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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Succession Planning] CEO가 생각하는 후계자는 비전과 철학 공유하는 내부인 중 고른다

[CEO Succession Planning] CEO가 생각하는 후계자는 비전과 철학 공유하는 내부인 중 고른다

카이사르(동상 사진)는 후계 승계에 성공했지만 적자 승계 원칙을 고수한 세종대왕은 실패하고 말았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후계자는 누구인가? 가장 이상적인 후계 승계(succession)는 누가 누구에게 권력을 물려준 것일까? <로마인이야기> 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예수에서 베드로에게로의 기독교 정통성 승계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잇는 로마 권력 승계를 꼽는다. 그는 전임자와 성격이 상반되는 두 인물이 결과적으로 혁명을 완수했다고 말했다.

조선의 태종은 적자인 양녕대군을 제치고 성격이 어질고 지혜로운 충녕대군(세종)에게 왕권을 물려줬다. 세종은 그 후 병약한 적자 문종보다 수양대군(세조)이 적임이라는 의견이 신하 사이에 있었지만 적자 승계를 관철한다. 문종은 일찍 죽었고 그 아들 단종에게 넘어갔던 왕권은 결국 세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피를 뿌리는 정변을 겪고 난 후였다. 성군도 성공적 승계엔 실패한 셈이다. 후계 승계에 관한 한 세종대왕은 반면교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장자 승계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건강과 자질을 갖춘 재목을 고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리더십의 교체는 어느 조직에서나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더욱이 CEO의 결정에 따라 조직 자체의 운명이 좌우되는 기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경희스팀청소기로 유명한 한경희생활과학은 CEO가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비상대책 매뉴얼이 가동된다. 현 임원진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CEO를 새로 선출하는 것이 골자다.

필립스는 주요 보직자가 동시에 항공이나 해상 여행을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불의의 사고가 났을 때 보직 승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이들 주요 보직자는 또 각자 두 명씩 후계자를 양성하도록 되어 있다. 남승우 풀무원홀딩스 대표는 “CEO 승계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사고 등 CEO 유고 상황에 대비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석재 PLI컨설팅 진단평가연구소장은 “조직의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후계자를 고르고 양성하는 것은 CEO의 주요 책무”라고 말했다.

CEO 승계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포브스코리아는 13명의 현직 CEO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전원 CEO 승계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이 프로그램이 기업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이영관 도레이첨단소재 사장은 “CEO 승계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동되면 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CEO의 재임 기간이 길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는 전·후임자 간 컨센서스가 이뤄져야 사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장기적 사업계획 수립과 집행도 가능해집니다.”



5년 걸려 CEO 승계자 선발한 한미파슨스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은 “회사가 망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핵심적인 변수가 CEO 리스크”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CEO 승계는 기업에 리스크이자 기회라고 그는 주장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도산한 배경엔 CEO 승계 실패 문제가 있었습니다. CEO 승계 프로그램은 기업 지속가능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국내에 CM(건설사업관리)을 도입한 김 회장은 창업자이자 최대주주다. 그의 후계자는 창업 멤버인 이순광 사장이다. 현재는 COO지만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면 최소 10년간 이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게 된다. 김 회장은 자녀가 있지만 회사는 유능한 사람이 경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후계자 선정에서 자식을 배제했다. 창업자가 회사를 종업원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공개적으로 CEO를 물색해 공식 절차에 따라 경영권을 이양하는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김 회장은 CEO 승계 방침을 사내에 공표했다. 그 후 3년에 걸쳐 차기 CEO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1차로 23명의 잠재 후보군을 선정한 후 다양한 보직을 맡기는 등 자질 평가를 거쳐 2008년 이들을 네 명으로 압축했다. 이 가운데는 사내 외국인도 포함됐다. 그 후 이 네 명에 속하지 않은 사내 시니어 멤버 다섯 명의 의견을 수렴해 이들 중 두 명을 탈락시켰다.

마지막으로 사외이사 네 명과 외부 전문가 두 명으로 CEO 선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에게는 두 후보에 대한 평가 자료가 전달됐다. 사내 핵심 멤버 20명과 사외 자문 교수 5명 등 25명의 의견을 취합한 것이다. 김 회장은 여기까지만 관여했다.

후보 두 사람은 CEO 선정위원회를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CEO가 되면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설명하고 선정위원들의 질의에 응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이순광 부사장이 김 회장의 후계자로 결정됐다. 2009년 1월 이 부사장은 사장(COO)에 취임했다. CEO 승계 방침을 공개한 지 약 5년 만이었다.

