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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이륙 5년 만에 흑자 고공비행

[Business] 이륙 5년 만에 흑자 고공비행

2010년 1월 취임한 김종철(53) 제주항공 대표는 서울 강서구 공항동 국제화물청사 3층에 있는 제주항공 사장실에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김 대표는 “임직원의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며 “사장실과 회의실을 리모델링해 라운지를 만들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항공이 경영난에서 벗어나려면 임직원의 소통이 절실하다고 봤다. 임원들은 반신반의했다. 한 임원은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데 소통으로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갸우뚱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럴 만도 했다. 2006년 첫 출항한 제주항공은 당시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2009년에는 2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김 대표가 CEO에 오른 지 18개월이 지난 올 7월, 제주항공의 실적은 놀랄 만큼 좋아졌다. 올 상반기 매출은 109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늘었다. 반기 사상 최고 기록이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4억원을 올려 지난해 하반기에 이어 두 반기 동안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제주항공을 짓눌렀던 차입금 규모도 지난해 말 225억원에서 올 6월 말 142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김 대표는 “올해는 매출 25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잡았다”고 말했다.



‘거수기’ 거부한 사외이사 출신제주항공이 높이 날 수 있는 동력 가운데 하나로 김 대표의 소통경영을 꼽을 수 있다. 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 뉴욕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1992년부터는 글로벌 컨설팅그룹 매킨지앤컴퍼니에서 전략 담당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2007년에는 제주항공 사외이사를 맡아 회사의 미래전략을 자문했다. 그는 다른 사외이사와 다른 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거수기’ 역할을 거부했다. 제주항공의 문제점을 틈이 날 때마다 짚어냈다.

그의 첫째 지적은 제주항공이 규모에 걸맞지 않게 2종의 비행기를 운용하는 거였다. 제주항공은 2010년 6월까지 Q400(78석)과 B737-800(189석)을 동시에 운용했다. 그 결과 승무원·정비사 교육을 따로 실시했다. 예비부품도 기종별로 준비해야 했다. 돈이 이중·삼중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가 짚어낸 또 다른 문제는 일본에 편중된 국제노선이었다. 제주항공은 2009년 국제선에 취항했지만 일본 외에는 별다른 노선이 없었다. 사외이사 시절 김 대표는 임원들에게 이런 문제를 수차례 지적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는 “제주항공이 생존하기 위해선 조직 내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바로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직원용 라운지를 만든 이유는 여기에 있다. 라운지 개설은 그에게 “소통경영을 하겠다”는 무언의 선전포고였다.

김 대표는 취임 직후 오랫동안 검토했던 ‘단일기종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먼저 Q400 기종의 폐기를 서둘렀다. Q400은 제트엔진 양쪽에 프로펠러가 달려 있는 기종이다. 유지보수 비용이 일반 제트기보다 30%가량 덜 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먼 거리 비행이 어렵고 탑승 규모가 작다는 단점도 있었다. 사내에서 Q400 폐기전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유는 대략 이랬다. “Q400 기종을 교체하려면 새로운 비행기가 수주돼야 하는데, 일정이 틀어지면 큰 손실이 날 수 있다.” “Q400을 폐기하면 제주항공이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김 대표는 소통으로 맞섰다. 자신의 전략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직책이 높든 낮든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임직원 100%가 동의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설득했다. 무작정 반대하던 임직원의 마음이 누그러졌고, 제주항공은 지난해 6월 Q400 4대를 전량 폐기하고 B737-800을 4대에서 8대로 늘렸다. 곧장 성과가 나타났다. 항공기를 단일기종으로 바꾼 뒤 유지관리 비용이 10% 이상 절감됐다. 항공기 가동률(평균 운항시간)은 2009년 대당 8.2시간에서 올 상반기 11.1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김 대표는 “글로벌 항공사 사우스웨스트의 가동률(14시간)을 따라잡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항공기 가동률이 증가하자 덩달아 임차료 부담까지 줄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항공기의 월 임차료가 100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항공기 한 대를 5시간 가동하든지, 10시간 가동하든지 똑같은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며 “한 항공기의 평균 운항시간이 늘어날수록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있기 때문에 항공기 가동률이 올라가면 임차료 부담이 감소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밀어붙인 둘째 프로젝트는 동남아 노선 개척이었다. 그는 “일본에 안주하지 말고 동남아까지 공략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역시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내 반발이 컸다. “먼 거리 비행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는 이번에도 소통전략을 폈다. 임직원들에게 ‘제주항공의 안전운항 능력을 믿자’고 역설했다. “2009년 IATA(국제항공운송협회)가 평가하는 IOSA 인증을 무결점으로 획득했습니다. IOSA를 무결점으로 통과한 항공사는 에어프랑스·싱가포르항공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항공사의 안전운항지표인 정시운항률은 국내 최고인 0.15%입니다. 자신감을 가져도 됩니다.” 그는 또 “운항팀·정비팀 등 제주항공의 수많은 팀이 서로 소통하면서 협조를 잘하면 동남아 노선 운항쯤은 너끈히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남아 노선 개척 승부수 통했다그의 승부수는 통했다. 인천~마닐라(2010년 11월), 부산~세부(2010년 11월), 부산~방콕(2011년 6월) 등 동남아 노선의 개척으로 제주항공은 ‘황금어장’을 얻었다. 제주항공은 올 상반기 국제노선에서 56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0년 상반기(274억원)보다 106% 늘어난 금액이다. 7월 21일에는 국제선 정기노선에 첫 취항한 지 2년4개월 만에 누적탑승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저가항공사로선 최초다. 제주항공의 DNA도 국내에서 국제항공사로 변했다. 제주항공은 올 상반기 매출 중 52%를 국제선에서 올려 국내선(48%)을 앞질렀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수요가 감소하고 고유가 부담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동남아 노선 개척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엄살이 아니다. 대한항공 진에어·아시아나항공 에어부산·이스타항공·티웨이항공 등 국내 저가항공사들은 올 들어 동남아 노선에 취항했거나 취항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항공도 신규노선을 개척하지 않으면 올해 같은 실적을 장담할 수 없다. 김 대표는 “동남아 노선 외에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고, 베트남 노선 취항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5년 전 국내에 저가항공시대를 개막한 제주항공은 숱한 오해를 받았다. “저렇게 낮은 비용으로 항공기를 어떻게 운항하느냐, 안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제주항공의 항공요금은 대형 항공사의 70% 수준이다. 제주항공의 인천~마닐라 노선(체류기간 15일 기준)은 38만~50만원인 데 비해 대형 항공사는 70만원이 넘는다. 5년이 흐른 지금 제주항공은 고정고객을 확보한 저가항공사로 거듭났다. 대형 항공사가 각종 프로모션을 통해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춰도 제주항공의 평균 승객 탑승률은 10%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친다. 다른 저가항공사의 경우 많게는 40%까지 탑승객이 준다. 제주항공의 5년 후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김 대표는 “2016년 미국·유럽 등 운항시간이 10시간 넘는 장거리 노선 취항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꿈이 이뤄진다면 제주항공은 세계 저가항공업계에 큰 획을 남기게 된다. 동북아를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저가항공사로 우뚝 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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