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po] 프라하의 심장에 한류가 흐르다

8월 28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성지(聖地)’ 바츨라프(Vaclavsky) 광장에 섰다. 정면에는 르네상스풍의 프라하 국립박물관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바로 앞 4차로 일방통행 도로에는 수많은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투싼이 보인다. 현대차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연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스포티지 두 대가 경쟁하듯 질주한다. 기아차다. 혹시 한국차를 또 볼까 집중하게 된다. 대략 10대 중 2대는 한국차로 보인다. 현대차 로고가 달린 난생 처음 본 자동차도 눈에 띄었다. 모닝처럼 생겼다. 나중에 알아보니 i10이다. i10은 유럽향 자동차로 배기량 1000cc의 경차다.
체코인들에게 바츨라프 광장은 ‘성지’다. 1968년 체코의 민주자유화 운동 ‘프라하의 봄’, 1989년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무혈운동 ‘벨벳혁명’이 일어난 곳이다. 이런 성스러운 곳에서 한국 기업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올 8월 1일 바츨라프 광장에서 K팝 플래시몹 행사도 열렸다. 체코 젊은이 100여 명이 모여 춤을 췄다. 우리 귀에는 익숙한 소녀시대·슈퍼주니어·빅뱅 등 국내 아이돌 가수의 곡에 맞춰서였다. 체코의 ‘한국 아이돌 커뮤니티’ 4개가 모여 만든 깜짝 플래시몹 ‘K팝’ 행사였다. 플래시몹이란 불특정 다수가 인터넷·e메일·휴대전화로 정한 시간과 장소에 모여 특정 행동을 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한류 플래시몹이 체코까지 이어진 것이다.
다시 바츨라프 광장. 4차로 일방통행 도로를 건넜다. 지도를 보니 ‘윌스노바(Wilso- nova)’라고 써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광화문대로쯤 되는 듯하다. 프라하 국립박물관 앞에 섰다. 700m에 달하는 바츨라프 광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애플 열풍 잠재운 갤럭시S바츨라프 광장의 의미는 조금 퇴색했다. 체코에서 이 광장처럼 서구화된 곳은 드물다. 광장 주변에는 맥도날드가 다섯 곳이나 있다. 또 다른 미국 프랜차이즈인 서브웨이·KFC도 성스러운 이곳에서 돈을 끌어모은다. 거리 햄버거 가게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섹시 레스토랑 ‘후터스’의 광고판이 너절하게 달려 있다.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이번엔 현대차 i20의 래핑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의 정면과 옆면을 덮은 대형 래핑광고물이다. 대체 어떤 건물이길래 현대차가 광고를 부착할 수 있었을까. 발걸음을 현대차 광고물 쪽으로 200m가량 옮겼다. 그 건물 앞에 섰다. 놀랍게도 프라하 중앙기차역이다. 현대차는 올 8월 이곳에 래핑광고를 설치했다. 비록 광고에 불과하지만 아무나 설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울역의 전면과 옆면에 독일 폭스바겐이 래핑광고를 한 것과 다름없다. 그만큼 체코에서 한국 기업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얘기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만난 은행원 루카쉬는 “프라하에서 대표적인 바츨라프 광장과 프라하 중앙역에서 광고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삼성·현대차 등 한국 기업의 인지도가 무척 높다”며 “지금은 체코의 국민차인 ‘스코다(skoda)’를 타고 있는데, 다음엔 현대차를 구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국 기업의 옥외광고물은 체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프라하 공항의 진입로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옥외광고물은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 조형물이다. 거기서 30m만 가면 기아차의 광고가 있고, 현대차는 프라하 공항 진입로에 2008년 4월부터 배너광고를 하고 있다. 체코의 또 다른 성지 ‘프라하성’ 주변에는 이른바 ‘삼성길’이 있다.
삼성전자는 2006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사시사철 붐비는 이곳에 Lamp Poster(가로등 포스터)를 설치하고 프리미엄 모바일 휴대전화 광고를 하고 있다.
이들이 광고에만 열중하는 건 아니다. 실적도 눈부시게 증가했다. 1995년 체코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2010년 이곳에 독립법인을 세웠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출시한 피처폰 ‘스타’는 10개월 이상 히트 리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스타는 국내에서 ‘연아 햅틱’으로 론칭된 제품이다. 스마트폰 갤럭시의 인기도 높다. 독일의 민간연구소 GFK의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의 올 7월 기준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29.3%로 2위에 올랐다. 2010년 말보다 19%포인트나 늘었다. 노키아는 32.4%로 1위를 지켰지만 2010년 대비 12.9% 줄어들었다.
현대차는 1990년 엑셀 170대를 수출하면서 체코에 진출했다. 2008년 체코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이듬해 체코 현지공장을 세웠다. 레스토랑 매니저인 페트르는 “체코의 노쇼비체(Nosovice)에는 현대차 공장이 있다”며 “대부분의 체코 사람은 노쇼비체 하면 현대차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체코 실적은 상승 추세다. 2007년까지 6490대에 그쳤던 판매대수는 지난해 9990대로 54% 증가했다. 올 7월까지는 6536대를 팔아 연간 1만 대 판매기록을 달성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보다 13년 늦게 체코에 진출한 기아차도 선전하고 있다. 기아차의 씨드(1600cc)는 올 7월까지 전년 판매대수(2784대)에 버금가는 2398대가 팔렸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올 7월 체코 자동차 시장점유율은 13.5%다. 체코의 국민차로 불리는 스코다(30%)에 이어 2위다.
노쇼비체 하면 현대차 떠올려한국 기업 제품을 사용하는 체코 소비자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만난 무대미술을 전공하는 여대생 카트리나의 휴대전화는 갤럭시S다. 카트리나는 “갤럭시S를 쓸 때마다 ‘한국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성능과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든다”고 말했다. 그는 “애플 아이폰을 쓰는 친구들에게 갤럭시S를 추천할 때도 많다”고 전했다.
은행직원 루카쉬는 한국 기업 제품의 품질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전자제품 상가에 가봐도 삼성제품의 품질은 뛰어나다”며 “특히 TV·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인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현대차는 저렴하고 실용적인 자동차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연출을 전공한다는 발랄한 여대생 주잔나는 한국 기업의 열광적 팬이었다. “한국 하면 삼성전자·현대차·기아차·LG전자 등이 생각나요. 얼마 전에 열린 K팝 행사도 봤어요. 친오빠는 기아차 스포티지를 타고, 제 친구는 갤럭시S를 사용해요. 한국, 브라보예요. 가격이 조금 비싼 게 흠이지만….”
프라하=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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