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하이트 vs 오비 7월 맥주전쟁
[Company] 하이트 vs 오비 7월 맥주전쟁
2010년 1월 11일. 장인수(56) 전 하이트주조 대표가 오비맥주에 처음 출근했다. 직책은 영업총괄본부장, 직급은 부사장이었다. 그는 진로를 대표하는 영업통이었다. 30년 넘게 영업분야에서 일했다. 오비맥주로 자리를 옮긴 장인수 부사장은 출근 후 20일 동안 말을 아꼈다. 가끔 이호림(51)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의 머리는 복잡했다. “오비맥주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라는 고민이었다.
장 부사장은 오비맥주의 대표 브랜드 ‘카스’에서 활로를 찾고자 했다. 카스를 성장시켜 오비맥주를 우뚝 세우겠다는 계산이었다. 비책은 있었다. 카스의 신선한 이미지를 살리는 것이었다. 비열(非熱)처리 맥주인 카스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라는 평이 많다.
“오비는 때밀이가 아니다”장 부사장은 1월 31일 계획을 밝혔다.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재고를 줄이겠다.” 이호림 사장과 오비맥주의 대주주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맥주전쟁의 시작과 끝은 MS(시장점유율)다. MS를 늘리기 위해 주류업체들은 ‘밀어내기’를 한다. 재고가 충분해도 물량을 풀어 MS를 끌어올린다. 소비자가 아니라 경쟁사를 의식한 전략이다.
장 부사장은 이 사장과 KKR을 설득했다. 논리는 이랬다. “맥주는 고도주인 소주와 달리 오래 보관하면 맛이 나빠집니다.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재고를 없애 회전기일을 줄이면 오비맥주는 날개를 달 겁니다.” 이 사장과 KKR로부터 OK 사인이 떨어졌다. 장 부사장은 영업조직에 곧장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당신들은 때밀이가 아니다. 밀려고 하지 마라. 오비맥주에 밀어내기는 없다. 재고부터 줄일 것이다.”
승부수였다. 밀어내기를 금지하면 출고량이 줄고 MS가 떨어진다. 오비맥주 내부에는 당연히 반대기류가 형성됐다.
장 부사장은 “실패를 감수하겠다”고 했다. “계획대로 6개월 안에 재고 200만 상자(1상자=500mL×20병)를 100만 상자가량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예상대로 위기가 찾아왔다. 오비맥주의 2010년 2~4월 출고량은 1550만 상자에 그쳤다. 전년 동기보다 150만 상자가 줄었다. 명색
이 영업통으로 오비맥주에 영입됐는데 장 부사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는 “6개월이 지나서도 출고량이 회복되지 않으면 그만둘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부담은 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위기가 빨리 찾아온 만큼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밀어내기를 금지한 지 3개월 만에 오비맥주의 재고량은 110만 상자로 떨어졌다. 덩달아 회전기일이 빨라졌다. 오비맥주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기간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기존엔 6개월은 기본이었다. 그러자 현장에서 ‘오비맥주의 맛이 달라졌다’는 말이 돌았다. 레시피 또는 원재료를 바꾼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다.
소비자의 호평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2010년 6월 오비맥주는 전년비 17% 늘어난 821만 상자를 출고했다. 때마침 열린 남아공월드컵의 효과도 있었지만 7월과 8월에도 상승세가 이어졌다.
오비맥주는 2010년 7~8월 전년 동기보다 121만 상자가 많은 1611만 상자를 출고했다. 장 부사장은 “적어도 6개월이 지나야 밀어내기 금지 효과가 있을 줄 알았는데 3~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오비맥주의 저력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558만 상자(카스) 대 541만 상자(하이트).’ 올 1월 맥주업계가 술렁였다. 카스의 1월 출고량이 하이트를 제쳤기 때문이다. 오비맥주의 브랜드가 하이트를 꺾은 건 1994년 이후 17년 만이다. 맥주업계에서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김인규(49) 하이트맥주 사장은 “올 1월 우리가 오비맥주에 밀렸다”고 시인했다.
