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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가 만난 CEO] 이상직 이스타항공그룹 회장

[윤석화가 만난 CEO] 이상직 이스타항공그룹 회장


윤석화 설치극장 정미소 대표

극단 지원 왜 하세요

이상직 이스타항공그룹 회장

CEO는 예술적 감성 있어야죠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하는 메세나(Mecenat) 활동을 하는 기업은 많다. 이스타항공그룹의 이상직 회장도 그중 하나다. 이스타항공은 2007년부터 극단 ‘명태’를 후원했다. 2009년 취항한 이스타항공은 이스타투자자문, 이스타벤처투자 등 계열사를 둔 그룹으로 성장했다. 설치극장 ‘정미소’의 윤석화 대표가 그를 만났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설치극장 4층에 있는 월간 ‘객석’ 도서실. 오후 3시 정각에 이상직 회장이 밝은 모습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이스타항공에서 만든 모형 비행기가 들려 있었다. 두 사람은 초면인데도 오래된 사이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예술적 감성이랄까…. 서로 통하는 듯했다. 모형 비행기를 가운데 두고 대담이 오갔다.



윤석화 이스타항공이 취항 2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성장비결이 무엇입니까?



이상직 저비용항공(Low Cost Carrier)으로 실용적 가격을 제시한 게 주효했습니다. 1만9900원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는 파격적 가격을 내놓기도 했죠. 대형 항공사들의 독점으로 티켓 가격에 거품이 있었습니다. 기존 저비용항공사에서 문제가 됐던 안전에 신경 썼습니다. 초기부터 보잉 747 비행기를 도입했습니다. 기존 저비용항공사는 안전성이 떨어지는 프로펠러 비행기로 외면 받았죠. 이스타항공이 올해 2월까지 무사고 운항을 하면 저비용항공사 최초로 3만 시간 무사고 기록을 세웁니다. 특히 우리 비행기는 디자인이 다릅니다. 보통 비행기를 타면 답답해 빨리 내리고 싶죠. 이스타항공에서는 탑승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하도록 비행기에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우주, 하늘, 어린왕자 등을 컨셉트로 비행기를 디자인했습니다.



윤석화 예술적으로 접근하셨네요.



이상직 스카이호에는 비행기 내부 천장에 하늘과 숲을 넣었어요. 숲 위를 나는 것처럼 느끼게요. 스페이스호에는 천장에 별이 있습니다. 어린왕자호에는 다양한 모습의 어린 왕자를 넣었습니다. 승무원이 고객과 사진을 찍고 가위바위보 게임을 합니다. 탑승객이 추억을 만들고 가는 거죠.



윤석화 기발한 아이디어네요. 10년 전 일본에서 기차여행을 했습니다. 그때 탔던 기차의 디자인도 독특했습니다. 특별한 추억이 됐어요. 예술로 감동을 전하면 서비스 부가가치가 커집니다. 저비용항공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네요.



이상직 2001년 인수한 플랜트 업체 케이아이씨를 중견기업으로 키웠습니다. 하지만 플랜트 분야에서는 중소기업의 한계가 컸어요. 저비용항공 사업에 비전이 있다고 봤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죠. 국내에는 대형 항공사와 경쟁이 가능한 저비용항공사가 없었죠. 2007년 저비용항공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름은 동방(East)의 별(Star)이란 의미에서 이스타(Eastar)로 지었습니다. 이스타항공은 김포~제주, 청주~제주, 군산~제주 노선을 운영합니다. 해외 노선으로는 인천∼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북단의 코타키나발루, 인천~중국 장가제(張家界) 직항노선을 만들었습니다.



윤석화 처음에는 증권사에서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상직 대학 졸업 후 현대증권에 입사했습니다. 증권사에서 자본시장의 원리를 배우면 성장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봤습니다. 그룹 공채 경쟁률이 100대1 정도였어요. 증권맨이 각광 받을 때라 현대그룹에서 현대증권의 인기가 가장 높았습니다.



윤석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상직 펀드매니저로서 투자 수익률 면에서 1등을 한 적이 많아요. 고비가 왔습니다. 한번은 경영 성과가 좋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 스무 곳에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중 18개 기업이 부도 났어요. 뛰어난 기술이 없거나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CEO에게 철학이 없어서였죠. 주주는 기술을 보고 투자했는데, CEO는 불필요한 곳에 과소비를 한 거예요. 아무리 뛰어난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라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CEO를 넘어설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투자하고 싶은 기업을 만들기로 했죠. 그때 이스타항공그룹의 모기업인 케이아이씨 오너를 만났어요. 그분은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만 관심 있는 아들에게는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기업을 키워 보겠다며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윤석화 플랜트 업체 케이아이씨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나요.



이상직 플랜트는 전력, 석유, 가스 생산설비를 공급하거나 공장을 짓는 산업입니다. 케이아이씨에서 만든 설비로 석탄에서 석유 원료를 뽑고 불순물을 걸러냅니다. SK정유가 케이아이씨의 플랜트로 원유에서 나프타, 가솔린을 만듭니다.



