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임금인상, 브레이크가 없다
중국 임금인상, 브레이크가 없다
3월 3일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가 개막된 베이징 인민대회당. 올해 이 자리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정협위원 간에 인력난 해결 방법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인력난이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과거 막대한 노동력 공급의 원천이었던 중서부 내륙지역마저 사람을 못 구해 아우성이다.
최근 10여 년간 투자기업이 몰려든 화난(華南)과 화둥(華東)지역은 춘절 연휴만 지나면 고향에서 돌아오지 않는 노동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왔다. 올해는 과거보다 더 심각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들어 창장(長江) 삼각주지역 농민공 수는 2816만 명으로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주장(珠江) 삼각주지역은 3282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23% 줄어들었다. 농민공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인 광둥성 둥관시에서는 올 춘절 때 고향으로 돌아간 약 350만 명의 노동자 중 160만 명만 회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인력난은 중국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급여 수준이 높고 복리후생이 나은 외국계 기업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2월 27일 KOTRA가 중국 진출 한국 투자기업 279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87%가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근로자를 구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답한 기업은 12.5%에 불과했다.
올해 춘절 연휴 기간 근로자 유실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투자기업의 51%가 근로자 유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전체 근로자의 57%까지 인력 유실을 경험했다는 기업도 나왔다.
자의식 강해져 힘든 일 기피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그동안 중국을 노동집약산업 생산기지로 삼았다. 그러나 최근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인한 임금인상, 노동계약법 발효 이후 기업에 불리해진 노동환경, 지난해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노사분규 등으로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올 들어 중국의 인력난이 특히 심해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정협 위원인 리리신(李立新)은 경제구조 변화 및 산업기지의 중서부 내륙지역 이전에 따른 노동력 이동이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수년간 중국 정부의 인프라 투자 등이 내륙지역에 집중되면서 이곳의 인력 수요가 확대됐고, 이로 인해 전통적 인력 공급기지로서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신세대 농민공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의식구조가 전환되고 있는 것도 주요 이유다. 과거 1세대 농민공은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한다’는 목표로 일했다. 그러나 현재 신세대 농민공은 개인가치 실현과 미래에 대해 더욱 관심이 많다. 자아의식이 강하다 보니 인내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힘든 일도 기피한다. 이로 인한 노사 갈등이 불거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중국 자체에서 인력 찾기가 어려워지자 동남아 지역의 비교적 저렴한 노동자로 눈을 돌리는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광시(廣西)대 동남아연구센터 장원산(張文山) 교수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는 500~800위안 정도면 고용할 수 있지만 중국인은 최소 1000~1500위안을 줘야 한다며 앞으로 동남아로부터의 인력 ‘수혈’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인력난은 최근 물가상승과 맞물려 고스란히 임금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후 중국 30개 성에서 표준 최저임금이 상향 조정됐다. 일반적으로 임금인상 폭은 10% 정도인데, 한꺼번에 25%나 오른 곳도 있다.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의 최저임금 표준은 2009년 월 650위안에서 2010년 5월 1일 820위안으로 26.2%나 올랐다. 올해 지린성 정부가 다시 20% 인상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창춘시 최저임금은 960위안으로 오른다.
홍콩 중화기업상회는 춘절 이후 임금 수준이 지난해보다 최소 20% 올랐다고 발표했다. 기업마다 근로자를 붙잡아두기 위해 거주여건을 개선하고 문화오락 시설을 짓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표준 최저임금 큰 폭 뛰어장먼(江門)시에 소재한 한 기업은 임금을 200~300위안 높이는 것 외에 직원을 위한 헬스센터 건립, 휴일에 공장과 시내를 왕복하는 셔틀버스 운행, 직원 자녀에 대한 교육지원 등 복리혜택을 추가해 직원 붙잡기에 혈안이다.
중국의 최저임금 표준이 큰 폭으로 뛰고 있는 이유는 금융위기 발생 후 1년 여 동안 억제됐던 임금이 최근 경기회복 추세와 물가급등에 따라 일제히 상승 모드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정부는 ‘민심 잡기’에 초점을 맞춘 12·5 규획 중 매년 평균 13%씩 최저임금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중화전국총공회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동안 총공회 측은 최저임금 수준이 실제 평균임금의 60% 선에는 달해야 한다고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어 기업을 긴장시키고 있다.
우리 기업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월 설문조사 응답 기업의 84.6%가 직원 임금을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0년 소비자물가상승률에 상응하는 수준인 5% 미만으로 임금을 인상한 기업은 전체의 8%에 불과한 반면 20% 이상 인상한 기업은 22%를 넘었다. 고임금, 고비용으로 인한 경영난 심화가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임금인상에 대한 근로자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데 있다. 응답 기업의 55%가 근로자의 반응이 ‘보통’이라고 답했으며 ‘만족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19%를 차지했다. 이는 임금인상률이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물가에 따른 생활여건 악화, 생산직과 고위직 노동자 간의 높은 임금 격차로 인해 일반 근로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인상은 기업의 생산원가를 상승시킬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국은 염가 노동력을 기본으로 한 제조업 중심의 ‘세계의 공장’으로 각인돼 왔다. 그러나 중국 노동자의 자아의식이 점차 강화되고 높은 임금인상이 장기적 추세로 고착된다면 채산성 악화와 경쟁력 약화로 신음하는 기업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늦기 전에 기업 체질개선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카멜레온 같은 변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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