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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이태원에 기업이 몰린다

[Business] 이태원에 기업이 몰린다

기업이 이태원에 몰려들고 있다. 기업은 번화한 이태원역 인근이 아니라 한강진역 근처를 주목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8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방가르드 패션 브랜드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한남동에 열었다. 단순한 패션 브랜드 상점이 아니다. 5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갤러리와 카페, 레스토랑 등 시설이 입주해 있다.

꼼데가르송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가 건물 설계에 참여해 상업과 문화적 코드가 결합된 기발하고 화려한 공간으로 완성했다. 리움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건물은 오래된 상점과 건물이 많던 이곳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이 거리는 ‘꼼데가르송 거리’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꼼데가르송을 뒤로하고 제일기획 건물이 위치한 쪽을 향하다 보면 길 왼편에 공사를 준비하고 있는 공간이 눈에 띈다. 이곳에는 현대카드가 만드는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1만826㎡ 규모로 올해 착공해 완공까지는 2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건축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세지마 가즈요, 니시자와 류에가 건축을 맡았다.

또 인터파크 자회사인 쇼파크가 서울시와 함께 투자해 만든 뮤지컬·콘서트 전용관 ‘블루스퀘어가 11월 문을 연다. 총사업비 600억원이 들어갔고 1600석 규모의 공연장 2개로 구성돼 있다. 갤러리와 각종 레스토랑이 많았던 이곳에 기업 주도로 문화공연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다.



개성 있는 분위기가 매력적이 거리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거론하는 일은 사실 새삼스럽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이곳에 터를 잡고 문을 연 것은 2004년. 이후 표화랑, 비컨갤러리, 류화랑 등 갤러리들이 리움 근처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삼성그룹은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부지, 제일기획, 청사초롱 음식점 등 이 일대 부동산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는 SPC가 원래 이곳에 위치해 있던 본사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이탈리아 건축가 마르코 루키의 설계로 지어진 SPC 본사 건물은 1층에 디저트 갤러리를 표방한 ‘패션5’라는 100평 규모 베이커리를 열었다. 일반 베이커리에서 볼 수 없는 갖가지 종류의 빵과 케이크를 파는 데다 내부 인테리어와 시설을 최고급으로 꾸며 오픈 이후 대표적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은 SPC는 ‘빠리바게뜨’ 한남점을 내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후 황량하던 한강진역 일대에 본격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2007년 폭스바겐코리아의 공식 딜러인 마이스터모터스가 전시장을 열었고, 이를 뒤따르듯 아우디가 강북에서 가장 큰 전시장을 지상 5층 규모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수입차 매장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거리 분위기가 바뀌고 유동인구가 늘자 외식업체가 뒤를 이었다. 한국야쿠르트 외식사업부문에서 만든 디저트카페 ‘코코브루니’가 지난해 10월 이곳에 들어섰다. 올 초에는 삼원가든이 운영하는 외식업체 ‘SG다인힐’에서 ‘붓처스컷’이라는 스테이크 전문점을 아우디 전시장 옆에 냈다. 기존 이태원 상권 고객들의 발길이 제일기획 너머 한강진역까지 이동하는 데다 이 거리의 자생력도 강해진 점에 주목한 것이다.

기업은 왜 한강진역 일대를 선호하는 것일까?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강남의 주요 번화가는 너무 상업적으로 변모했고 강북은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한남동은 그 중간 지점에서 개성 있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이 지역에 공연장을 건립하게 된 이유에 대해 “복잡한 도심보다 문화공연을 관람하기 좋은 한적한 분위기인 데다 디자인과 유행의 메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일모직 양희준 과장은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한때 침체되며 부침을 겪었지만 장기적으로 큰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 과장은 “꼼데가르송 건물을 짓기 전에는 왜 여기인지 의아한 반응도 있었지만, 한강진역 인근 거리는 비교적 조용하고, 어린 연령대보다 어느 정도 연륜 있고 안목이 높은 고객층이 주를 이룬다는 장점이 작용했다”고 말했다.

토지 가격도 무시하지 못하는 요인이다. 김일수 씨티프라이빗뱅크 팀장은 “최근 많이 오르긴 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한남동은 서울 한가운데 중심에 위치한 것에 비해 토지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었다”고 설명했다. 상업시설에 투자 가치를 노리고 접근해도 매력적이라는 분석이다. 한남동 우리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용산 미군기지 터가 공원으로 조성되면 주변 지역이 더 쾌적해져 이 지역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땅값 1년 새 2배…자영업자는 울상그러나 기업이 한강진역 인근에 속속 진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도 많다. 지역의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근처 가게 임대료가 두세 배씩 뛰는 것을 보니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꼼데가르송이 들어서고 현대카드가 공연장을 세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년 새 이 지역 3.3㎡당 매매 가격이 3000만원 정도에서 70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폐업을 준비하는 한 세입자는 “1억2000만원 권리금으로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와 계약했는데 2000만~3000만원 웃돈을 얹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는 지경”이라고 과열된 분위기를 전했다. 한강진역 인근 글로벌공인중개사 대표는 “대기업은 이미 가격이 오르기 전에 들어온 데다 자본력이 있어 버틸 수 있지만 자영업자에게 가격 거품은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들이 들어오며 지역 상권에 대한 기대심리는 높은데 아직까지 유동인구가 이태원역 인근처럼 많지는 않다. 갑자기 집중된 투자 바람에 편승하기 전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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