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Education] 아시아에서 ‘글로벌 키즈’로 키운다
- [Family Education] 아시아에서 ‘글로벌 키즈’로 키운다
LISA MILLER 기자 해피 로저스(8)가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려 재잘거린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도 귀에 들리지 않는 듯하다. 부모와 어린 동생이 밖에서 기다리지만 대화에 정신이 팔려 발걸음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차분하고 조숙한 금발의 힐튼 오거스타 파커 로저스는 해피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미국의 여느 부유한 교외 주거지역이나 대도시 사립학교의 운동장이라면 그녀의 그런 태도가 눈길을 끌 리 없다. 그러나 이곳 싱가포르의 2개 국어를 사용하는 명문 난양(南洋) 초등학교에서 해피는 남다른 존재다. 검정색 머리카락의 바다 속에서 배우 다코타 패닝처럼 길게 늘어뜨린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반짝거리며 빛난다. 바로 이 때문에 그녀의 부모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이곳까지 찾아 왔다. 미국인 친구들이 TV의 저급한 프로그램과 여름 영화의 유치한 내용에 열광할 동안 해피는 교우관계를 넓히고 순전히 표준 중국어로 과제물을 작성한다.
한 싱가포르 식당에서 해피가 볼로네제 스파게티를 입에 가득 물고 영어로 말했다. “중국어를 잘 하면 더 훌륭하고 똑똑해질 거예요.”
얼마 전 자녀를 스파르타식으로 엄격하게 교육하는 ‘타이거 맘’이 미국의 학부형들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로 인한 부모들의 불안감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우리 아이가 일곱 살이나 됐는데 아직 쇼팽의 곡을 하나도 연주하지 못하니 큰일났다) 이번에는 해피의 아빠가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그는 미국의 백만장자 투자자이자 저술가인 짐 로저스다. 이젠 용감하고 호기심 많고 부지런하고 공감능력이 있는 아이로 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는 아이들을 적당한 스포츠, 우수한 교사, 유익한 인턴십, 그래서 좋은(또는 적어도 알아주는) 대학에 입학시키는 게 전부가 아니다. 로저스는 2007년 아내 페이지 파커, 딸 해피(막내 베이비 비는 다음 해 태어났다)와 함께 뉴욕의 부자동네(Upper West Side)를 떠나 싱가포르에 정착했다. 그에 따르면 정말로 자녀의 미래를 생각하는 부모라면 고려해야 할 점이 또 있다. 아이를 ‘글로벌’ 인재로 키우려 정말 최선을 다하는가?
“나는 부모들이 오랫동안 해온 일을 할 뿐”이라고 짐 로저스가 말했다. “미래, 즉 21세기에 대비해 아이들을 교육시키려 한다. 내가 내다보는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아이들을 준비시키려 최대한 노력한다.” 로저스는 아시아에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최근 케이블 TV에서 중국 원자재 상품 투자를 강력히 추천했다. “돈은 동양에 있고 빚쟁이는 서양에 있다. 나라면 빚쟁이보다는 채권자 편에 서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요즘 공개토론 석상에서 급속한 세계화(경제와 사업, 정치와 갈등, 패션, 기술, 음악 등)가 단골 메뉴로 도마에 오른다. 장래 미국의 번영에 커다란 위협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도전에 대처하는 부담은 분명 우리 자녀에게 지워진다. 그들이 지금 외국인, 외국어, 외국 땅에 친숙해지지 않으면 세계에서 미국의 경쟁적 지위가 계속 잠식당하고 그들, 그리고 그 이후 세대의 미래 생존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논리다. 로저스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요즘 같은 글로벌 경제에선 세계의 경제, 사회,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서로 깊게 얽히면서 국내와 국제 이슈 간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진다”고 2010년 봄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행한 연설에서 아니 던컨 미국 교육장관이 말했다. “이처럼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나 문화와 교류가 단절될까 우려된다.”
던컨 장관의 명확한 경고(그리고 로저스 같은 일부 유명인사들의 공개적인 사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금껏 글로벌 시민 세대를 전혀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여권을 보유한 미국인은 37%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학생 1800만 명 중 학부시절 해외 유학을 떠나는 비율은 2%에도 못 미치며 가더라도 주로 휴양지에 가까운 잉글랜드, 스페인 또는 이탈리아에서 단기 체류에 그친다. 조금이라도 외국어를 가르치는 공립 초등학교는 25%에 불과하며 프랑스어·독일어·라틴어·일본어, 또는 러시아어를 교육하는 고등학교 숫자는 1997년보다 줄었다. 중국어와 아랍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그 숫자가 적다.
