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FTA행 급행열차 타나
일본 FTA행 급행열차 타나
1월 초 연두 기자회견에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TPP(Trans-Pacific Partnership Agreement) 협상 참여 여부와 소비세를 포함한 세제개혁 방향을 6월까지 결정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TPP는 환태평양 경제적동반자협정을 뜻한다. 일본의 TPP 가입과 소비세 관련 세제 문제는 올 한 해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에서 뜨겁게 달궈질 이슈다. 간 나오토 총리가 ‘6월 말까지’란 시한을 강조한 만큼 정권 유지를 건 공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TPP는 포괄적이고 수준 높은 FTA다. 농업 분야를 포함해 모든 품목에 대해 발효 후 10년 내 관세를 완전 철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서비스, 지적재산권 보호, 정부 조달의 투명성 확보, 인적 이동 등 폭넓은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일본이 추진해온 FTA와는 질적으로 매우 다르다. 그간 일본이 추진해온 FTA는 통상적이고 포괄적이었다. 관세 철폐와 무역장벽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인적 이동 자유화와 지적재산권 보호 등이 포함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일본은 FTA 대신 EPA(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즉 경제적동반자협정이란 용어를 사용해 왔다. 이 배경에는 자신이 가진 산업기술의 우위를 바탕으로 취약 분야인 농업 개방을 최소화하면서 상대국에 대해 보다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2000년 이후 세계 각국은 FTA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고이즈미 정권 이후 역대 정권이 늘 ‘FTA 확대’를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농업 문제가 걸림돌이 돼 미국 등 대국과의 FTA 협상은 시도하지도 못하고 개도국이나 작은 나라와 EPA를 체결하는 데 치중했다.
이러한 일본이 왜 농업 분야도 예외 없이 완전 개방하는 TPP에 갑자기 뛰어들겠다고 하는 걸까? 간 나오토 정권은 미국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TPP에 가입함으로써 하토야마 정권에서 멀어진 대미관계를 강화하고자 한다.
TPP는 2006년 4개국이 체결할 때만 하더라도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09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TPP에 가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일본에서 TPP가 주목 받았다. 일본은 TPP가 사실상 미·일 FTA가 되는 만큼 이를 대미 외교 강화를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고 싶어 한다.
TPP 협상이 미국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 흐름에 편승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갈등과 중국의 희소금속 수출 규제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중국이 보인 힘의 논리와 중국경제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일본경제에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득이 된다는 계산 때문이기도 하다. 인구 감소와 디플레이션으로 내수가 정체된 일본은 수출에서 활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은 성장이 둔해지고 있지만 아시아와 중남미는 높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TPP 참여국과 이미 FTA 체결이들 나라는 인구 증가를 배경으로 내수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일본으로서는 이들과의 FTA가 수출시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내각부와 경제산업성은 TPP에 가입할 경우 무역 확대에 따른 GDP 증가율만 0.6%고 관련 산업 투자 확대 효과까지 합하면 증가율은 2%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FTA 전략에서 한국보다 뒤처진 일본 정부, 특히 경제산업성은 TPP 가입으로 한꺼번에 9개국과의 FTA를 체결하게 되는 만큼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키겠다는 생각도 있다.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한국과의 경쟁에서 일본이 불리해졌다는 산업계의 불만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일본이 TPP 협상에 참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일본이 FTA를 추진해오면서 일관되게 나타났던 문제가 농업 개방인데, 이를 둘러싸고 정·관계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여전히 신중론이 강해 농업을 개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일본 민주당 분위기는 농업 현실을 감안하면 TPP 가입이 어렵지만 전체적 국익을 생각하면 필요하다는 데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하지만 정치적 리더십이 약해 당내에서도 반발 여론에 밀려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농림수산성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촌 출신 의원 등 이해관계자의 반대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국내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TPP 협상은 11월 타결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의 TPP 협상 참여 여부는 6월이 돼야 결정된다. 일본 정부는 농산물 관세 철폐를 예외조치로 요구할 생각이지만, 일본이 TPP 협상에 참여하기 전 농산물 협상이 상당 부분 진전될 가능성이 있어 실익이 줄어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이 TPP 협상에 참여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해서 한국이 TPP 가입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고 판단된다. 한국은 일본을 제외하고 TPP에 참여하는 국가들과 이미 FTA를 체결하고 있거나 또는 FTA 협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TPP 가입이 결정되더라도 그것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발 앞선 FTA로 일본 기업과의 경합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해졌던 입장이 소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본이 TPP에 참여하게 되면 그간 일본의 FTA 확대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는 농업 문제를 매듭지을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이 한국, 중국 등과 FTA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한·일 FTA에 대한 방향을 명확히 정립해 둘 필요가 있으며, 산업계도 경쟁력 강화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일본이 TPP 가입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농업 경쟁력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농업 개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간 1조 엔이 넘는 기존 농업보조금 제도 등을 뜯어고치는 동시에 농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농업정책에도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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