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erenade] 서울의 대중교통이 부럽다
[Seoul Serenade] 서울의 대중교통이 부럽다
2004년 겨울의 끝자락에 서울에 첫발을 내디뎠다. 무엇보다도 서울의 잘 갖춰진 대중교통 시스템에 놀랐다. 나는 인구 30만 명의 미국 소도시 출신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인 서울의 인구는 1000만 명이 넘었다. 수도권 지역에도 수백만 명이 거주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 사는데도 황학동의 내 오피스텔에서 봉천동에 있는 친구 빌라까지 4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사당역에서 갈아타야 했지만 너무 쉽고 편리했다. 게다가 교통비는 1달러(1000원가량)도 안 된다.
쉽게 지하철 예찬론자가 됐다. 가장 빨리 환승하거나 밖으로 나가려면 어느 칸에 타야 하는지,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앉아 가려면 언제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하는지 금세 알게 됐다. 편안한 가장자리 좌석에 앉아 졸다가 내릴 곳을 놓친 적이 몇 번이던가?(많지는 않았다. 졸다가도 도착 역을 알려주는 방송이 들리면 거의 항상 잠에서 깨어나 제때 뛰쳐나간다.)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한국어도 배우게 됐다. 처음 읽을 줄 알게 된 단어가 내가 살던 신당, 직장이 있던 왕십리, 친구들과 만났던 강남, 신림, 혜화였다. ‘Wang-shim-ni’가 어떻게 ‘왕십리’로 표기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한국인 동료들은 아주 재미있어 했다. “하지만 한글은 wang-SIP-REE로 발음되잖아!”
서울에 사는 많은 외국인과 마찬가지로 마음 편히 버스를 이용하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름 제법 돌아다녀본 내 의견으로는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싸고 이용하기 편리한 편이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조차 몰라도 문제없다. 하지만 버스의 경우는 다르다. 분명 아주 편하고 싸고 안락하다. 하지만 한국말을 거의 또는 전혀 못하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겁날지도 모른다. 처음 몇 달간은 지하철을 타거나 직장까지 걸어 다니는 쪽을 택했다.
장마철이 찾아왔다. 어느 날 걸어서 출근길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였다. 우산 밑으로 빗발이 들이쳤다. 지하철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속으로 애꿎은 날씨를 욕하며 내 한국어 독해 실력을 발휘해 노선도에서 왕십리를 찾았다. 버스를 기다려 올라탔다. 여러 명이 내 곁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설프게 우산을 접어들고 요금함에 동전을 넣었다. 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치는 순간 버스가 급출발했다. 중심을 잃고 약간 비틀거리면서 완전히 접히지 않은 우산을 놓치고 말았다. 우산이 활짝 펼쳐지면서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물벼락을 맞았다. “미안해요”라고 중얼거리는 순간 버스가 급정거하면서 물기 흥건한 버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주섬주섬 일어나는 동안 한 친절한 중년 여성이 내 우산을 접어줬다. 그리고 마침내 겨우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버스가 목적지에 이르렀다. 도보로 20분, 지하철로 15분가량 걸리던 출근길이 버스로는 5분 만에 도착했다.
내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시는 대대적인 대중교통 시스템 개편을 실시했다. 색깔과 숫자를 이용한 혁신적인 버스 분류체계, 버스 전용차로, 번거롭지 않은 지하철과 버스 환승, 그밖의 많은 개혁을 단행하면서 요금은 상당히 낮은 수준에 묶어놓았다. 최근에는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 스마트폰 응용 프로그램, 버스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디지털 신호 같은 새로운 편의 기능을 추가해 대중교통이 훨씬 더 편리해졌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일부 지하철 운영사업체의 막대한 부채, 노후 노선의 석면 제거, 현재의 낮은 요금체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 등이다. 그럼에도 서울의 대중교통망은 전 세계의 대도시 지역을 인도하는 횃불이 될 것이며 충분히 그만한 자격이 있다.
그럼, 이만 버스를 타러 가야겠다.
[필자는 숭실대 교수이며 근저 ‘신입생 글쓰기의 기초(Foundations of Freshman Writing)’를 포함해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영어 소설가와 시인들의 공동체인 서울 라이터스 워크숍의 공동설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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