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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연금복권은 노후자산으로 2% 부족

[Trend] 연금복권은 노후자산으로 2% 부족

매주 토요일 저녁 8시34분, 방송을 지켜보면서 6개의 번호를 확인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이들은 두 가지 마음을 품고 방송을 지켜본다. ‘제발 한 번만 맞아라’는 인생역전을 기대하는 마음과 ‘정말 당첨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엉뚱한 걱정. 하지만 보는 이의 마음과 전혀 상관없는 번호로 방송은 끝나곤 한다.

이제 토요일뿐만 아니라 매주 수요일 7시40분, 또다시 번호를 맞추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매월 500만원씩 20년간 총 12억원을 지급’하는 연금복권! 복권에 당첨되면 당첨금을 일시에 지급하는 게 아니라 연금처럼 매월 500만원씩 20년간 지급하는 방식이라 화제다. 연금복권은 총 630만 장을 발매하고 있다. 7월 6일 첫 당첨자가 발표된 후 매회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연금복권이 로또나 토토복권 같은 기존 복권과 다른 점은 당첨금을 분할 지급한다는 것이다. 연금복권의 기획 의도는 복권 당첨자가 불행해지는 복권의 저주를 막아 보자는 데 있다.



‘복권의 저주’ 사슬 끊을 듯 연금복권은 한 방에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게 아니다. 당첨되면 무조건 잠적할 것, 전화번호를 당장 바꿀 것, 최소 한 달 이상 해외에 나가 있을 것…. 로또복권 당첨자 수칙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매월 500만원씩 분할 지급되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필요도 없고, 이 정도 수입이 지속된다면 훨씬 안정적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수고나 대가 없이 20년 동안 매월 500만원씩 수입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로또 당첨금을 탔을 때처럼 일하기 싫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돈에 대한 심리적 문제와 삶의 태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연금복권 1등 당첨금, 매월 500만원씩 20년간 지급되는 당첨금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모두가 알고 있듯 20년간 매월 500만원을 지급한다고 할 때 이 돈의 가치는 총 지급금액 12억원이 아니다. 복권위원회는 복권 판매대금 가운데 일시금이 지급되는 2등 이하 당첨금을 지급하고 난 후 나머지 당첨금 재원을 적립해 놓고 매월 500만원씩 1등 당첨금을 지급해 나간다. 그러므로 복권 당첨금의 실제 가치는 그 적립금이 얼마냐, 얼마의 일시금이 있으면 운용수익으로 매월 500만원씩 20년 동안 나누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적립금 이자율을 얼마로 적용할지에 따라 다르지만 연 수익률 5%를 적용해 매년 6000만원을 20년간 지급하려면 7억4773만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다른 복권도 마찬가지지만 연금복권도 실제로 수령하는 금액은 500만원에서 22%의 소득세를 제외한 390만원을 지급한다. 그렇다면 수령자 입장에서 실제 1등 복권 당첨금의 가치는 5억8323만원이 된다.

현재 5억8323만원의 가치를 가지는 이 연금복권의 가치만큼 돈을 모으려면 얼마나 저축해야 할까? 만약 현재 매주 10장, 1만원씩 복권에 투자하는 사람이 복권을 사지 않고 저축한다면 얼마나 오래 투자해야 복권 당첨금을 모을 수 있을까? 매주 1만원씩 52주를 투자하고 연 수익률을 5%로 계산하면 복권 당첨금만큼의 가치가 되는 데 83년이 걸린다. 83년 동안 매주 연금복권 10장씩 산다면 83년 동안 4만3160장을 사는 것이고, 4316만원을 복권 비용으로 지출하게 된다. 이 기간 중 한 번만 당첨된다면 손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83년을 계속 산다 해도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 로또복권 당첨 확률 815만분의 1보다 높다고 선전하는 연금복권의 당첨 확률은 315만분의 1이다. 매주 1만원이 아니라 매월 10만원을 투자한다고 생각했을 때 5억8323만원을 마련하려면 5% 수익률로 66년, 10% 수익률이면 41년이 걸린다.

연금복권은 이름 그대로 노후준비를 위한 좋은 자산이라는 측면에서 40, 5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무엇보다 복권 당첨자가 겪게 되는 복권의 저주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연금복권은 분명히 장점이 있다. 그러나 노후준비 자산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유감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노후준비 자산이 가져야 할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현금흐름이다. 지속적인 소득을 제공하는 자산이어야 한다. 자산의 크기보다 현금흐름이 중요하다. 노후에 땅이나 빌딩이 얼마가 있느냐, 목돈이 얼마가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그 자산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현금흐름이 창출되느냐는 것이다. 젊었을 때와 달리 은퇴 이후에는 자산으로부터 소득이 창출돼야 한다. 소득이 창출되지 않는, 매월 필요한 현금을 만들어내는 자산이 없으면 결국 그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해 살거나, 소유 자산을 점점 갉아먹는 불안한 노후를 살아가야 한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 고려해 지급둘째, 현금흐름이 살아 있는 동안 종신토록 창출돼야 한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현금흐름이 10년, 20년 동안 지속되다가 끝난다면 그 이후는 매우 불안해질 수 있다.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금흐름이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후준비 자산의 셋째 특징은 물가상승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자산은 평균적으로 30년 이상을 생각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이때 물가상승에 대한 고려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500만원과 30년 후의 500만원은 큰 차이가 난다.

연금복권은 현금흐름을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노후자산으로 적합하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 일단 20년간만 지급된다는 측면에서 노후자산으로는 결함이 있다. 예를 들어 당첨금을 10억원이라는 식으로 정해 놓고 이 돈을 재원으로 최소 20년간은 사망 때도 확정적으로 지급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지급하는 연금보험 방식이라면 훨씬 바람직한 노후준비 상품일 될 수 있을 것이다. 55세부터 20년 동안 매월 500만원씩 받다가 75세 되면서 그 소득이 없어진다면 너무 힘들어지지 않을까? 물론 그 책임은 당첨금을 받는 사람의 몫이긴 하지만….

물가상승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현재 390만원의 가치와 20년 후 390만원의 가치는 매우 다를 것이다. 물가상승률 4%를 적용해 보면 10년 후에는 263만원, 20년 후에는 178만원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만약 물가상승률이 더 커진다면 가치하락은 더 심해지게 된다. 해가 거듭될수록 돈의 실제 가치는 점점 줄어들고, 소득이 줄어듦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나 활동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다른 은퇴자산보다 좋은 이유는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연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이다. 보험회사에서 지급되는 연금은 대부분 명목금액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현재 소득수준에서 결정된 연금액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물가상승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이다. 만약 연금복권이 국민연금처럼 일정 금액을 정해 놓고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증액해 지급한다면 좀 더 은퇴자산에 적합한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금복권은 노후준비에 대한 시대적 불안감과 복권의 저주를 막아 보려는 현실적 필요가 만나 탄생한 상품이다. 복권이 인기를 끄는 세태가 그리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꽤 매력적인 상품이다. 우리가 들어왔던 복권 당첨자의 불행을 전하는 뉴스가 아니라 행복한 서민의 당첨 사례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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