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2·3세 여성 경영자의 약진
[아버지와 딸] 2·3세 여성 경영자의 약진
4월 27일 오전 인천 하얏트리젠시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한항공 기자간담회. 이날 대한항공은 6월부터 장거리 노선 일등석과 프레스티지석 탑승객에게 미국 고급 화장품 다비(DAVI)의 휴대용 세트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다비는 ‘미국 와인의 전설’로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의 손자 카를로 몬다비가 내놓은 코스메틱 브랜드다. 나파밸리 포도와 와인 추출물을 주원료로 녹차와 라즈베리 등 자연 성분을 더해 미국 현지에서도 웰빙 화장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간담회에서 다비를 직접 소개한 인물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장 겸 기내식사업본부장인 그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3남매 중 장녀다. 조 전무는 이날 신규 서비스 내용을 직접 발표하고 시연 행사까지 주도했다. 조 전무는 “다비는 명품 항공사로 거듭나고 있는 대한항공에 어울리는 화장품”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기내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 전무는 이날 연어 샐러드와 국수로 구성된 ‘저칼로리 웰빙 기내식’을 함께 선보였다. 이 메뉴는 비프나 치킨, 비빔밥 등과 함께 주요리 중 하나로 한 끼 열량이 380㎉에 불과하다. 조 전무는 “향후 낙지덮밥 등 다양한 한식도 기내식으로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2009년 3월 창사 40주년을 맞아 2019년까지 초일류 항공사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대한항공은 이를 위해 ‘하늘의 특급호텔’로 불리는 A380 등 차세대 항공기를 도입했다. 기내 좌석도 더욱 쾌적하고 안락한 명품으로 교체해 왔다.
대한항공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조 전무가 주도하고 있다. 2009년 4월부터 일등석에 제주도 청정지역에서 생산한 토종닭과 한우로 만든 기내식을 선보인 것이 대표적 예다.
차세대 항공기 A380에도 조 전무의 작품이 있다. A380 안에 기내 면세품 진열장을 설치한 것. 이 덕에 설명서에만 의존해 왔던 탑승객은 실제 제품을 보고 기내 면세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조 전무는 “좌석 몇 개를 줄여 전시공간을 만드는 건 명품 서비스를 위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조 전무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해 기내판매팀장을 거쳤다. 과거 대한항공이 선보인 기내 비빔국수,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비욘드 등이 조 전무의 아이디어였다. 특히 대한항공 비빔국수는 2006년 기내식 부문의 ‘오스카상’이라는 ‘머큐리상’을 받았다.
실제 대한항공 기내식은 전 세계 항공사 중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국내에 취항하는 항공사 중 캐세이패시픽, 델타항공 등 65%가 대한항공 기내식 서비스를 아웃소싱할 정도. 대한항공 측은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국적항공사”라며 “대한항공을 이용한 외국인 중 기내식을 맛보고 한국의 이미지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자랑했다.
조 전무는 해외 현지 와이너리를 직접 다니는 등 와인에 대한 조예도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엔 보르도와인협회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수여 받았다. 지난해 프랑스 샴페인인 로랑 페리에를 국제선 중·장거리 전 노선 일등석과 프레스티지석에 제공한 것도 조 전무의 안목이다. 로랑 페리에는 한 병에 40만원 하는 최고급 샴페인으로 꼽힌다.
최근엔 조 전무의 동생 조현민 상무보의 활약도 눈에 띈다. 조양호 회장의 막내인 그는 미국 남가주대를 졸업하고 2005년 LG애드에서 일했다. 2007년 3월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과장으로 입사해 현재 팀장을 맡고 있다. 대한항공 광고와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올해 진에어와 정석기업의 등기이사도 맡았다.
조 팀장은 최근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대한항공의 광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 광고를 공부했다”며 “목적지 광고가 신선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현아 전무, 조현민 상무보 등이 만든 광고와 서비스 덕에 대한항공의 보수적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영 참여는 삼성이 원조대한항공 두 자매처럼 최근 재벌가에선 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묵묵히 내조에만 전념하던 과거 재벌가 안방마님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삼성가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과거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다섯째 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게 각각 한솔그룹과 신세계그룹을 떼어줬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CEO에 오른 재벌 딸 중엔 삼성가가 유난히 많다. 이부진 호텔신라·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제일기획·제일모직 전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그룹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사장은 세계 최초로 루이뷔통을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시켜 주목 받았다. 호텔 경영에서 올린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삼성에버랜드 경영까지 겸하고 있다. 삼성의 유통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이서현 부사장도 2008년 이탈리아 복합편집매장 10꼬르소꼬모를 비롯해 릭 오웬스, 토리 버치, 꼼데가르송, 산타마리아 노벨라 등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잇따라 개점하며 패션업계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CJ그룹의 이미경 CJ E&M 총괄부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 행보가 돋보인다. 이 부회장은 식품그룹 CJ의 사업 영역을 영화, 방송, 음반, 공연 등 다양한 콘텐트 사업으로 확장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현대가에선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세 딸이 주목 받고 있다. 삼성가와 달리 자신들의 존재를 외부에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정 회장의 맏딸인 정성이 고문은 광고회사 이노션을 이끌며 광고업계 부동의 1위인 제일기획의 아성을 넘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차녀이자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아내인 정명이씨도 현대커머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딸 정윤이씨는 현재 현대해비치호텔&리조트 전무로 재직 중이다.
현대그룹에선 현정은 회장의 딸 정지이 현대U&I 전무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정지이 전무는 28세에 현대상선에 입사해 현 회장을 따라다니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재벌가 남자는 권력 관계에 예민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아버지 오너십에 가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며 “반면 딸들은 이런 제약에서 자유로워 최근 더 각광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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