반면 영어를 배우는 중국인 초등학생·중학생은 2억 명에 달한다. 한국인 부모들은 최근 집단으로 들고 일어나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시기를 초등학교 2학년에서 1학년으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2009~2010 학기 중 전 세계에서 70만 명 가까운 학생이 미국의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유학생이 가장 크게 늘었다. “글로벌한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문자를 가르치지 않는 격”이라고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데이비드 보렌 오클라호마대 총장이 말했다. 미국의 야망과 현실 사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진다.
모두가 수긍하는 해결책은 없다. 2009년 국제교육연구소가 발행한 백서에 따르면 대다수 칼리지와 대학이 해외유학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정책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비율은 40%에 불과하다. 장기 유학 프로그램은 비용이 많이 들며, 국가적으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마당에 학생과 교수가 국제 경험을 우선과제로 삼기에는 너무 시간에 쫓긴다. 어떤 경험이 학생들에게 가장 유익할지 또는 심지어 유익하다는 말의 의미를 두고도 교육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할머니 댁 말고는 멀리 여행한 적이 없는 십대가 여권을 발급받아 런던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주문하면 충분한가? 또는 베이징에서 1년을 지내며 중국어와 경제정책에 관해 집중 심화학습을 받아야 하나? 외국 체험의 목적이 외국어 학습인가 아니면 자동차 공학이나 평화중재 같은 전문지식의 습득인가? 아프리카 촌락의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모기장을 주면 공공 봉사활동인가?
짐 로저스는 미국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그는 상승세에 있는 나라와 문화에 몸을 담그는 몰입 체험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우리는 미국이 세계 일등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라고 그가 말했다. “나도 그런 말을 하기 싫다. 나도 미국인이다.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낸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수준이 썩 높지 않아 아무래도 어려움을 겪을 성싶다.” 로저스 가족이 거주하는 침실 다섯 개짜리 주택에는 TV가 없다. 대신 십여 개의 지구의와 지도, 아이들에게 중국어로만 말하는 보모와 가정부 한 명씩, 자전거 몇 대, 그리고 아이들이 중국어 노래를 배우는 새 노래방 기기 한 대가 있다.
한 세대 전 그리고 18세기말의 정치가 토머스 제퍼슨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특정 계층의 가정에서 특정 부류의 어린이를 해외로 보냈다. 그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체류는 모차르트나 렘브란트의 작품을 아는 만큼 교양인이 되는 데 중요했다. 물론 그 목적은 유수한 미술관 관람이었지만 다른 나라의 공기를 호흡하고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그 나라의 리듬에 적응케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헤밍웨이뿐 아니라 벤자민 프랭클린과 배우 조니 뎁도 그렇게 했다. 파멜라 울프도 그 전통을 따랐다. 그녀는 남편, 아이들과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1년을 보낸 뒤 최근 뉴욕으로 귀환했다. 그녀의 십대 자녀들은 그곳의 국제학교에 입학해 세계 각지에서 온 아이들과 어울리며 스페인어를 배워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녀의 자녀들이 글로벌한 시야를 갖춘 이유는 단지 언어능력뿐 아니라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유연성을 길러야 했기 때문이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도록 해야 한다”고 울프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대단히 공감능력이 뛰어난 아이로 성장한다. 성적과 학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공감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장기체류는 극소수에게만 가능하다. 대단히 모험적이거나 아주 부유한 사람 말이다. 울프와 그녀의 남편 모두 자영업자다. “금전적으로 우리는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큰 특혜를 누린다”고 그녀가 말했다.
