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eature Story 이서형 금호석유화학 사장

Feature Story 이서형 금호석유화학 사장

1944년생 1995년 금호건설 대표이사 부사장
1997~2001년 금호건설 대표이사 사장
2005년 용인대학교 회화과 학사
2008년 용인대 예술대학원 회화과 석사
2010년 4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

2월 12일 용인시 기흥구 동백지구를 지나 88골프장으로 향했다. 산길을 오르자 그림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향린동산이 나왔다. 야외수영장과 테니스장을 갖춘 고급 전원주택이다. 여기서 10여 분을 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자동차 없이는 갈 수 없는 산 중턱에 15채의 전원주택 금호베스트빌이 있다.

지붕 모양이나 외관이 조금씩 달랐다. 나무 하나 바위 하나 옮기지 않고 자연 위에 얹은 집이다. 산꼭대기 왼쪽에서 두 번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인자한 미소를 띤 한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보라색 점퍼에 작업복 바지 차림새다. 작업복 곳곳에는 물감이 묻어 있다.

지난해 4월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서형(67)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이다. 7년 만이다. 그는 1973년 외환은행 기술행원을 시작으로 경남기업 등을 거쳐 79년 금호건설에 입사했다. 95년부터 7년간은 금호건설 경영을 맡았다. 국내 건설사 최장수 CEO 기록이다. 모시던 박정구 회장이 폐암으로 2002년 별세하자 그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누구의 권유도 없었다.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왔다고 느꼈을 뿐이다. 그는 이후 서양화가로 변신해 제2 인생을 살아왔다. 2007년과 2010년 두 차례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화가였던 그가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이번에는 건설이 아니라 금호석유화학이다. 그가 손수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미술과 CEO로서의 삶에 대해 들었다.

나는 은퇴 후 매일 뒷산에 다닌다. 이른 아침 사랑하는 진돗개 두 마리 호돌이, 호순이와 함께 걷는다. 초봄 아직도 썰렁한 때 막 피기 시작한 진달래, 개나리, 특히 비쩍 마른 낙엽 사이로 연둣빛 잎이 살짝 고개를 내밀 때 생명의 무한한 신비로움을 느낀다. 무더위가 한창인 한여름 짙은 녹음이 강한 햇살을 가려줄 때, 혹은 헐벗은 나무 사이로 낙엽 위에 쌓인 흰눈을 밟을 때 들리는 사각사각 하는 소리들, 이러한 계절들의 변화를 함께하며 아울러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이서형 <작업노트> 중, 2007년

이 대표 어렸을 적 얘기다. 마루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집에 놀러 온 아버지 친구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8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미술 얘긴 꺼내지 못했다.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건축과에 들어갔다. 이후 건축업계에서 25년을 일했다. 그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그림은 잊고 살았다고 말한다. 일만 했던 삶이 은퇴를 하면서 확 바뀌었다. 집도 용인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옮겼다. “매일 뒷산을 오르내리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변화를 즐겼어요. 겨우내 말라 있던 나뭇가지에서 움트는 새싹을 보면서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에 감탄했습니다. 그 느낌을 스케치북에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어요.”

인생을 표현한 ‘사계 No21’은 금호갤러리에 기증했다.



59세에 미술대 편입한 ‘왕 오빠’집안 곳곳에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벽도 모자라 거실 한편에 주르륵 세워뒀다. 추상화 작품들 속에 초상화 한 점이 눈에 띈다. 갈색 모자를 쓴 이 대표 얼굴이다. 초상화를 가리키자 이 대표는 학교 과제로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8년 전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용인대 회화과 3학년에 편입했다. 아내가 극력 반대했다. 회갑을 앞둔 남편이 자식보다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문화센터에 가라고 권유했다. 이 대표는 달랐다. “공부를 하려면 이론부터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분야 전문가에게 차근차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죠. 아내에게 딱 한 학기만 해볼 테니 그 다음에 생각하자고 했어요.”

큰소리를 쳤지만 학교생활은 아내의 걱정대로 힘들었다. 강의실 들어갈 때마다 교수로 오해 받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이론 지식 없이 3학년으로 편입하다 보니 동기생을 따라가기 벅찼다. 꼼짝없이 1·2학년 전공과목 공부와 실기과제를 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휴일은 말할 것도 없이 명절 때도 도시락 싸 들고 학교로 향했다. 이 대표는 대학생활에서 얻은 게 많다고 자랑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젊어졌다. 20대 친구들과 캠퍼스를 활보하다 보니 20년은 젊어진 기분이란다. “처음엔 다들 저를 할아버지라고 불렀어요. 조금 용기 있는 여학생들은 ‘왕 오빠’라고 부르더군요. 같이 공부하는 학생이니까 그냥 선배라고 부르게 했죠. 지금은 다들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잘 따라요. 요즘에는 회사 경영 하느라 연락을 잘 못했는데요. 졸업 전시회에는 빠지지 않고 가려고 해요.”

