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도피 기업사냥꾼 ‘잡혔다’
日 도피 기업사냥꾼 ‘잡혔다’

세라온홀딩스·엔블루와이드·고제를 상장폐지시킨 주범으로 지목된 사람.
무너뜨린 상장기업의 시가총액만 1조여원. 희대의 기업사냥꾼이자 사채업자 C씨가 3월 24일 구속 수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혐의는 사기·배임·횡령 등 일곱 가지다. C씨는 지난해 여름 진행된 검찰의 기업사냥꾼 수사 도중 일본으로 도피했다.
‘비호세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돌았다.2010년 여름, 증권가의 ‘봉이 김선달’들이 벌벌 떨었다. 검찰이 ‘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사채업자를 끌어들여 상장기업을 인수한 악덕 기업사냥꾼을 수사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소문은 실제 상황이 됐다. 검찰은 그해 중순 20여만 명의 소액투자자를 울린 기업사냥꾼 21명을 대거 기소했다. 이 가운덴 대주주·회계사도 있었다. 비판도 있었다. 정치권에선 “사건의 핵심 관련자가 아닌 바지사장만 건드린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의 중심엔 기업사냥꾼이자 사채업자로 알려진 C씨가 있었다. C씨를 둘러싼 논란은 2010년 10월 18일 대검찰청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다음은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법사위원)과 김준규 검찰총장, 김홍일 대검중수부장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C씨 비호세력 진짜 있나이은재 의원(이하 이은재): 대검중수부에서 지난 8월 기업사냥꾼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죠?
김준규 검찰총장(이하 김준규): 상장폐지 회사에 대한 수사를 했습니다.
이은재: 남부지검이 수사한 인삼제품 제조업체 고제의 대표이사와 분식회계를 눈감은 회계사 2명을 구속하는 것으로 수사를 끝냈죠?
김준규: 구체적 사실은 잘 파악이 안 돼 있습니다.
이은재: 그런데 이 사건의 주범은 따로 있습니다. 기업사냥꾼이자 사채업자인 C씨는 검찰과 변호사의 비호 아래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일본으로 출국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이은재 의원이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검찰이 기업사냥꾼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건 2010년 8월 2일. 고제의 대표와 회계사가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고제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혔던 C씨는 일본으로 유유히 출국했다. 출국금지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
검찰이 C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건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된 지 10일 후인 8월 12일. 전형적인 ‘뒷북수사’라는 오해를 살 만했다.
이은재: 대검 차장 출신 변호사가 중수부 기획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고제 사건에서) C씨를 빼달라고 요구했다는 말도 있던데, 중수부장은 알고 있나요?
김홍일 중수부장(이하 김홍일): 처음 듣는 것 같습니다.
이은재: C씨라는 사람은 7개 범죄가 있는데도 아직 일본에 체류 중이라던데요. 구속을 못 하는 것 아닙니까?
김홍일: 파악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C씨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50대 중반의 여성이라는 게 알려진 사실의 전부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여성답지 않게 배포가 크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문 기업사냥꾼 20여 명 중 한 명으로 꼽힌다”고 평했다. C씨의 한 측근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과시하듯 말하는 버릇이 있다. 은행권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식이다. 허풍인지 진짜인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무서운 구석이 있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조폭을 동원해 협박할 때도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C씨는 조폭 S파 소속 인물과 밀접한 관계다.
그의 기업사냥 수법은 대부분 가장납입, 속칭 ‘찍기’다. 찍기는 주로 유상증자 과정에서 이뤄진다. 겉으론 공모형식이지만 실제론 사채업자의 돈을 빌려 주금(株金)을 납입한다. 주금납입증명서가 발급되면 곧바로 입금된 돈을 전액 인출해 사채업자에게 갚는다. 법인등기부상 자본금은 증가하지만 주금 유입은 없다. 고금리의 이자까지 변제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자본금이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사례를 보자. 2008년 4월 C씨는 금속단조제품 제조업체 엔블루와이드의 70억원 유상증자 과정에서 가장납입하고, 그 대가로 10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형적인 찍기다. 공교롭게도 엔블루와이드의 자본금은 2010년 3월 전액 잠식됐다. 상장폐지도 피하지 못했다.
인삼제품 제조업체 고제의 사례도 비슷하다. 2008년 10월 C씨는 제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고제에 125억원을 투자했다. 같은 시기 고제는 인터넷 업체의 주식을 125억원에 매수했고, 인터넷 업체는 C씨의 지분을 125억원에 인수했다. 말하자면 ‘3각 찍기’가 이뤄진 것이다.
이은재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전주(錢主)로 자금을 댄 C씨는 125억원의 투자금과 이자를 순식간에 회수했다. 인터넷 업체와 고제의 경영진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주식을 소유했다. 그리고 이를 호재성 공시와 주가조작에 활용해 차액을 편취한 것으로 보인다.”
C씨가 찍기만 사용한 건 아니다. 정치권 관계자는 “C씨는 경영권을 일단 쥐면 바지사장을 내세운 뒤 호재성 정보 남발·주가 조작·자산 매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회사자금을 횡령했다”며 “좋은 회사를 인수하면 단물만 쏙 빼먹고 상장폐지시켰다”고 전했다.
C씨는 실제 2008년 8월 고제의 실적공시 과정에서 107억원을 부풀려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010년엔 고제의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자신의 차명주식을 일괄 매각했다는 혐의도 있다. C씨 주식의 차명관리인은 고제의 최대주주 K씨로 알려졌다.
상장폐지시킨 기업 시가총액 1조원정황은 대략 이렇다. 2009년 고제의 실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해 당기순손실은 219억원으로 전년 대비 185% 늘었다. 2회계연도 연속 자본잠식이 확실했다. 회계법인마저 감사의견을 거절했다. 이런 최악의 실적이 공개되기 전인 2010년 1월 고제 최대주주 K씨는 주식 140여만 주를 매각했다. 내부정보를 불법 활용한 셈이다. 고제의 경영난은 더 가중됐고, 그로부터 3개월 후 상장폐지됐다. 검찰 관계자는 “C씨는 자신의 주식을 K씨를 통해 차명관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며 “이번에 C씨와 K씨가 함께 구속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3월 말 기업사냥꾼 C씨·K씨를 비롯해 전직 금감원 직원도 구속했다. ‘기업사냥에 대한 단죄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C씨는 사기·배임·횡령 등 일곱 가지 혐의로 구속됐다”며 “C씨의 기업사냥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사냥꾼. 이들은 반복적으로 기업을 사냥하면서 자본시장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C씨를 둘러싼 혐의는 어디까지 드러날까. 그가 검찰 수사 도중 일본으로 도피할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답은 조만간 나온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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