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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ter] ‘스파이더맨’의 진짜 악당은 누구?

[Theater] ‘스파이더맨’의 진짜 악당은 누구?

브로드웨이의 초대형 신작 뮤지컬 ‘스파이더맨(Spider-Man: Turn Off the Dark)’에 바람 잘 날이 없다. 거금 6500만 달러(약 732억 원, 계속 늘어난다)가 투입된 이 작품은 그동안 온갖 악재에 시달려 왔다. 지난해 11월 시사공연(공식 개막은 계속 연장됐다)이 시작된 이래 배우 네 명이 부상했다. 한 주인공은 공중연기 도중 10m 아래로 추락해 늑골 4개가 부러지고 두개골에 미세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사고가 잇따르자 이달 초 미 직업안전위생국은 그 뮤지컬이 공연되는 폭스우즈 극장을 조사한 뒤 제작팀에 안전조치 소홀 책임을 물어 1만26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 모든 문제를 고려할 때 배우 외에도 주요 인물의 추락이 불가피했을지 모른다.

결국 뮤지컬 ‘스파이더맨’의 감독 줄리 테이머가 지난 3월 11일 쫓겨났다. 테이머는 1997년 디즈니 원작 뮤지컬 ‘라이언킹’을 무대에 올린 스타감독이다(토니상을 받은 이 작품은 지난 14년 동안 45억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사실 관객과 비평가가 그 뮤지컬을 좋아했다면 그냥 넘어갈 만한 문제였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돈을 많이 들인 동시에 가장 형편없는 작품(뉴욕타임스)”이란 혹평이 쏟아지면서 어차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따라서 테이머의 퇴출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브로드웨이의 실력자들은 드러내진 않지만 쌤통이라고 고소해 하는 듯하다(테이머가 같이 일하기 편한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들은 그녀가 다시는 브로드웨이에서 일하지 않으리라 내다본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진짜 악당이 누구일까? 그들이 공정한 처분을 받았을까?

이 작품의 음악은 록밴드 U2의 보노(보컬)와 디 에지(기타)가 맡았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음악은 ‘라이언킹’의 주제곡 ‘하쿠나 마타타’처럼 귀에 쏙 들어오고 소화하기 쉬운 노래가 아니다. 제작팀 내부에서도 음악이 왜 그리 음산한지 이해가 안 간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U2를 동원했는데도 관객의 흥을 돋우는 활기차고 강렬한 음악이 없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한 관계자가 말했다. “만약 줄리 테이머가 그런 노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으니 달라져야 한다.”

관객은 시사공연이 끝난 뒤 극장 밖을 나설 때 그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는다. 최근 시사공연을 관람한 수지 핑크(시카고 거주)는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다”고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J T 호렌스타인(뉴욕 거주)은 화난 표정으로 “원래 U2의 열혈 팬인데 나와 U2의 밀월은 끝장났다”고 말했다. “왜 선율이 아름답고 기억에 남을 노래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합당한 물음이다. 보노와 디 에지는 ‘스파이더맨’ 제작 기간 대부분을 자신들의 순회공연에 할애했다. 테이머를 동정하는 한 내부 소식통은 “지난 12월과 1월 줄리 테이머는 음악을 바꿀 필요가 있으니 시사공연을 잠정 중단하자고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듀서들이 거부했다. 보노와 디 에지는 그 자리에 아예 없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테이머, 보노, 디 에지는 그 문제에 관한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우연히도 3월 초 보노와 디 에지가 ‘스파이더맨’ 작업을 하려고 돌아왔을 때 테이머는 오래전 예정된 2011 TED 대회(기술·엔터테인먼트·디자인의 머리글자로 첨단 기술과 지적 유희, 예술과 디자인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행사) 강연 관계로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그 강연에서 테이머는 예술 창작에는 ‘질풍과 노도’가 필요하다며 ‘스파이더맨’의 주제곡이 ‘Rise Above(뛰어올라라)’라고 소개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테이머의 친구 노먼 리어는 그녀의 낙관적인 겉모습의 뒤를 꿰뚫어 봤다. “보노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일하러 나왔는데 자신이 그 자리에 없다는 사실에 줄리 (테이머)는 미칠 듯이 괴로워했다”고 리어가 말했다. “그처럼 심적인 고통을 당한 줄리가 혼자 모든 책임을 졌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옳은 말일지 모른다. 홍보의 측면에서 보면 테이머가 보노 같은 합작자들보다 덜 유명하며 영화에서 주요 작품이 실패한 뒤 이 뮤지컬을 맡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기에 적합했던 듯하다. 2007년 테이머가 비틀스 노래를 중심으로 만든 뮤지컬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실패작으로 기록됐다. 지난해 가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색해 만든 영화 ‘템피스트’는 헬렌 미렌이 주연을 맡고 제작비를 약 2000만 달러나 들였지만 흥행수입이 27만7000달러에 그쳤다.

“줄리는 시인이며, 집요하고, 카리스마 넘치며,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고, 모든 위대한 예술가처럼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연약하다”고 ‘템피스트’의 주연을 맡았던 미렌이 말했다. “줄리는 자신이 맡은 일과 합작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친다.” ‘스파이더맨’에서 테이머와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도 과연 그런 평이 내려질까?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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