욕심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같은 대학 예술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림을 배울수록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싶어졌던 것.



삶을 돌아보며 인생을 화폭에 담다그가 화실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일어섰다. 정원에서 연결되는 반지하 방문을 열자 여러 개의 이젤 위에 그림이 놓여 있다. 방 한쪽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붓과 물감이 늘어놓여 있다. 이젤 뒤편에는 수십 개의 캔버스가 종이로 꽁꽁 싸여 있었다.

그는 2007년과 2010년 두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때 전시했던 작품들이다. 이 중 몇 작품을 꺼내 보여줬다. 첫 번째 전시회 제목은 ‘정(靜)·중(中)·동(動)’이다. 처음 붓을 잡게 한 자연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순환이 인생 같습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해 결실을 거두고 마침내 죽음으로써 생을 마감하는 자연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죠.”

그는 사계절을 캔버스에 담았다. 거대한 당산나무를 상공에서 바라본 듯한 모습이다. 작품명 ‘사계 No21’은 현재 금호미술관에 기증했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도 이 대표는 탄생에 관심이 많다. 생명의 원천인 에너지(氣)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작품 속에 유난히 꽃이 많은 이유다. 특히 꽃망울이 막 터지려고 하는 순간들이다.

기를 흔히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돌아와서 꽃피고 새 잎이 날 때, 어두운 밤을 지나 새벽녘 동틀 무렵 연보랏빛 여명을 볼 때, 몸이 아프다가 회복될 무렵, 몸에서 느끼는 원기가 있으며 이것은 추움에서 따뜻함,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전환점, 즉 음기에서 양기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느끼는 그런 것들이다.

-이서형 <작업노트> 중, 2007년

동양적인 사상을 담은 그의 작품은 2010년 전시회 ‘살풀이춤’에서 한국적인 색채를 더했다. 오방색 기운이 감도는 화려한 색채로 살풀이를 하는 춤꾼 동작을 표현했다. “살풀이춤은 무속신앙에 바탕을 둔 우리 고유의 전통무용이죠. 가슴에 뭉친 한을 풀기 위해 추는 춤이에요.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해봤어요. 한을 푼다는 것은 풀어서 섞인다고 볼 수 있죠. 바로 소통이죠. 살풀이춤을 통해 사람 간의 소통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전시회를 준비하려면 몇 달은 작업실에서 지낸다. 컨셉트를 잡는 데 보통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가 보여준 스케치북에는 수백 번 같은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창작의 고통에 며칠이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어요. 모든 작업이 끝난 후 전시회를 했을 땐 마치 살풀이를 한 듯 온몸이 시원했어요. 신기한 일이죠.” 이 대표의 전시회에 두 번 모두 참석한 미술평론가 윤진섭 호남대 교수는 이서형 화백의 그림은 실험의식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식지 않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진 화가라고 덧붙였다.

산속에 있는 이서형 대표의 집.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한평생 살다 보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궂은 일, 좋은 일을 만나게 된다. 슬픔과 괴로움 또는 힘든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뭉치게 하고 긴장시켜서 한(恨)을 갖게 하고 반면 그런 궂은 일이 사라지면 저절로 흥(興)이 솟아나 마음이 풀어지고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이서형 <작업노트> 중, 2010년



다시 CEO로 복귀하다화가로 제2 인생을 살아온 그가 다시 CEO로 복귀했다. 오너 박찬구 대표이사 회장, 김성채 대표이사와 함께 3인 공동대표가 됐다. 회사 얘기를 묻자 말수가 부쩍 줄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영에 복귀한 이 대표는 회사 얘기를 하는 게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2009년 형제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혔던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위기가 찾아왔다. 금호는 박인천 창업자의 유언대로 65세가 되면 경영권을 아우에게 물려줬다. 박성용 회장과 박정구 회장을 거쳐 2002년 박삼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운송업체로 출발한 금호아시아나는 형제경영 전통을 이어가며 화학·건설·항공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고,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유동성 압박에 시달렸다. 인수를 반대했던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박삼구 회장은 그를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에서 해임했다. 형제의 난이다. 형제 간 싸움이 일면서 그룹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이후 회사를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박삼구 명예회장 부자가 금호타이어를, 박찬구 회장 부자와 박정구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상무보가 금호석유화학을 공동 경영키로 한 것.

