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퓨전요리의 천국 싱가포르
[FOOD] 퓨전요리의 천국 싱가포르
미국에 처음 온 뒤 얼마 동안 사람들은 내가 싱가포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 때마다 꼭 두 가지 문제 중 한 가지를 화제로 올렸다. 왜 검을 씹지 못하게 하느냐, 아니면 과거 싱가포르 당국이 미국인 십대에게 재물파괴와 낙서 혐의로 매질 한 일은 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다.
갈수록 그런 질문에 넌더리가 났다. 대신 대다수 싱가포르인이 애착을 갖는 훨씬 더 즐거운 주제로 대화를 유도하곤 했다. 바로 음식이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 땅에서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졌는지 침을 튀기며 설명하곤 했다. 쇠고기 렌당은 고수풀, 쿠민, 육두구 그리고 레몬그라스를 듬뿍 넣은 카레 요리다. 크림 같은 모양에 코코넛 맛이 나며 요리가 잘 됐을 때는 혀 끝에서 스르르 녹아 내릴 정도로 아주 부드럽다. 하이난(海南)식 치킨 라이스는 밥풀 하나하나가 닭고기 기름으로 뒤덮여 매끌매끌하며 마늘 향과 바닐라 맛의 열대 판단나무 잎사귀로 약간 다른 맛을 냈다. 무르타박은 기본적으로 인도식 칼조네(반달 모양 빵)다. 가람 마살라(혼합 향신료), 심황, 칠리 등 갖은 양념을 넣어 다진 양고기와 양파로 바삭바삭한 로티(인도 빵)를 가득 채웠다.
새로 사귄 미국 친구들은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유명한 이 도시국가에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음식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항상 놀라움을 나타냈다(내가 다니던 미국 중서부 대학에서 만난 많은 미국인이 싱가포르가 중국에 있다고 생각하던 1990년대였다).
언론의 자유가 제한됐다고 알려진 나라에서 그런 독창적인 요리가 풍성하다는 사실에 외부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제약 때문에 싱가포르의 미식세계가 그렇게 역동적이 됐다고 나는 주장한다. 음식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안전한 배출구다. 싱가포르의 정치와 종교에선 침묵이 금일지 몰라도 음식에는 금기가 없다.
“싱가포르에 언론의 자유가 있느냐고?” 유명한 현대 싱가포르 음식점 와일드 로켓의 요리사 윌린 로가 대꾸했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입으로 먹기에 바빠서 그런 일은 잘 모르겠다.”
싱가포르인들과 음식의 깊은 관계(그리고 언제든 가장 좋은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야 한다는 그들의 고정관념)를 이해하려면 싱가포르 요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1819년 영국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말레이 반도의 끝자락에 있는 그 섬은 작은 어촌 마을들의 한적한 군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 싱가포르의 뛰어난 입지를 알아보고 무역항을 개설하면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됐다. 인도, 유럽, 중국, 말레이시아로부터 이주민이 싱가포르로 몰려들면서 퓨전 스타일 요리가 탄생했다. 세계 각지의 맛과 요리 스타일이 버무려졌다. 중국 하이난섬에서 건너온 차분한 치킨 라이스는 마늘, 판단나무 잎, 칠리로 맛이 한층 강해졌다. 프라이드 로티 존(싱가포르에선 영국 군인을 존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서 딴 이름)은 유럽식 바게트 스타일 빵과 다진 양고기, 푼 달걀, 그리고 많은 인도 향료를 결합했다.
이제껏 우리는 수 세기 동안 다른 지역의 요리를 가져다 더 맛있게 만드는 일에만 집중했다.
오늘날 싱가포르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백 곳의 푸드 센터(hawker center)와 코피티암(푸드 코트 같은 커피숍)에서 이런 요리 말고도 다른 갖가지 음식을 내놓는다. 이 곳에는 인도, 말레이, 중국, 서양 음식 코너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섰으며 모두 아주 훌륭하고 대단히 값이 싸다. 푸드 센터에선 5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넉넉한 양의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맛 없는 푸드 센터 식당에서도 종종 제법 훌륭한 요리를 만난다고 미국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친구들과 함께 무르타박이나 피시헤드 카레를 먹기에 가장 좋은 곳을 두고 몇 시간씩 논쟁을 하거나 자동차를 타고 최고의 바쿠테(후추를 뿌린 돼지갈비탕)를 찾아 섬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이동하기를 다반사로 한다. 싱가포르인들은 내가 알기로는 음식에 관한 한 가장 엄격한 비평가다. 정부를 향한 불만 수위가 너무 높지 않나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도 수준미달로 간주되는 어죽을 내놓는 간이식당을 혹평할 때는 두 번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정직하게 만들려 최선을 다하며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들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요인일지 모른다.
1990년대 시카고로 이주할 때까지 싱가포르인들이 음식에 쏟는 정성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알게 된 미국인 친구들에게는 이런 관행이 좀 특이한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처럼 도를 넘는 열정은 어쩌면 싱가포르에선 음식이 커다란 상징적인 힘을 지닌다는 사실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먹을거리를 넉넉히 장만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던 이민 사회였다”고 싱가포르의 줄리아 차일드(미국의 스타 요리사) 격인 바이올렛 운이 말했다. “따라서 우량아 출산이 성공의 가장 큰 상징이었다.”(내 부모가 우리를 찾아와선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네 살 쪘구먼!”이라고 한마디 던질 때마다 발끈 화를 냈던 미국인 남자친구에게 이런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려 애썼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싱가포르 외교부의 무임소 대사이자 싱가포르 국가유산위원회 회장인 토미 코는 훨씬 단순한 또 다른 이론을 내놓는다. 그는 “싱가포르는 외부에서 인정하는 수준보다 자연발생적이고 즐겁고 따뜻한 특성이 더 강하다”며 와일드 로켓과 티옹 바루 시장 등을 자신이 즐겨 찾는 단골 음식점으로 꼽는다. 도심 부근에 있는 푸드 센터인 티옹 바루 시장에 빽빽이 들어선 수십 개의 간이식당에선 푸젠(福建)식 새우 국수와 슈이 궈 같은 환상적인 음식을 내놓는다. 슈이 궈는 찐 떡에 잘게 썬 무 말랭이를 얹고 칠리 소스를 듬뿍 바른 고전적인 아침 식사다. “우리는 대부분 호랑이 엄마 밑에서 엄하게 자랐지만 유머 감각과 삶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다”고 코가 말했다.
싱가포르의 둘도 없는 음식세계를 버리고 미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선택한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때때로 당시를 돌아보며 약간은 그 결정을 후회하기도 한다. 어쨌든 주방에서 언론의 자유도 소중하다면 소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싱가포르인을 지칭해 미국인들에게 종종 말하듯이 우리는 살기 위해 먹지 않고 먹기 위해 산다.
[필자는 ‘음식과 가족의 추억(A Tiger in the Kitchen: A Memoir of Food and Family)’의 저자다.]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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