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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물 괜찮나?] 기슭서 시작한 취수 산 중턱으로 올라가

[제주도 물 괜찮나?] 기슭서 시작한 취수 산 중턱으로 올라가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에서 생산하는 제주 삼다수.

# 한진그룹 계열사 한국항공은 지난 3월 먹는샘물용 지하수 취수량을 월 3000t에서 9000t으로 늘려줄 것을 제주도에 요청했다. 한국항공이 생산하는 한진 제주퓨어워터의 판매량이 늘어나서다. 제주퓨어워터를 기내에서만 팔던 한국항공은 최근 인터넷 주문판매까지 하고 있다. 스타벅스 매장 300여 곳과 글로벌 리조트 체인업체 반얀트리호텔에도 공급한다.

제주도의 먹는샘물용 지하수 취수량은 생산자 마음대로 늘리거나 줄일 수 없다.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과 조례에 따라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항공의 지하수 취수량 증산 요청이 수용될지는 불투명하다. 제주도의회는 ‘의견수렴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안건을 보류하고 있다. 제주도 지하수 취수량 증산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 제주 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도 최근 지하수 취수한도를 일일 2100t에서 3500t으로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제주경실련·제주환경운동연합·탐라자치연대를 비롯한 제주 시민단체는 “지하수 취수량을 늘렸다간 제주도 물이 마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주경실련 한영조 사무처장은 “제주도의 지하수 취수한도 문제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왔다”고 지적했다.



제주도 물은 뜨는데 취수 한도 제한제주도 물의 인기가 상한가다. 제주 삼다수의 판매량은 2008년 39만9588t에서 지난해 49만7330t으로 25% 늘었다. 판매량 증가는 올 들어 더 뚜렷해지고 있다. 구제역으로 죽어 매몰된 가축에서 나오는 침출수, 일본의 방사능 유출 우려 때문에 제주 삼다수가 특수를 누린다. 제주 삼다수의 대일 수출량은 올해 6월 현재 1만308t에 이른다. 전년 동기 대비 12.7배로 늘었다.

‘제주도 지하수 취수한도를 이제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언뜻 보면 설득력이 있다. 제주 삼다수의 취수량은 2006년 이후 일일 2100t에 묶여 있다. 그리 많은 양이 아니다. 제주도 지하수 하루 적정 개발량(176만t)의 0.12%에 불과하다. 제주개발공사 관계자는 “올해 경영계획을 세울 때 삼다수의 수요 증가율을 최대 12%로 잡았지만 구제역과 일본 방사능 유출로 30~40% 늘었다”며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주문량을 맞추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생수 판매량이 크게 늘어나는 7~8월이 되면 삼다수 품귀현상은 더 심해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제주도 지하수의 취수량을 맘 놓고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주도의 1년 강우량은 34억2000만t이다. 국내 최대 다우지(多雨地)다. 하지만 제주도는 구멍이 많은 화산암류로 이뤄져 물 빠짐이 빠르고 많다. 1년 강우량 34억2000만t 가운데 11억t은 자연 증발하고, 7억t은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강우량의 54%가 자연 소실된다는 얘기다. 15억8000만t이 지하수로 유입되지만 쓰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양은 아니다. 제주도는 경사가 심해 육지처럼 연중 흐르는 하천도, 큰 호수도 없다. 먹는샘물을 비롯한 생활용수와 농업·공업용수는 모두 지하수를 활용한다. 지하수를 맘대로 취수할 수도, 개발할 수도 없는 까닭이다.



제주도 지하수 관련 통계 부족국내외 물 전문가들은 제주도 지하수의 적정 개발량을 연 6억4500만t이라고 말한다. 일일 176만t 규모다. 특별법의 규제는 더 세다. 특별법에 따르면 지하수 일일 최대 이용량은 120만t이다.

그러나 안심할 처지는 못 된다. 제주도 기상은 해마다 변한다. 2005년 제주시는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이해 내린 비는 865㎜에 불과했다. 제주도 연평균 강수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이다. 2007년에는 제11호 태풍 나리가 12시간 동안 410㎜의 폭우를 쏟아붓기도 했다.

제주도는 사상 초유의 홍수 피해를 봤다. 기상청이 1961년부터 2010년까지 50년의 강수량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연강수량은 1961년에 비해 약 200㎜ 증가했다. 연평균 기온도 같은 기간 제주시는 0.9도, 서귀포시는 1.3도 올랐다.

이런 이상기후는 지하수에 의존하는 제주도로선 중요한 문제다. 강수량과 기온이 일정해야 지하수가 잘 유지된다. 하지만 강수량과 기온이 들쭉날쭉하면 지하수 적정개발 안정성에 경고등이 켜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하수 취수지역이 제주도 윗단으로 점차 올라간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주도 아랫부분에서는 예년만큼 지하수를 취수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제주경실련 한영조 처장은 “제주도의 대수층(지하수 보관층)을 일일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하수 취수지역이 중(中)산간지대까지 올라갔다”며 “주로 해발 200~500m 사이에서 대규모 지하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환경운동가는 “제주도의 중산간지역에서 개발이 대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지하수의 감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주도는 지하수를 제외하면 마땅한 대체수원이 없다”며 “지하수 증산을 위한 개발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주도 지하수 관련 통계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있다고 해도 예전 자료다. 한국수자원공사는 1993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도 지하수자원 종합조사를 실시했다. 이게 마지막 조사다.

앞서 언급한 제주도 지하수 적정 개발량도 이때 조사된 것이다. 그러니 제주도의회와 제주시민단체의 의견이 “지하수 취수량을 30~40% 늘려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제주도의회 김태석 환경도시위원장)” “제주도에 물이 마르고 있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필요하다(제주경실련)” 등으로 엇갈릴 수밖에 없다.

제주도 수자원본부 박용현 본부장은 “지하수·빗물·해수담수화 등 수자원의 체계적 개발·이용과 효율적 보전·관리를 위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2013년 1월 말까지 수자원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한다”고 밝혔다.

제주도청 고기원 수자원본부장은 “제주도 지하수는 생명수이자 도의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다. 지하수로 도민이 목을 축이고, 농경을 하고, 공장이 돌아간다는 얘기다. 더구나 제주 삼다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생수이자 특산품이다. 제주 물을 보존하거나 잘 개발하기 위해선 정확한 통계가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물 전문가들은 “지금은 제주도 지하수 관련 통계자료를 업데이트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그래야 제주 물이 진짜 마르는지 알 수 있다. 그래야 제주 삼다수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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