카스의 역전극은 ‘한 달 천하’에 그쳤다. 하이트는 다음달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장인수 부사장은 “오비맥주가 상승세를 탔다”고 했다. 김인규 사장은 “하이트맥주의 점유율이 수도권에서 하락한 것은 고민해야 한다”며 “영업 측면에서 충실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의 부활을 이끈 건 장 부사장의 ‘밀어내기 금지’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혼자 공을 올린 건 아니다. CEO 이호림 사장과 대주주 KKR의 힘도 컸다.
오비맥주 부활 원동력은 유통혁신무엇보다 이호림 사장이 2007년 취임 이후 꾸준히 밀어붙인 ‘카스 메가브랜드 전략’이 열매를 맺고 있다. 이 사장은 2009년 4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카스를 애니콜·나이키·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카스라는 우산 아래 카스 레몬(2008)·카스2X(2009)·카스 라이트(2010)를 배치한 건 이 사장의 전략이었다.
알게 모르게 카스의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졌다. 영국의 시장조사전문업체 ‘시노베이트’의 맥주 브랜드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카스가 2009년부터 1위를 달렸다. 2008년 1위는 하이트였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2009년을 기점으로 카스로 승부를 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내에 감돌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의 OB 브랜드 출시전략도 성공했다. (※이 사장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스에 집중했지만 걱정이 많았다. 카스는 오비맥주가 만든 게 아니다. 1999년 오비맥주의 전 주인 벨기에 맥주업체 인터브루가 진로에서 사들였다. 오비맥주에 OB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OB 브랜드 부활 프로젝트를 4년 동안 계속했다. 비밀 작업이었다. 11명의 베테랑 브루마스터가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국내 최초로 타워몰팅공법(보리를 한꺼번에 볶는 것)도 사용했다.
올 3월 출시된 OB골든라거는 이런 노력의 결정체다. 사실 이 사장은 지난해 OB골든라거를 출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메가브랜드 카스에 올인하기 위해 출시일을 1년 늦췄다. OB골든라거의 돌풍은 거세다. 1000만 병을 돌파하는 데 37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비맥주의 종전기록은 카스 라이트의 45일이었다. OB골든라거는 출시 두 달 만에 2000만 병을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다. 장 부사장은 “카스가 이끌고 OB골든라거가 뒤를 받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대주주 KKR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2위 사모펀드인 KKR은 2009년 5월 오비맥주를 M & A(인수합병)한 뒤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이천공장 병라인을 증설하는 데 430억원을 투자했다. 올 6월 광주공장 캔라인 증설에는 500억원을 쏟아부었다. 이전 대주주였던 인터브루는 설비투자를 하지 않았다.
KKR은 또 오비맥주 경영진에게 신뢰를 보냈다. 이 사장은 연임시켰다. 오비맥주가 매각되기 직전인 2009년 4월 이 사장은 연임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당시 이야기다.
이 사장은 취임 직후 오비맥주에 생기를 넣기 위해 벽을 없앴다. 사장실·임원실의 벽을 허물고 책상을 붙였다. 사원들과 똑같은 의자에서 함께 근무했다. 9명이던 임원 비서는 3명으로 줄였다.
임원실의 벽이 허물어지자 팀장급도 줄줄이 칸막이를 뺐다. 폐쇄적인 공간으로 악명이 높았던 오비맥주 31개 영업점도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사장의 ‘벽털기 경영’이 오비맥주의 조직문화를 바꿔놓은 것이다. 이 사장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다. “대주주가 바뀌어도 이런 문화가 계속돼야 하는데, 고민이 많습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열린 문화는 정착시켜 놓을 계획입니다.” (※오비맥주는 KKR에 인수된 후 서초동에서 역삼동 화인빌딩으로 사옥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열린임원실은 사라졌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대주주가 열린임원실을 없애라고 한 게 아니다”며 “리모델링을 하려고 했지만 벽을 허물지 말라는 빌딩 측의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KKR은 오비맥주 경영진의 재량도 많이 인정했다. 지난해 10월 ‘2011년 경영목표’를 세우기 위해 오비맥주 경영진과 KKR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비맥주 경영진은 1.5%+알파를 2011년 성장률로 제시했다. KKR이 기대했던 목표 성장률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KKR은 올 1월 오비맥주가 제시한 1.5%+알파안(案)을 수용했다. “무리한 성장보다는 내실을 탄탄하게 하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장 부사장은 “항간에서는 KKR이 무리한 경영목표를 요구해 오비맥주가 어쩔 수 없이 공세전략을 편다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KKR은 오비맥주 경영진의 목표와 계획을 대부분 수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이트 이기려면 영호남 말뚝 뽑아하이트맥주는 오비맥주의 공세를 덤덤하게 보면서도 긴장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김인규 사장은 “오비맥주의 대주주 KKR이 어떤 목적으로 공격적 마케팅을 펴는지 알 수 없지만 하이트맥주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진 건 우리의 문제”라고 말했다.
