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nance >> 헛발 디딘 ‘오마하의 현자’
미국은 영웅을 곧잘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존재로 치켜세운다. 월스트리트에선 사실 그런 일이 문제 되지 않았다. 영웅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확실히 예외였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출신인 버핏은 월스트리트 안이 아니라 그 위에 군림했고, J P 모건보다는 마크 트웨인에게서 더 많이 빌려온 소박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는 미국의 세속적 신화를 구현한 인물이다(이전에 책에서 내가 그렇게 썼다). 중부 대평원 출신인 버핏은 부패한 북동부, 특히 월스트리트를 해독시켰다. 한 라디오 진행자가 내게 버핏이 최근까지 “거의 완벽하게” 행동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정도로 그의 명망은 높았다.
하지만 들추어보면 ‘완벽한’ 인간은 없다. ‘자기 하인에게 영웅은 없다’는 속담을 생각해 보라. 이제 데이비스 소콜 사건으로 이 위대한 투자자의 속옷 일부가 드러났다.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임원인 소콜이 심각한 윤리적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버핏은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오는 4월 30일 버크셔의 주주 4만 명이 연차 주총에 참석하려고 오마하에 모인다. 그들은 소콜 사건이 버핏의 새로운 어떤 면, 어쩌면 낙심시키는 무엇을 드러낼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1990년대 초 버핏의 전기를 쓸 때 그의 특장점은 지나칠 정도로 강한 독립심이었다. 그는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투자를 하는 뛰어난 자본가였다. 다른 조직에 임원으로 선임되거나 발탁되기를 거부했다. 그의 초연함 때문에 동료들은 자주 그에게 실망했다. 버핏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열성적으로 지켰다. 자녀들도 그의 무덤덤함에 고통받았다. 십대 딸아이가 그의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를 낸 경위를 훌쩍이며 이야기해도 그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지 않았다. 친구들은 소액의 기부를 해달라는 요청에도 그가 퇴짜를 놓았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동료들은 그에게서 좀 더 가까운 정서적 유대를 갈망했다.
이런 버핏의 소원함이나 무심함이 그의 성공비결이었다. 1969년 헤지펀드 매니저로 크게 성공한 뒤 그는 월스트리트에 더는 기회가 없다고 판단하고 투자자들의 돈을 돌려줬다. 사심이 없을 뿐 아니라 선견지명 있는 행동이었다. 곧 시장이 폭락했다. 그 후 70년대 중반, 시장이 사실상 대불황에 휘말렸을 때 다시 투자 게임에 뛰어들었다. 이번엔 버크셔 해서웨이를 수단으로 활용했다. 미국인은 주식을 포기했다. 하지만 버핏은 대중 정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레이더들은 추세, 거래량 도표, 이동평균선을 중시하지만 버핏은 주식증서의 이면을 꿰뚫어보고 그 아래의 사업을 파악했다. 사업의 장기전망에 초점을 맞춰 월스트리트 궤변에 가려졌던 경제적 가치를 되찾았다.
그의 현명한 투자로 버크셔의 주가는 지난 46년 동안 주당 18달러에서 12만2000달러로 뛰어올랐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월스트리트의 전형적인 탐욕을 멀리했다. 버핏은 스톡옵션을 받지 않았다. 그의 연봉은 최고 액수가 10만 달러였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는 버크셔의 주식을 한 주도 팔지 않았다. 일반주주들은 보유 주식을 팔아 자녀들을 사립대학에 보냈고 주방을 화강암으로 장식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즐겼다. 버핏에게는 그 보상이 대부분 무형이었다. 버크셔는 그의 ‘캔버스’였고 그는 그 위에다 금융의 명화를 그렸다.
누구나 그런 인물을 이상형으로 높이 사고 싶을지 모른다. 사실 버핏 자신도 그런 면을 부추겼다. 때로 그는 ‘초원의 현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이미지에 광을 냈다. 아울러 위협을 느끼면 그는 약간 가식적인 면을 취하기도 한다. 물론 사소하지만 약점은 약점이다.
버핏은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자신의 목표와 습관에 엄격하다. 그는 늘 T본 스테이크와 해시 브라운 포테이토를 즐겨 먹고 같은 친구를 만난다. 어릴 적부터 부자가 되기를 몹시 갈망했고 타협을 극도로 싫어했다. 검증되지 않은 헤지펀드 매니저였을 때 그는 자신의 투자대상을 밝히지 않았다. 그런 행동으로 잠재적 투자자를 잃긴 했지만 골치 아픈 고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
지금도 버크셔는 ‘본부’ 직원이 약 20명 정도다. 컨설턴트를 고용하지 않는다. 버핏이 자신의 설계를 바꾸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변인도 없다. 버핏 자신만이 버핏을 대변한다. 동료들은 그의 고집에 혀를 내두른다. 오마하에 사는 친구 스콧 호드는 버핏에게 화장지 분배기를 만든 신생업체에 함께 투자하자고 제안했다. 호드는 그 업체의 성공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얼마나 높은데?”라고 버핏이 짧게 물었다. 호드는 “50%”라고 대답했다. “그걸 높다고 해?” 버핏이 쏘아붙였다. 그는 호드에게 비행기를 타고 50%만 제대로 작동하는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려 보라고 핀잔을 줬다. 버핏에게는 금전적 손실은 죽음처럼 생각 못할 일이었다. 자선사업도 비슷한 위험을 제기했다. 재산을 ‘낭비’할지 모르는 위험 부담이었다. 최근 그는 게이츠 재단에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기로 약속해 그 문제를 해결했다. 버핏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돈을 분산시키기보다 기부에 집중하고 자신이 잘 모르는 일은 외부에 위탁한다.
