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necting the Dots 영웅의 몰락
모텐슨을 처음 만났던 감동적인 순간을 기억한다. 수년 전, 뉴멕시코 산타페에 위치한 오래된 강당에서였다. 나는 아내, 아들과 함께 웅성거리는 군중 속에서 그를 기다렸다. 늦게 모습을 드러낸 그레그 모텐슨은 수줍은 미소를 날리며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관중을 향해 합장을 했다. 수줍은 듯 보이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를 그의 모습은 더욱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인사를 마친 그는 1993년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K2 등반에 실패하고 휴식을 취하러 찾아간 파키스탄의 작은 마을 코르페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은 그가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돌보며 차를 대접했다. 친절에 감동한 그는 마을로 다시 돌아가 학교를 설립했다. 그렇게 시작된 자선활동은 점차 확대돼 나중에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수백 개의 학교를 짓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날, 강당에 있는 우리가 도움을 준다면 더 많은 학교 설립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모텐슨이 해준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 ‘세 잔의 차(Three Cups of Tea)’를 요약한 내용이었다. 군데군데 낯간지러운 내용도 있었지만, 이야기 자체에는 거부하기 힘든 흡입력이 있었다. 한 남자가 고난과 절망이 넘쳤던 곳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받지 않을 사람은 없다. 출간 홍보와 기금 마련 행사였지만, 신비한 종교적 체험을 선사하는 신앙부흥회 같았다. 청중은 단순히 이야기를 듣기보다 믿음을 얻으려 그 자리에 있었다. 선교사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모텐슨은 노벨평화상 후보로 세 번이나 지명됐으며(그의 저서는 국방부의 필독서로 선정됐다), 갈등과 국경을 넘어선 평화 활동을 펼친 세속 성인이었다. 그는 아동, 특히 여아 교육의 힘을 설파했으며, 빈곤과 전쟁으로 얼룩진 부족사회에서 여아 교육을 위해 힘썼다. 냉소적이고 영악한 우리 시대에서 모텐슨은 신성한 후광이 비치는 진정한 이상가의 모습이었다. 그날 밤, 모텐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존경심으로 빛났고, 기부금 동전 상자를 움켜쥔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열의가 느껴졌다.
당시 수상한 점을 이미 눈치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정말 몰랐다. 행사에 참석했던 다른 모든 사람처럼 나 역시 수표에 서명하고 책을 샀다. 그리고 그의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를 철저히 믿었다.
지난주 CBS 시사프로그램 ‘60분’의 고발이 있은 뒤 베스트셀러 작가 존 크라카우어가 모텐슨의 활동에 얽힌 장문의 고발성 기사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덕분에 우리는 모텐슨이 허풍선이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K2 등반(코르페 주민의 친절로 학교를 세우게 됐다는 이야기)과 관련된 이야기 상당 부분이 허구였다. ‘세 잔의 차’에서는 탈레반에게 납치돼 끔찍한 경험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손님으로 대접 받으며 마을 주민의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 모텐슨이 몬태나 보즈먼에 설립한 자선단체 중앙아시아연구소의 운영은 구제불능일 정도로 엉망이고, 설립한 학교 상당수가 텅텅 비어 건초 창고로 사용된다는 충격적 내용이 이어졌다.
우리가 존경하던 사람에게서 결함을 발견하고 배신감과 실망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결함에 그치지 않는다. 모텐슨은 저서 출간과 자선단체 운영, 기부금 처리에서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가 지금껏 해왔던 선행이 모두 무너져 내릴 지경이다. 나를 비롯해 그를 믿었던 모든 사람은 산산이 부서진 영웅의 조각들을 주워담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속았을까?
미국인은 영웅을 갈망해 왔다. 지금 이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우리는 탐험가, 스포츠 천재, 자유훈장 수상자, 노벨상 수상자를 필요로 한다. 불굴의 위대한 세대, 허드슨 강의 영웅 설리 슐렌버거, 닐 암스트롱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를 구원해줄 백기사의 신화를 여전히 믿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영웅이 선행을 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가 진정으로 선한 사람임을 믿고 싶어한다. 청교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인은 흑백주의적 영웅관을 가진다. 영웅적 행동을 한 사람이 심각한 결점을 가졌거나 뿌리까지 썩었을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웅은 영웅다워야 한다. 여기에는 논쟁할 여지가 없다. 깨끗하게, 거기서 끝이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영웅과 성인은 불완전한 인간이다. 최고의 위인이라 해도 예외 없다. 모텐슨이 어렸을 적 존경했던 테레사 수녀 역시 생전에는 사랑의 선교회 운영, 마피아 두목과 제 3세계 독재자로부터 기부금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비판을 들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박사 논문 표절과 혼외 정사로 비난받았다.
간디는 자신의 금욕 의지를 시험하려 나체의 젊은 여성 옆에서 잠을 자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지난 3월 출간된 조셉 렐리벨드의 간디 전기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독일계 유대인 건축가와 동성애적 관계를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들 역시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적인 업적을 달성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영웅을 기다리는 우리의 열망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방대한 규모와 서부 개척시대 신화에 기인한다. 서부를 ‘개척’하던 시기에 가장 인기를 끌었던 책은 바로 ‘피와 천둥’으로 불렸던 통속 영웅소설이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서부 영웅 키트 카슨이 납치된 여성을 구해내고 인디언들을 물리쳐 마을을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키트 카슨은 실존 인물이고 그가 세운 업적은 실제로도 대단했지만, 동부에 있던 통속 작가들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실제 이야기를 극적으로 꾸며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당시 미국은 백인이 북아메리카 땅을 점령해야 한다는 ‘명백한 운명’을 실현해줄 단 하나의 영웅에 목말라 있었다. 영웅은 미국의 업적을 드높이는 동시에 서부 정복의 어두운 면을 단순화해줘야 했다. 영웅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크라카우어도 기사에서 이 부분을 다룬다. 모텐슨의 이야기가 사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이유는 끝없이 이어지는 지저분한 전쟁 속에서 실추된 미국의 양심을 달래줬기 때문이다. 모텐슨의 전 동료는 그가 “아프가니스탄이 가져온 하나의 증상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가장 적절히 표현한 말이다. “최악의 상황이 계속됐고, 우리 모두는 좋은 소식에 목말라 있었다. 그때 모텐슨이 좋은 소식을 전해줬다.”
지난주 모텐슨에 대한 대중의 거센 비난과 단죄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영웅의 추락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모텐슨을 겨냥한 인신공격은 너무 빨리 이뤄졌다. 인쇄매체가 주를 이루던 시절에는 영웅을 단상에서 끌어내리려면 수 주에서 수 개월까지 걸렸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면서 영웅은 수 시간, 아니 수 분만에 철저히 망가졌다. 수백 개의 웹사이트와 블로그, 채팅방, 소셜미디어 사이트 덕분에 대중의 반응 또한 충격에서 불신, 체념, 격분, 비난, 무감각 그리고 종국에는 망각의 순서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갑작스럽게 닥쳐온 폭풍에 모텐슨 측의 반응은 확실치 않았다. 모텐슨은 자신이 “심장에 난 구멍(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구멍)”을 고치려고 수술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아직 공식 입장은 발표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이런 혐의들이 그의 위대한 소명에 치명타를 날리지 못했다는 순진한 믿음에 매달리고 싶다. ‘세 잔의 차’에서 그가 밝힌 소명은 분명 영웅적이었다. 영웅이 쓰러져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필자는 미국 역사가이자 언론인이다.
번역 우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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