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ON THE RISE] 인도의 힘
[ASIA ON THE RISE] 인도의 힘
JOEL KOTKIN, SHASHI PARULEKAR싱가포르의 만다린 오리엔털 호텔 19층에 있는 클럽 라운지. 인도인 사업가 아니시 랄바니가 유리와 강철로 된 고층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다본다. 랄바니 집안이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공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니시의 친할아버지 티라트 싱 랄바니는 카라치(파키스탄의 옛 수도)에서 조지 6세 영국 국왕의 군대를 상대로 의약품을 팔았다. 당시 카라치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일부였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파키스탄이 분리돼 신생독립국이 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랄바니 가족은 양측 국경 주변에 살던 다른 많은 주민들처럼 피란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인도가 아니라 외국에서 살 길을 모색했다. 현재 랄바니 가족이 운영하는 바이나톤 그룹은 홍콩에 본사를 두고 4개 대륙에서 총 4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인도에서는 배타적인 기득권층의 인맥을 뚫기가 어려웠다”고 아니시는 말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우리 스스로 인맥을 구축해 나갔다.”
피란민 신세에서 재벌이 된 랄바니 가족의 성공은 전 세계에 퍼져 사는 인도인 이민자 사회 전체의 모습을 반영한다. 해외 거주 인도인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그들의 영향력도 커지는 추세다. 현재 해외 거주 인도인의 수는 약 4000만 명으로 이들은 서아프리카와 미국 대륙, 동아시아 등에 퍼져 산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호주를 포함한 이들 국가에서 인도 이민자와 그 자손들의 소득과 교육 수준은 평균을 웃돈다.
인도의 국제적 중요성 역시 유럽 주도의 세계 경제가 시작된 17세기 이후 가장 커졌다. 또 지난 10년 동안 연간 8%(미국의 두 배를 웃돈다)로 꾸준히 성장한 경제 덕분에 인도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간다. 대다수 경제학자가 오는 2025년엔 인도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되리라 전망한다.
인도는 인구 면에서도 다른 어떤 대국보다 활발한 성장세를 보인다. 현재 인도의 인구는 12억1000만 명으로 13억명인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하지만 중국의 ‘한 자녀 정책’ 덕분에 2020년대 말에는 인도의 인구(14억 명 추정)가 중국(13억9000만 명 추정)을 앞지르리라 예상된다. 또 인도는 현재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미국 다음으로 많아 세계 2위지만 2020년에는 이 숫자 역시 미국을 앞질러 1위가 될 듯하다.
인도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지기까지는 해외 이민자들의 공이 컸다. 사실 이들은 인도 외자(外資)의 중요한 공급원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09년 해외에 거주하는 인도인 근로자가 본국의 친척들에게 송금한 금액은 490억 달러로 중국의 20억 달러와 멕시코의 40억 달러를 큰 폭으로 웃돈다.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중 북미에서 송금되는 액수가 차지하는 비율만도 4%에 이른다.
인도의 재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족 중심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중국인 기업가들은 자금이 필요할 때 가족에 의존하기보다 은행(대다수가 국영)을 이용하는 경우가 두 배 이상 더 많다. 반면 인도 기업들은 국내외 가족과 친인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넬슨(시장조사 업체) 뭄바이 지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바스탈라 판트는 이렇게 말했다. “인도의 중산층 대다수가 해외에 인맥이 있다. 세계 각지에 퍼진 인도인의 인맥은 주로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가족 중심 인맥의 중요성은 해외 거주 인도인 사회와 상업의 밀접한 관계에서 드러난다. 모리셔스, 미국 대륙, 싱가포르, 아랍 에미리트 연합, 영국 등 인도의 5대 투자 지역에는 대규모 인도인 이민자 사회와 인도인이 경영하는 기업들이 있다. 이들 기업은 특히 전자와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타타, 릴라이언스 그룹 등 인도 최대 기업들 역시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일가친척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족벌 기업이다. 영국에서 자라 인도계 미국인과 결혼하고 지금은 홍콩 시민이 된 랄바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매우 융통성 있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세계적인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다. 혈통은 인도인이지만 미국과 영국, 홍콩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은 지금의 내가 형성된 과정이며 우리 사업의 운영 방식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인도인 기업가들이 이런 정신으로 사업을 이끌어 왔다. 아니시의 아버지 파르탑 랄바니와 삼촌 굴루는 처음에 런던에서 바이나톤을 설립했다.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소비자 전기·전자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였는데 차츰 주전자와 토스터, 다리미 등 가정용 기기로 영역을 확대했다. 지금 이 회사는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아프리카 오지 등 틈새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인도의 해외 이민은 18세기 말 인도인 근로자들이 대영제국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1834년 영국이 노예제도를 폐지한 후 세계 곳곳에서 노동력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그 규모가 한층 더 커졌다. 인도인들은 말레이 반도의 고무공장이나 서인도제도의 계약 노동자로 파견됐다. 나중에 그중 대다수가 귀국했지만 일부는 새 나라에 눌러앉아 그 국가의 경제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됐다. 영국 식민지의 공무원 사회에서 높은 직위까지 올라간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사업가나 교사, 의사, 대부업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대영제국 시절이 막을 내린 후에도 인도에서는 더 나은 삶을 찾아 해외로 떠나는 이민 물결이 이어졌다. 그중에는 머리 좋고 근면한 사람이 많았다. 현재 미국의 인도인 이민자 수는 미국 전체 인구의 1% 에 못 미치지만 미국 명문 대학의 대학원생 중 약 13%가 인도계 미국인이다. 또 미국 전체 인구 중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의 비율이 28%에 불과한 반면 인도계 미국인의 경우 그 비율이 67%나 된다. 다른 나라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캐나다에선 인도인 이민자의 석사학위 소지자 비율이 전체 인구 중 석사학위 소지자 비율의 두 배에 가깝다. 영국에서는 의대생과 국민의료서비스(NHS) 소속 의사 중 40%가 인도나 파키스탄, 또는 방글라데시 출신이다.
