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하유미팩` 으로 홈쇼핑 매출 `1등`

어깨는 뻐근하고 다리는 저렸다. 남색 봉고차에 온몸을 구겨 넣고 잠을 자기 시작한 지 닷새째. 8명이 탈 수 있는 봉고차라지만 성인 남성이 화장품, 전단지, 옷가지 등 온갖 짐과 뒤섞여 자기엔 비좁은 공간. 꽈배기처럼 온몸을 비틀어보고, 새우처럼 구부려보다 잠들었다. 2003년 유현오(41) 대표는 ‘미국 투어’ 중이었다. 그는 마스크팩을 차에 싣고 필라델피아, 뉴욕 등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하루에 20억원어치 마스크팩 팔아유 대표는 2003년 미국법인인 유제닉(uGenic)을 설립하고 납품처를 뚫기 위해 각종 전시회에 참석했다. 불러주는 곳은 딱히 없었지만 잡지에서 전시회 일정을 보고 가서 무작정 판을 벌였다. 판을 벌일 공간이 마땅치 않으면 전시부스의 사람들에게 다가가 보디랭귀지로 제품을 설명했다. 몸은 고됐지만 성과는 좋았다. 생활용품을 파는 미국 유통업체 타깃 관련자를 만나 마스크팩을 납품하게 됐다. 타깃에서 반응이 좋으니 월그린, CVS에서도 제품을 넣어달라고 했다. 유 대표는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그 정도면 일석이조 아니냐”며 “인생에서 소중하고 재미있는 추억”이라고 말했다.
8년 전 하룻밤 40달러 하는 모텔비를 아끼기 위해 차에서 먹고 자던 그는 어느새 연매출 800억원대를 올리는 기업의 CEO가 됐다. 제닉은 지난해 매출 819억원, 영업이익 98억원을 올렸다. 5월 27일엔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제닉의 대표 제품은 홈쇼핑에서 일명 ‘하유미팩’으로 불리는 마스크팩이다. 천으로 만들어진 기존 ‘시트 마스크’와 달리 고체와 액체의 중간 형태인 겔로 만들어져 얼굴에 붙이면 말랑말랑한 젤리를 바른 느낌이 든다. 이 마스크팩은 기존 시트형 마스크보다 피부 수분 공급량이 20% 높아 수분과 각종 화장품 성분이 흘러내리거나 증발하지 않고 피부에 그대로 스며드는 효과가 있다.
현재까지 홈쇼핑을 통해 180만 명이 제닉의 마스크팩을 구입했다. 하루 세 번 방송에서 20억원어치가 팔린 적도 있다.
올해 상반기 현대홈쇼핑 히트 상품 1위, CJ오쇼핑 2위를 차지했다. 5개월 동안 두 홈쇼핑 채널을 통해 팔린 양만 해도 45만 개에 이른다. 현대홈쇼핑 서우철 책임은 “하유미팩은 꾸준히 잘 팔리는 제품으로 홈쇼핑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스크팩은 유현오 대표가 직접 개발했다. 대학시절 유 대표는 호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 경비가 떨어진 그는 세계 최대
의 바위이자 세계의 배꼽으로 불리는 울룰루의 도로 공사현장에서 잠시 일용직으로 일했다. 그는 “섭씨 40도가 넘는 뙤약볕에서 일을 하니 밤이 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잠도 잘 수 없었다”며 “냉장고에 넣어둔 물수건을 얼굴에 덮었는데 피부를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피부에 수분이 잘 흡수되는 마스크팩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2년간의 개발기간을 거쳐 2003년 제품을 만들어 특허등록도 마쳤다. 기대와 달리 제품은 잘 팔리지 않았다. 중소기업 2년 동안 보따리를 메고 마사지숍, 피부과 등을 돌아다녔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피부에 직접 닿는 마스크팩의 특성 때문에 이름도 낯선 중소기업 제품을 선뜻 써보려는 곳이 드물었다. 잡상인 생활에도 곧잘 적응했다는 유 대표는 “지인에게 효능을 설명하고 제품을 줘도 고맙다고 해놓고 방에 처박아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Made in Korea’가 경쟁력입소문이 중요한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인지도가 낮은 제닉이 시장을 뚫기는 어려웠다. 2003년 미국으로 떠난 것도 이 때문이다. 제품력만큼은 자신이 있으니 오히려 큰 시장을 공략하면 제품의 효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에 걸쳐 미국 대형할인점에 수출해 40여억원을 벌어들였다. “(할머니 모델이) 내가 이 마스크팩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이라는 카피 문구를 내세운 광고는 미국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미국 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은 그는 다시 한국 시장에 도전했다. 2005년 국내에 재진출한 그는 제품의 효능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화장품 대리점에서 제품을 팔아봤지만 제닉의 마스크팩이 기존 마스크팩과 다른 점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점원은 거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장품 브랜드숍이 활성화되면서 대리점을 찾는 소비자들이 줄어들어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
제닉은 2008년 홈쇼핑 방송에 눈을 돌렸다. 유 대표는 “소비자와 유통업체 관계자를 상대로 일일이 제품을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특허 등록을 보여줘도 안 믿는다”고 말했다. 그를 대신해 탤런트 하유미와 쇼호스트가 제닉의 마스크팩이 기존 ‘시트팩’과 다른 이유, 얼마나 많은 양의 수분이 흡수되는지 등을 시청자에게 꼼꼼하게 설명한다. 홈쇼핑에서 반응이 좋자 제닉에 제품을 문의하는 국내 화장품 기업들도 늘어났다. 제닉은 아모레퍼시픽, 미샤 등 국내 업체 20여 곳에 마스크팩을 납품한다. 또한 홈쇼핑은 늦어도 15일 만에 돈을 줘 중소기업으로선 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 데 도움이 됐다. 반품이 바로 되니 재고도 쌓이지 않았다.
현재 제닉은 해외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Made in Korea’라는 사실이 커다란 경쟁력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동남아에선 한국 화장품은 ‘고급 화장품’이라는 인식이 확대됐다. 한국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라고 설명하면 효능과 브랜드가 인정받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이 기업은 지난해 일본 최대 홈쇼핑 채널인 QVC에 진출했으며 준비가 끝나는 대로 인도, 중국 홈쇼핑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현지화 전략을 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해당 국가 소비자가 선호하는 기능과 성분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에 맞는 제품을 홈쇼핑에서 소개하겠다는 계획이다.
필리핀, 태국 소비자는 미백 기능을 선호하는 반면 일본 시청자는 주름 개선 효과를 좋아한다. 말레이시아 소비자는 콜라겐을, 일본 소비자는 코엔자임 성분을 좋아한다. 이처럼 현지 소비자들의 니즈를 철저히 파악하고 진출하면 아시아 홈쇼핑 시장에서의 성공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유 대표의 생각이다. 제닉 제품을 사용하고 피부가 좋아졌다는 고객의 전화를 받을 때 가장 기쁘다는 그는 “앞으론 세계 각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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