버핏은 그와 비슷하게 데이비드 소콜 같은 전문 관리자에게 신세를 졌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 즉 많은 사람을 움직이고 관리하는 일을 그들이 해주기 때문이다. 버크셔는 에너지에서 캔디까지 약 70가지 사업을 한다. 버핏은 특히 자신이 전문적 안목을 가진 보험 같은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세부 경영을 관리자들에게 맡긴다. 그는 간섭하기도 싫어하고 간섭받기도 싫어한다. 더구나 그는 감정의 대립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 때문인 듯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언쟁을 좋아하며 학대를 일삼은 어머니를 말한다.
무엇이 원인이든 버핏은 개인적 대립을 피한다. 늘 그랬다. 그처럼 극적인 사건 없이 그 정도 위치에 오른 자본가는 없다. 버핏은 갈등을 최소화하도록 삶을 꾸려가기 때문에 공개적인 의견충돌, 적대적 인수, 또는 적대적인 무슨 일도 당하지 않는다. ‘금박을 입힌 쾌적지대’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핏은 관리자들을 격찬한다. 그래야 충성심이 생긴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의 성과를 매처럼 면밀히 검토하지만 잔소리는커녕 절대 세세하게 챙기지 않는다. 이런 분권화 방식은 믿을 만한 관리자들이 잘할 때는 효과가 좋지만 버핏이 이사진 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실패할 때는 역효과가 크다.
임원이 일만 잘하면 그는 결점을 못 보거나 봤더라도 무시한다. 버핏은 코카콜라의 CEO를 지낸 고(故) 로베르토 고이주에타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가 아무리 탐욕스러웠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버핏은 기업 임원들의 월권행위와 특권을 혹독하게 비판하지만 특정인에게 개인적으로 감정을 갖지는 않는다. 지난해 연차 주총에서 버핏은 버크셔가 투자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를 옹호했다. 모기지 증권에 AAA 등급을 내준 장본인 중 하나다. 버크셔는 무디스의 수동적 투자자이기 때문에 버핏에겐 책임이 없다. 하지만 소콜의 문제는 다르다.
얼마 전까지 소콜은 버핏의 유력한 후계자로 간주됐다. 소콜은 버크셔의 가장 성공적인 회사 중 하나인 미드아메리칸 에너지의 회장이었고 계속 돈을 까먹어 버핏의 골치덩어리였던 넷제트를 회생시켰다. 지난 2월 버핏은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 편지에서 “이 회사에서 데이브 소콜이 이룬 업적의 중요성과 폭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격찬했다. 소콜은 분명히 그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 전 1월 소콜은 버핏에게 루브리졸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화학회사를 인수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직전 소콜은 그 회사의 주식 1000만 달러어치를 매입했다. 지난 3월 버크셔가 루브리졸을 인수하기로 동의했을 때 소콜의 개인 지분은 약 300만 달러의 수익이 붙었다.
여기서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소콜은 버크셔의 임원 자격으로 루브리졸의 정보를 입수했다. 소콜의 임무는 자기 가족의 투자가 아니라 버크셔의 이익을 올리는 일이었다. 둘째, 그가 인수를 제안하기로 계획했다는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다. 만약 그가 버핏에게 루브리졸을 인수하라고 촉구했다고 발표했다면 그 주식은 크게 올랐을 게 확실하다. 하지만 소콜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전에 개인적으로 주식을 매입했다.
버핏은 지난 3월 소콜의 루브리졸 주식 매입 사실을 알았다. 그 직후 소콜이 사임했다. 버핏의 공개 성명은 아주 불만족스러웠다. 소콜의 행위가 불법은 아니었다는 밋밋한 논평만 내놓았다. 특히 버핏 자신이 ‘적법성’을 초월하는 윤리적 기준의 옹호자였기에 버핏 찬양자들과 버크셔 주주들은 분노했다. 1991년 버크셔가 투자한 샐러먼 브러더스에서 스캔들이 터졌을 때 버핏은 오마하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그 회사의 경영을 맡았다. 그는 의회 청문회에서 샐러먼 직원들에게 “부도덕의 기준선에서 멀리 떨어져서 일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소콜이 그 기준선을 넘지는 않았다 해도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 게다가 버핏이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은 그의 경력에서 윤리적인 둔감함을 극명히 보여준 예다. 오마하에서 팬들은 그의 재고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이 크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는 소콜을 버핏이 공개적으로 힐책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은퇴한 헤지펀드 매니저 마이클 스타인하트 같은 논평가들은 버핏의 도덕적 발가벗기가 그의 명성이 부풀려졌다는 증거라며 고소해 한다. 실제로 버핏은 팬들이 그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인다면 더 낫다. 그의 뛰어남을 옹호한다고 해서 그가 정서적 문제, 과대한 야망, 또는 다른 인간적 약점이 없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버크셔는 이 사건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어 현재 버핏의 측근들이 지배하는 이사진을 교체해야 한다. 소콜의 사건으로 입증된 점이 있다면 80세의 버핏이 다른 CEO들이 받는 외부의 객관적인 감시에서 면제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소콜 사건으로 버핏이 한 시대의 가장 위대한 투자자라는 지위를 잃어선 안 된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월스트리트에 존중할 만한 얼굴을 만들어준 대단한 자본가였다.
[필자는 ‘버핏: 위대한 미국 자본가의 탄생(Buffett: The Making of an American Capitalist)’의 저자다.
번역 이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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