자원과 인맥이 없으면 외국 체험이 괴로움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2년 전 샌 앤토니오에서 살던 매리베스 헨더슨은 남편, 대학생 아들, 입양한 다섯살배기 딸 웨이웨이와 함께 중국의 오지 광둥성으로 이주했다. 웨이웨이는 중국 표준어를 별로 배우지 못했으며(학교에선 주로 광둥어를 가르쳤다) 헨더슨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꼈다. “너무 중국적이라서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동화하기가 어려웠다”고 그녀가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기도 어려웠다. 치킨을 주문하면 말 그대로 통닭 한 마리를 가져다 줬다. 생닭이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헨더슨은 중도에 포기하고 남편과 아들을 광저우에 남겨둔 채 예정보다 빨리 웨이웨이와 함께 텍사스로 귀환했다. 하지만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올 여름 그녀는 웨이웨이와 함께 베이징으로 건너간다. 대도시니까 예전과 같은 소외감은 덜하리라고 그녀는 기대한다. 웨이웨이에게 중국어를 가르친다는 목표는 변함없다. “글로벌 경제에서 아이들이 경쟁력을 갖춰 성공하려면 2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PSAT(예비 SAT), SAT(미국 대학 수학능력시험), 그리고 화려한 과외활동의 일직선이지만 좁은 길을 자녀가 안전하게 달리면서도 글로벌한 체험을 쌓게 되기를 원하는 부모라면 선택의 폭이 갈수록 넓어진다. 지난 40년간 외국어의 집중 심화학습 과정을 제공하는 몰입형 학교(immersion school)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응용언어학연구소에 따르면 1970년 이후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은 440개소나 된다. 그리고 특히 중국 표준어는 경쟁 지향적인 부모 사이에서 일거양득으로 간주된다. 다섯 살부터 중국어를 배우면 두뇌용량이 커지고 언어를 통해 미래의 문화에 노출된다. 교육 창업가 크리스 휘틀과 동료들은 최근 애버뉴스 학교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 9월 뉴욕시에서 문을 여는 이 학교는 뉴욕의 최고 명문(그리고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와 경쟁한다. 교육과정은 100% 2개 국어로 진행된다. 자녀가 세살 때 부모가 중국어나 스페인어 중 택일한다. 학생들은 해피 로저스와 똑같은 교육을 받지만 편안하게 국내에서 그런 혜택을 누린다. “외국어를 한 가지도 배우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동적으로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생각한다”고 휘틀이 말했다. 애버뉴스 학교가 문을 열려면 14개월이나 남았지만 이미 1200건의 입학원서가 접수됐다.
요즘 일부 대학에선 해외유학 경력이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몇몇 전문 대학원, 특히 비즈니스 스쿨이나 엔지니어링 스쿨은 해외 유학을 필수 교과과정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유타에 있는 한 커뮤니티 칼리지(지역 단기대학)의 간호학과 학생들은 모두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베트남에 있는 병원에서 한 달 동안 현장실습을 해야 한다. ‘해외유학을 통한 능력양성 센터’의 마거릿 하이젤 소장은 이국 땅에서 오래 살아봐야 진정한 글로벌 교육이 된다고 믿는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배우지 못하는 지식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나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안식년을 맞아 가족을 모두 암스테르담으로 데려갔다. 오빠들과 나는 현지 공립학교에 입학했다. 그 한 해 동안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한 손으로 담배 마는 법을 배웠으며 나중에는 마치 토박이 15세인 양 네덜란드 말을 구사했다. 우리는 스톤헨지(영국의 고대 거석기념물)와 국립미술관을 관람하고 부르고뉴를 찾아가 포도를 수확했지만 그보다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자립심이 어느 정도 생겼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15세 소녀라면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어떤 문화적 장벽이라도 뛰어넘는다).
“어느 정도 해방감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하이젤이 말했다. “익숙한 곳에 있을 때는 잠들어 있는 재능을 자극한다. 융통성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압박을 준다.” 베이비 비도 미국과 싱가포르 어느 곳에서나 똑같이 자기 나라처럼 편하게 행동한다. 싱가포르에 있을 때는 아빠가 매일 삼륜 자전거에 태워 등교시킨다. 그녀는 학교에서 싱가포르 국가를 부르고 싱가포르 국기에 맹세를 한다. “중국계 아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담임교사 푸수친이 말했다. “중국말도 똑같이 잘 한다.”
[With reporting by Lennox Samuels in Singapore
번역 차진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와이파이 이용 가격이..", 북한 여행 간 러시아인들 후기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월드컵 중요"…손흥민 마음 속 새 팀은?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진성준 "코스피 안 망한다"…'대주주 기준 상향' 반대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IPO 실패시 회수 어떻게?…구다이글로벌 CB 투자 딜레마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구독하면 200만원 주식 선물', 팜이데일리 8월 행사 시작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