윤석화 기초산업 분야네요. 꿈을 키우고 대안을 준비한 듯합니다.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이상직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나전칠기 사업을 했습니다. 큰형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러 작은 마을로 갔습니다. 그런데 신식 그릇이 더 인기를 끌면서 나전칠기 사업이 기울었어요. 큰형 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편하지 않았죠. 아버지에게 용돈 한 푼 받지 못했어요. 불만이 컸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출했어요. 멀리는 못 갔습니다. 익산에 있는 자장면 가게에 취직했어요. 그런데 형수가 찾아왔습니다. 그때 형수에게 끌려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큰 중국집을 운영할지도 몰라요.

극단 명태의 창작 뮤지컬 <비상>.



윤석화 돌아와 공부가 잘됐나요?



이상직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형과 요구르트 배달을 하는 누나가 번갈아 가며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줬어요.



윤석화 멘토로 삼는 기업인이 있나요.



이상직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서 도전정신을 배웠습니다. 정 회장이 현대건설 설립을 추진했을 때 모두 반대했대요. 그런데도 미래 성장동력을 파악하고 현대건설을 세웠습니다. 현대건설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죠. 워런 버핏에게서는 투자 철학을 얻었습니다. 기본기를 잘 갖춘 기업에 투자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다는 게 그의 철학입니다. 투자자는 수익뿐 아니라 성장한 기업 근로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윤석화 워런 버핏과 정주영 회장님을 만난 적이 있나요. 직접 현장에 나가 살피는 열정이 있고,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분을 멘토로 여기는 회장님에게도 따뜻한 가슴이 있나요?



이상직 2010년 어린이 구호단체 굿월드 자선은행 대표를 맡았습니다. 2001년 출범한 굿월드 자선은행에서는 회원 1600여 명이 하루 100원씩 모아 전북 소외계층을 지원하고 네팔을 비롯한 해외에서 어린이 구호활동을 합니다.



윤석화 무척 의미 있는 일이네요. 2001년 인수한 케이아이씨의 매출이 10배 늘었습니다. 그동안 회장님의 생활도 무척 나아졌겠어요.



이상직 샐러리맨이었을 때 장만한 105.6㎡(32평) 넓이의 아파트에서 지금도 삽니다. 10년 전 산 그랜저 XG를 탑니다. 처음에는 직원들과 지인들이 이상하게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10년 동안 변치 않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이 저를 더 신뢰하는 듯합니다.



윤석화 이스타항공그룹 계열사인 삼양감속기에서 극단 명태를 2007년부터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활동을 인정받아 2010 메세나 대상에서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유지한 기업과 문화예술단체에 주는 ‘Arts & Business’ 상도 받았죠. 명태 지원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상직 극단 명태 대표가 고등학교 후배예요. 1997년 전주에서 창단한 명태는 <신의 아그네스> <진이의 전생> 등을 공연하며 새로운 표현양식을 가진 실험극단으로 성장했습니다. 2001년 명태의 공연을 봤습니다. 열악환 환경에도 열정을 갖고 활동하는 젊은 배우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삼양감속기의 이경일 대표가 회사 차원에서 후원하겠다고 했죠.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를 활용하면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는 중소기업이 예술단체에 지원하는 금액만큼 추가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메세나협의회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 사업을 통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해 평균 2000만원을 후원했습니다.



윤석화 메세나 활동이 기업 경영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이상직 이스타항공은 명태가 활동하는 지역 부근에 있는 새만금 간척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간척지를 채울 콘텐트가 다양합니다. 항공도 들어갈 수 있죠. 명태를 지원하면 현지인 사이에 이스타항공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윤석화 이스타항공이 하는 다른 메세나 활동이 있나요.



이상직 지난 3년 동안 전주국제영화제를 지원했습니다. 2010년에는 ‘이스타항공상’을 신설해 한국영화 단편 경쟁부문 최우수작품 수상자에게 1500만원을 지원했습니다. 이스타항공 탑승객에게는 기내 이벤트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 입장권을 제공했습니다. ‘중소기업과 함께하기’는 다른 형태의 사회공헌입니다. 이스타항공은 2008년 동대문에 있는 사회적 기업 ‘참 신나는 옷’에 승무원 유니폼 제작을 맡겼습니다. 이 업체는 이 실적을 토대로 씨티은행의 유니폼도 만들었습니다. 2009년에는 이스타항공이 노동부와 ‘사회적 기업 지원’ 협약을 맺었습니다.



윤석화 올해 어떤 목표를 세웠나요.



이상직 흑자 경영입니다. 지난해까지는 적자를 봤어요. 올해는 매출을 끌어올리고 흑자를 달성할 계획입니다. 이스타항공이 아시아 최고의 저비용항공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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