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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불륜에 관한 달콤살벌한 진실

새들의 불륜에 관한 달콤살벌한 진실



조 우 석“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매년 5월이면 들려오는 노래, 들을 때마다 우리 가슴 뭉클해지는 노래 ‘어머니 은혜’는 희생과 돌봄의 상징인 위대한 모성(母性)에 바쳐진 찬사다. 하지만 이미 ‘근사하지만 맞지 않는 말’로 드러났다. 심할 경우 거짓말이다. 생물학의 관점에서 그걸 폭로했던 유명한 책이 생물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가 펴낸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였다. 당혹스러운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지금까지 알았던 어머니는 잊어라. 세상 모든 엄마·암컷의 진짜 역사에서 자녀 사랑과 양육이란 절대로 본능이 아니다.”

엉뚱해도 유분수지, 대체 뭔 소리람? 그 책에 따르면 침대에서 섹스할 때 수동적이며, 정숙하다는 여성상 역시 가짜 신화이거나 가부장제 사회가 심어준 이데올로기 혹은 음모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려고 인간역사에서 흔했던 영아(갓난아이)살해·유기 같은 사례와 진화생물학의 각종 ‘무자비한 진실’까지 들이댄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거둬들인 금싸라기 정보들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대목이다. 이 책은 ‘진화론의 성자’인 찰스 다윈을 때리며 시작한다.

19세기 사람인 다윈 자체가 케케묵은 빅토리아 시대 낡아빠진 윤리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떨어지며 추상적 사고가 뒤진다는 엉뚱한 발언까지 했다. 이제 진화론을 새롭게 흡수한 우리시대 페미니즘 생물학은 ‘자기희생적 어머니, 수동적 여성’이라는 믿음을 통째로 뒤집는다. 오히려 여성은 맹목적인 양육자이기보다는 야망을 좇는 기업가에 가깝다. 저자가 다윈을 때린다고 했지만, 그건 그를 되살려내는 노력이다.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과 함께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다. 짝짓기의 열쇠는 암컷이 쥐었다는 얘기다.

한 번 봇물이 터지니 정신이 없다. 꼭 1년 전 등장했던 ‘어머니의 탄생’에 이어 ‘더 강력한 놈’이 등장했다. 제목부터 파격이다. ‘암컷은 언제나 옳다’(이순 펴냄), 조류행동생태학자 브리짓 스터치버리가 지은 이 책의 얄궂은 부제목부터 소개한다. ‘인간보다 복잡하고 은밀한 새들의 사생활’.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과 정절, 모성의 신화를 벗겨낸 암컷의 진화적 본성에 관한 충격적인 연구다. 실은 저자 자체가 엽기적이다. 그는 20년 이상 새들의 간통을 연구해왔다.

그에 따르면 새들은 짝짓기 전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놀랍도록 복잡한 성 전략을 진화시켜왔는데, 이를테면 새끼 중 절반에 해당하는 남의 자식을 먹여 살리는 아카디아딱새 수컷 등 바보 수컷 새가 참 많다. 그뿐인가? 배우자 암컷이 마치 옆집 수컷과 간통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듯 행동하며 남의 자식을 키우려고 1000번 이상의 먹이 조달 여행을 떠나는 두건솔새 수컷도 있다. 왜 이들은 배우자의 혼외정사에 속수무책인가? 그리고 어째서 암컷들은 옆집 수컷과 수시로 ‘불륜’을 저지르는가?