김 회장은 최종 후보자들에게서 탈락하더라도 회사를 떠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다. 그는 65세가 되는 2014년 회사 일에서 손을 떼고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그때까지 그는 회장직을 유지한 채 이 사장과 함께 일한다.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그의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차기 CEO의 선정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박용만 두산 회장은 “경영을 잘할 사람”이라고 못 박았다. CEO는 바로 경영을 하는 사람이니 결국 동어반복이다. 박 회장은 그러나 자신이 이 간단한 생각에 이르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승계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차기 CEO를 미리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성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 보직을 미리 선별해 이들 자리에 CEO 후보군을 포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 회사 안에서 잠재적 역량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전략적 업무를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후보군을 폭넓게 양성하는 거죠. 말하자면 리더십 공급 관리(Leadership pipeline management)죠.”

남승우 대표는 “일반적 조직 책임자에게 요구되는 업무 역량과 경험 외에 비전, 열정, 직업적 정직성, 개방적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중 한화건설 사장은 조셉 바우어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시한 리더의 네 가지 능력을 제시했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능력, 자기 회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능력, 인재를 발굴하고 사업 파트너를 찾아내는 능력이 그것이다.



후계자는 기업 고유의 DNA 보유해야2세 경영인인 김은선 보령제약그룹 회장은 “그동안 탁월한 경영성과를 거뒀을 뿐 아니라 기업 고유의 DNA를 보유한 인재라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핵심 가치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해당 기업 고유의 DNA를 가슴 깊이 아로새긴 사람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통찰력, 우수한 차세대 인재를 발굴하는 능력, 소통 능력이 필요한데 이런 자질을 가장 잘 갖춘 인재가 회사 밖에 있다면 그 사람을 영입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죠.”

조영탁 휴넷 사장은 “기업의 가치관과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차기 CEO는 우선 사내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동일 연세대 상남경영대학원 교수는 “외부 인사를 선발할 경우 과거의 경력이나 성과보다 회사의 업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홈 디포의 CEO로 영입된 밥 나델리는 DIY 홈 임프루먼트 스토어업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낙마하고 말았다.

CEO 승계 프로그램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나? 박용만 회장은 “기업의 장기적 성과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 성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장기 성과가 단기 성과의 집합체라고 볼 때 승계자가 임기 중 전임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일관되게 단기 성과를 낼 수 있어야겠죠. 장기 성과는 일관된 경영철학을 견지하고 장기적 비전을 실현할 때 비로소 달성됩니다. 그런 만큼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기업의 철학과 비전이 승계자에게 그대로 계승되도록 해야 합니다.”

차기 CEO 선정 과정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한가? CEO 선정위원회 같은 기구는 필수적일까? 이에 대해서는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다. 박용만 회장은 “기업 내부 사정에 정통해야 하므로 공기업이라면 몰라도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단 사외이사는 이사회 멤버인 만큼 내부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차기 CEO는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나? 이른바 ‘제왕학’의 요체는 무엇인가?

박용만 회장은 “CEO는 구성원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이렇게 극대화된 역량이 잘 발현되도록 코칭하고 유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느 누구도 구성원의 총체적 역량을 능가할 순 없습니다. 왕국처럼 CEO 한 사람의 직관이나 선호에 의해 기업의 운명이 좌우된다면 그 기업의 지배구조가 잘못된 것이죠.”



일방적으로 낙점하는 지배구조 바꿔야CEO 승계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구자홍 동양자산운용 부회장은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오너 경영체제에서는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심사숙고해 적임자를 선정했더라도 오너가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고 하면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먹구구식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면 CEO 리스크에 오너 리스크까지 가중될 수 있다.

구학서 신세계 회장은 “대기업 가운데 본격적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한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오너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오너가 차기 CEO를 일방적으로 낙점하는 것이 가능한 현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간판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과반선인 마당에 한 자릿수의 소수 지분을 보유한 오너가 가업 승계하듯이 경영권을 친족에게 물려주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CEO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에서 3세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이 적기입니다. 이런 문제야말로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한 정부가 풀어야 합니다. 오너 경영인과 전문경영인이 공존하는 조직을 만들어 여기서 논의하게 하는 것도 한 방안입니다.”

모든 샐러리맨의 꿈은 CEO다. 김은선 회장은 “구성원 누구나 CEO 후보군을 꿈꿀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내고 이를 꽃피울 수 있는 기업문화를 꾸준히 가꾸는 것이 승계 성공의 관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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