존립에 영향을 끼치는 큰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스위스경쟁위원회(the Competition Commission)는 2010년까지 점진적으로 수량을 축소, 그 이후 완제품을 공급하도록 중재했다.

시간을 벌게 된 시계 브랜드들은 저마다 자사 무브먼트 제조에 박차를 가했고 지난 3~4년간 이것이 부쩍 늘었다. 최소 3~4년이 걸리는 무브먼트 제조를 위한 투자 때문인지 시계 가격이 만만치 않게 오른 것이 아쉽지만 기계식 시계 시장은 다양한 진보를 이뤘다.



하이엔드 시계 산업을 잡아라스와치 그룹과 쌍벽을 이루는 곳은 리치몬트(Richemont)다. 남녀노소 모두 착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격대를 보유한 스와치 그룹과 달리 리치몬트 그룹은 최고의 것에 치중한다. 이 그룹은 제일 규모가 큰 까르띠에의 시계 회사 까르띠에 몽드 SA와 나머지 시계 브랜드를 소유한 서브 그룹인 리치몬트 오트 오를로제리(RHH: Richemont Haute Horlogerie)로 이뤄져 있다.

RHH는 1965년 피아제와 보메 메르시에 인수를 시작으로 몽블랑을 소유한 던힐, 클로에 등을 소유한 로트만 인터내셔널의 주주가 됐다. 뒤 이어 시계 회사를 비롯한 주얼리, 가죽 회사들을 계속 더한다. 96년 바쉐론 콘스탄틴, 97년 오피치네 파네라이와 란셀, 99년 반클리프 아펠, 2000년 예거 르쿨트르·IWC·랑게 운트 죄네, 2008년 로저 드뷔가 합류했다.

이 같은 대규모 인수합병은 시계 업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2008년 리치몬트사와 조인트 벤처로 시계 산업에 뛰어든 랄프 로렌이 2009, 2010년에 선보인 첫 번째 컬렉션은 리치몬트가 가진 각 브랜드의 노하우를 조합한 모습이었다. 무브먼트는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IWC에서 공급받았고 디자인은 랄프 로렌의 영감에 까르띠에의 안목을 더했다. 그야말로 각 브랜드가 가진 장점만 모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랑게 운트 죄네 본사.

예로부터 무브먼트 제조사였던 예거 르쿨트르는 전 세계에서 제일 작은 칼리버 101 등을 까르띠에 주얼리 시계에 공급하고 있다. 주얼리만큼 시계에도 주력하는 까르띠에는 자체 무브먼트 생산에 이어 제네바 인증을 받은 무브먼트까지 선보이고 있다. 제네바에서 제조돼야 받을 수 있는 이 인증을 라쇼드퐁에 위치한 까르띠에가 받을 수 있었던 건 제네바 인증을 받은 무브먼트 제조사로 유명한 로저 드뷔를 영입한 덕이었다.

로저 드뷔는 2010년 다이얼 위 로고 크기를 줄이는 등 강렬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다소 걷어냈다.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디자인을 보여주는 까르띠에의 역할이 컸다. 독일 시계 브랜드의 자존심이 되고 있는 랑게 운트 죄네는 작년 돌연 예거 르쿨트르의 수장 제롬 랑베르(Jerome Lambert), 로저 드뷔는 IWC의 조지 케른(George Kern)과 손잡는다. 짧은 기간 브랜드의 성공을 이끈 마케팅 귀재의 노하우를 전수 받기 위함이다.

리치몬트 그룹은 3차원 투르비옹으로 유명한 그뢰벨 포지사 지분을 인수하면서 바젤 월드에 부스를 갖고 있는 그뢰벨 포지를 2010년부터 제네바 SIHH의 멤버로 끌어들였다. 몽블랑은 같은 르로클 지역에 있는 오래된 무브먼트 제조사 미네르바 빌르레 매뉴팩처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빌르레 컬렉션이란 컴플리케이션 시계에 이어 독립 무브먼트 디자이너와 협력해서 메타모포시스를 제작하는 등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독립 시계 업체들의 지속적 영입은 이 그룹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LVMH와 불가리, 구찌의 반격총 50여 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국제적인 럭셔리 그룹 LVMH의 행보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 럭셔리 제국은 1999년 태그 호이어, 에벨, 크리스찬 디올 등 시계 부문을 분리했다. 2001년에는 제니스와 쇼메를 영입하고, 루이뷔통에서도 시계를 론칭했다. 2003년 에벨을 모바도 그룹에 되판 대신 같은 해 위블로를 인수했다. 이로써 시계 생산지로 유명한 스위스 라쇼드퐁에 거점을 마련한 후 본격적인 시계 제작에 나선다. 태그 호이어 바로 옆 건물에 자리한 디올과 루이뷔통은 전문 시계 브랜드인 제니스와 태그 호이어의 수혈을 받으면서 투르비옹 미스테르 등을 탑재한 컴플리케이션 시계까지 선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전문 시계 브랜드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지만 LVMH 그룹의 자본력과 노하우로 볼 때 5년, 10년 뒤 시계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루이뷔통 시계 본사.

주얼리 브랜드였던 불가리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1884년에 소토리오 불가리가 작은 숍을 내면서 시작, 주얼리 브랜드로 성장한 불가리는 1977년 베젤에 로고를 두 번 두른 시계를 론칭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2년엔 스위스 뉘샤텔에 아예 불가리 타임이란 시계 회사를 설립했다. 제대로 된 시계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2000년 불가리는 하이엔드 시계 회사인 다니엘 로스와 제랄드 젠타에 손을 뻗쳤고 2005년에는 다이얼 회사 카드랑 디자인, 메탈 스트랩 제작사 프레스티지 도르를 차례로 인수했다. 2007년에는 드디어 자사 무브먼트를 선보이기에 이른다.

같은 해 케이스 제작사 핑거와 시계 제작 기계를 생산하는 레쇼 등을 인수하면서 시계 제작 기반을 마련한 불가리. 2010년에는 30년 역사를 가진 다니엘 로스와 제랄드 젠타를 아예 흡수해 불가리 로고 아래 새롭게 시계를 내놓고 있다.

구찌 그룹의 모 그룹인 PPR 그룹은 2008년 제라 페리고와 장 리샤르를 인수했고 시계 브랜드 베다를 인수했다 되판다. 그 뒤 부쉐론의 최상급 시계에는 제라 페리고의 칼리버 GP 4000을 장착하는 등 다른 워치 하우스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한때 토노형 시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프랭크 뮬러는 피에르 쿤츠, 마틴 브라운 등 독립 시계 제작사들을 모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대량 생산 시계에서는 게스, 발렌티노, 살바토레 페라가모, 베르사체, 오펙스 등을 소유한 타이맥스 그룹과 포실, 엠포리오 아르마니, 필립 스탁, 버버리, 디젤, 조디악, 마이클 코어스, 프랭크 게리 등을 소유한 포실 그룹이 있다.

거대 시계 그룹들의 행보는 그룹 내 포지셔닝이란 명목 아래 정통 기계식 시계 생산자를 대량 생산 체제로 내몰기도 했다. 하지만 때론 브랜드끼리의 상호 협력과 경쟁을 통해 시계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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