하이트맥주의 시장점유율 하락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차갑다. BoA메릴린치증권은 6월 하이트맥주의 목표주가를 11만4000원에서 10만7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KTB투자증권 김민정 애널리스트는 “맥주시장이 회복되고 있지만 그 수혜를 오비맥주가 누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하이트맥주는 분위기 반전을 자신한다. 김인규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산봉우리를 정복한 뒤 다른 산으로 가려면 내려와야 합니다. 하이트맥주가 하락세에 있는 건 맞지만 이는 다시 올라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김 사장은 “하이트맥주는 저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이트맥주 관계자는 “15년 넘게 1등 브랜드를 유지하는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의 승부수는 하이트맥주의 멀티브랜드 전략이다. 하이트맥주는 카스 중심의 오비맥주와 달리 하이트맥주·맥스·드라이피니시d를 독립브랜드로 만들었다. 맥스와 드라이피니시d를 성장시켜 카스를 협공하겠다는 전략이다.
2006년 9월 출시된 맥스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매년 2~3%포인트씩 점유율이 오른다. 올 2월에는 시장점유율이 10%를 넘기도 했다. 드라이피니시d의 점유율도 지난해 0.7%에서 올 6월 1.8%로 조금 올랐다. 김 사장은 “멀티 브랜드 전략은 과도기에 있다”며 맥스와 드라이피니시d의 시장점유율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폭발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이트맥주의 품질도 강점이다. 올 5월 ‘2011 몽드셀렉션 시상식’에서 하이트·맥스·드라이피니시d는 금상을 수상했다. 국내 최초였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가 있는 몽드셀렉션은 글로벌 권위의 주류 품평회다. 맥스의 맛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 유니벌스출판사의 『1001 BEERS, YOU MUST TASTE BEFORE YOU DIE(죽기 전에 맛봐야 할 1001가지 맥주들)』는 국내 맥주로는 유일하게 맥스를 소개했다. 2008년 4월 전국 5만3932명이 참가한 ‘대결 맛대맛’이라는 맥주 테스트에서 참가자의 75%가 맥스를 꼽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이트 “수성전략은 끝났다”강점은 또 있다. 하이트맥주의 시장점유율은 강원도와 영호남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다. 강원도는 50%, 영호남은 70%에 달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하이트맥주의 말뚝수량’이라고 한다. 집을 무너뜨리려면 말뚝을 뽑아야 하고, 하이트맥주를 이기려면 강원도와 영호남을 공략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오비맥주는 하이트맥주의 말뚝을 아직 뽑지 못했다.
여기에 올 9월 1일로 예정된 진로-하이트맥주의 합병은 하이트맥주의 마케팅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김 사장은 “양사 합병으로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는 재무제표에 충분히 드러날 것”이라며 “합병 1년 후인 2012년에는 매출 8% 증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진로 인수를 위해 차입했던 5000억원을 2014년까지 상환할 것으로 보여 투자여력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주류업계의 성수기는 7, 8월이다. 오비맥주는 이번 성수기를 기회로 본다. 내심 통합브랜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대한다. (※ 올 1월 하이트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은 단일 브랜드 카스였다.)
장인수 부사장은 “잠정 집계 결과지만 올 6월 출고량이 월드컵이 열렸던 전년 동기보다 많은 1000만 상자를 기록했다”며 “성수기에는 출고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2등은 1등보다 많이 뛰어야 한다”며 하이트맥주를 이기기 위해 공격적 마케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하이트맥주도 수성(守城)전략을 탈피해 공세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김인규 사장은 “주류시장에서는 강한 자가 더 강해진다”며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MS를 끌어 올리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는 7월 중순.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가 충돌한다. 양사는 벌써 진검을 뽑았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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