인도인 이민자의 위상은 경제력 면에서도 교육 수준 못지 않게 높다. 영국 에섹스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도계 영국인의 1인당 소득은 1만5860파운드(약 2만6000달러)로 영국 내 다른 어떤 소수민족보다 높다. 이는 또 영국 전체의 1인당 국민소득 중간값을 약 10% 웃도는 액수다. 이 연구에서는 인도계 영국인의 실업률이 영국 전체 실업률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혀졌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가계 소득은 연간 5만 달러지만 인도계 미국인의 경우는 그 액수가 9만달러에 이른다. 또 2007년의 한 조사에서는 1995~2005년 미국에서 인도인 이민자가 설립한 회사의 수가 영국인과 중국인, 일본인, 대만인 이민자들이 세운 회사의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인도 이민자들은 또 세계 곳곳에 인도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해왔다. 영국인 중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인도 음식을 먹는 사람이 200만 명에 이른다. 인도에서 제작된 영화와 TV 프로그램도 세계 시장에 깊숙히 파고들었다. 얼마 전까지도 인도 영화는 내수 중심으로 제작됐지만 최근 들어 인도인 이민자가 많은 나라에 큰 시장이 형성되면서 해외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현재 인도 영화와 TV 프로그램의 해외 매출은 30억~40억 달러로 추정돼 미국 영화에 이어 세계 2위다. 사실 제작편수와 입장권 판매 매수로 따지면 인도가 미국을 앞지른다. 영화계 소식통들에 따르면 서양에서 팔리는 인도 영화 입장권의 3분의1이 비(非)인도계 주민에게 팔린다.
하지만 인도 본국의 상황은 (최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렵다. 뭄바이의 평균수명은 56세에 불과해 영국이나 미국보다 25세나 짧다. 인도 전역의 빈곤율 역시 아직 놀라울 정도로 높다. 인도인 10명 중 4명이 하루 1.25달러가 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간다. 이런 상황이 영구 귀국을 생각하는 해외 이민자들의 발길을 가로막는다.
게다가 아니시 랄바니 같은 기업인들의 경우엔 해외에 남아 있어야 할 더 절실한 이유가 있다. 세계 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랄바니에게는 홍콩을 거점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 중국의 제조업체들과 전문인력을 활용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우리 회사 관리직급엔 인도인 직원이 많지 않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세계 각지 출신의 인재를 채용한다.” 그가 운영하는 바이나톤 그룹은 규모가 큰 편이지만 중국이나 미국, 일본 경쟁사들의 규모와는 비교가 안 된다. 따라서 바이나톤은 큰 기업들이 간과하는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잡아야 한다. 인도인 이민자 사회의 기업계가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둔 비결은 작은 기회도 놓치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로 일가친척이 똘똘 뭉쳐 경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랄바니의 말을 들어보자. “신흥시장은 매우 좁아서 웬만한 융통성으로는 진입하기 어렵다. 생산비용이 저렴하고 체인점이 많지 않은 곳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물건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랄바니(그리고 그와 같은 인도인 사업가)가 생각하기에 더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단순히 돈을 벌어들이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아버지가 시작한 일을 망치지 않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필자 코트킨은 채프먼대 도시미래학 연구원이자 이 기사에 많은 도움을 준 레거툼 연구소의 겸임 연구원이다. 파룰레카르는 공학도 출신으로 금융학 석사와 MBA 학위를 받았다.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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