금호석유화학은 박철완 상무보가 지분 11.9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박찬구 회장이 7.61%, 그의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상무보가 8.59%를 보유했다. 부자의 주식을 합하면 16.2%로 박철완 상무보보다 앞선다. 게다가 그의 나이는 서른셋으로 일선에서 경영을 맡기는 이르다. 박철완 상무보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했다. 바로 고 박정구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이서형 대표다.

이 대표의 CEO 복귀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미 경영에서 손을 뗀 지 7년이 지난 데다 나이도 많았다. 정중히 사양했다. 그때 박철완 상무보의 어머니 김형일 여사가 찾아왔다. 박 상무보도 그를 만나러 왔다.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이 대표는 박정구 회장께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승낙했다고 했다.

박정구 회장이 95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맡았을 때 이 대표가 금호건설 사장으로 있었다. 그를 믿고 격려했던 박 회장이 돌아가시자 이 대표도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인천 창업회장의 창업정신인 집념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박정구 회장의 경영철학인 정직과 상생을 계승 발전시키겠습니다. 박찬구 회장을 모시고 전 임직원과 함께 조속히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리겠습니다.”

지난해 4월 8일 취임식 때 이 대표가 한 얘기다. 그는 오너가(家) 사이를 조율하면서 회사가 하루빨리 정상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운 좋게도 지난해 석유화학 경기가 호황을 맞으면서 실적이 개선됐다”고 들려줬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매출 3조8863억원에 영업이익 3645억원을 기록했다. 창업 이후 가장 좋은 성과다.

이 대표는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이 갖고 있는 금호타이어 지분 모두를 보호예수기간이 끝나는 4개월 후에 팔 계획입니다. 그룹 CI도 바꾸고요. 단 사명은 그대로 유지할 생각이에요. 금호에는 선대 회장의 정신이 담겨 있고 세계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이 대표에게 경영에 복귀한 소감을 묻자 뜬금없이 휴대전화 속 손자 사진을 찾아서 보여줬다. 지난해 태어난 큰손자다. “이제 저도 나이가 있는데요. 손주도 보고 싶고…. 경영에 욕심은 없습니다. 부족한 점도 많고요. 박철완 상무보가 경영 일선에 하루빨리 합류할 수 있도록 힘을 싣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고 얘기했다. 지난해 살풀이춤 전시회에서 퍼포먼스를 시도했다. 커다란 캔버스에서 무용가 나영애씨가 버선에 물감을 묻힌 채 살풀이춤을 췄다. 미국의 추상화가로 유명한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기법과 비슷하다. 잭슨 폴록은 무의식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물감을 뿌리는 동작으로 그림을 그린다. 반면 이 대표는 춤추는 발자국을 담아냈다. 춤이 그린 그림이 되는 것이다. 이 작업을 보다 정교하게 발전시켜볼 계획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주)유림테크, 대구국가산단 미래차 부품공장 신설에 1,200억 투자

2포항시 "덴마크에서 해상풍력과 수산업 상생방안 찾는다"

3日 도레이, 구미사업장에 5,000억 투입해 첨단소재 생산시설 확충

45만원권 위조지폐 대량으로 유통한 일당 18명 검거

5‘사생활 유포·협박’ 황의조 형수에…검찰, 항소심서 징역 4년 구형

6 국내서 쌓은 ‘삼성전자 포인트’ 이제 미국서도 쓴다…‘국가 호환’ 제도 도입

7이지스자산운용, 취약계층 상생 위한 '행복한 바자회' 개최

8마스턴운용. “사모 리츠에도 개인 투자자 참여 기회 제공"

9새마을금고중앙회, 베트남협동조합연맹과 ‘상생협력’ 위한 업무협약

실시간 뉴스

1(주)유림테크, 대구국가산단 미래차 부품공장 신설에 1,200억 투자

2포항시 "덴마크에서 해상풍력과 수산업 상생방안 찾는다"

3日 도레이, 구미사업장에 5,000억 투입해 첨단소재 생산시설 확충

45만원권 위조지폐 대량으로 유통한 일당 18명 검거

5‘사생활 유포·협박’ 황의조 형수에…검찰, 항소심서 징역 4년 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