저자는 짝짓기와 번식에 관한 한 암컷이 선택권을 갖고 수컷들을 무한경쟁으로 몰고 간다는 성 선택 이론으로 조류 세계의 엽기적 진실을 설명한다. 상식이지만 암컷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컷의 외모 역시 암컷에게 잘 보이려는 생존 경쟁이다. 이것은 야생동물이 자연에서 살아가고 후손을 이어가기 위하여 선택하는 다양한 생존 전략 중 하나로, 이 책에는 이러한 번식 행동 외에도 둥지 찾기, 동기간의 경쟁, 공동양육, 군집 생활의 전모, 생사를 건 철새의 이동 등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새들의 이혼 중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작은 유럽산 명금류인 유럽오목눈이에게서 나타난다. 이 새들의 경우 이혼이 워낙 쉽게 일어나서 파트너들 간의 결합을 부부의 결합으로 보기 힘들 정도다. 유럽오목눈이 수컷은 노래를 통해 짝을 유인하여 정교한 둥지를 짓기 시작한다. 암컷은 수컷이 둥지를 짓는 것을 돕는다(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암컷이 알을 낳기 시작하자마자, 둘 중 하나가 관계를 청산한다. 이혼율은 100퍼센트이며….”(127쪽)

다른 새들의 경우 수컷들이 양육의무를 다하는데, 혹시 제 짝의 부정을 의심할지라도, 의무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저자가 관찰해보니 외도로 출산한 새끼가 포함된 둥지에는 다른 혈통이 섞여 있었다. 최소한 한 마리는 실제 자식이다. 수컷은 어떤 새끼가 자기 자식인지 구분할 수 없다. 수컷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간단하게 정리된다. 마치 간통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듯 행동하는 전략을 발전시킨다. 심증도 있고 물증도 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명금류(참새목의 노래하는 새)에 속하는 아카디아딱새 수컷이 그렇다.

20년 이상 남·북 아메리카의 새들을 연구해온 브리짓 스터치버리는 새들의 간통 연구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가 밝히는 학문적 진실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물론 과학적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인데, DNA 감식으로 친자 확인 검사가 가능해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새들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으로 인식되어왔다. 실제로는 많은 새가 상당히 높은 비율로 불륜을 저지른다.

그렇다면 암컷은 어떤 스타일의 수컷을 좋아할까? 보라큰털발제비 암컷은 나이가 많은 수컷을 선호하고, 유럽 푸른박새 암컷은 다양한 노랫소리를 가진 수컷을 선호하고, 멕시코양진이 암컷은 선명한 빨간색 깃털을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 암컷은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 수컷의 가치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명금류 철새들에게 생존은 쉬운 게 아니다. 따라서 에너지가 많이 드는 노래를 잘 부르는 수컷은 스태미너와 건강이 좋다는 나름의 검증(푸른박새의 경우)을 거치는 것이다.

다시 ‘어머니의 탄생’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머니의 탄생’과 ‘암컷은 언제나 옳다’는 완벽하게 서로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인데, 두 책에 따르면 성 선택 이론은 19세기의 ‘불편한 진실’이라서 쉬쉬해오다가 20세기 후반에야 페미니즘과 만나면서 꽃을 피운다. 그 하나인 다윈주의 페미니즘 신간 ‘어머니의 탄생’과, 새들의 불륜을 다룬 ‘암컷은 언제나 옳다’는 잘못 꿴 첫 단추 때문에 으르렁거렸던 진화생물학과 페미니즘의 화해 무드를 보여준다.

‘어머니의 탄생’이 보여주듯 동화 ‘샬럿의 거미줄’에 등장하는 어미 거미처럼 새끼가 자기 몸을 파먹게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현실의 어머니·여성은 기회주의자라서 바로 번식할까, 나중에 천천히 할까를 저울질한다. 한정된 먹이를 자식에게 동등 분배할지를 매번 선택해야 한다. ‘암컷은 언제나 옳다’에도 ‘불편한 진실’이 나온다. 그대로 옮긴다. “내가 목격한 것은 한 자식이 다른 자식을 죽이는 형제살해의 장면이었다. 왜가리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부모 새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새는 혹시나 알이 수정에 실패하거나 사고로 알을 잃을 것에 대비하여 첫 번째 알을 낳은 지 며칠 뒤에 나은 ‘보험용’ 알이기 때문이다.”(144쪽)

[필자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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