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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불에 넣어도 안 터지는 부탄가스 개발

[Company] 불에 넣어도 안 터지는 부탄가스 개발

대륙제관 박봉준 대표는 8월 30일 서울 역삼동 대륙제관 서울지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불 속에서도 터지지 않는 부탄가스로 세계 시장을 평정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월 30일 부탄가스 제조사 대륙제관의 충남 아산공장. 이 회사의 야심작인 ‘신(新)부탄가스’ 출시(9월 2일)를 앞두고 눈길을 끄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섭씨 700도의 불에 부탄가스를 넣는 실험이었다. 일반 부탄가스라면 큰 폭발이 일어날 만한 상황. 참관인들은 실험장소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혹시 모를 폭발 위험 때문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 폭발은 없었다. 부탄가스 용기는 멀쩡했다.

2008년 휴대용 가스레인지에서 안 터지는 부탄가스 ‘맥스CRV(이하 2008년형 부탄가스)’를 개발·출시했던 대륙제관이 3년 만에 새 제품을 내놨다. 이번엔 ‘700도 화염에서도 안 터지는’ 부탄가스다. 브랜드명은 ‘맥스부탄’으로 정했다. 6월 말 국내 특허등록을 마쳤고 9월 2일 출시했다. 박봉준(53) 대륙제관 대표는 “섭씨 700도가 넘는 고온에서도 견딜 수 있는 부탄가스를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탄가스는 안전한 편이다. 제대로 사용하면 터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부탄가스 사고는 흔히 소비자의 부주의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부탄가스가 얼마 남지 않으면 소비자는 으레 용기를 흔든다. 그러면 용기에 남은 액체가 기체로 바뀌면서 부탄가스가 다시 나온다. 박봉준 대표는 “여기까진 괜찮다”고 했다. 문제는 성질 급한 소비자가 라이터로 부탄가스 용기를 달구거나 난로에 올려놓을 때다. 이런 경우 부탄가스 용기가 녹으면서 큰 폭발이 발생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부탄가스 용기는 머리·몸통·하단부로 나뉩니다. 부탄가스 용기가 녹았을 때 폭발하는 이유는 머리와 몸통·하단부의 압력이 달라서죠. 머리는 17㎏, 몸통과 하단은 평균 22㎏의 압력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 요인으로 부탄가스 용기에 압력이 발생하면 머리 부분이 떨어지면서 폭발이 일어납니다. 관건은 부탄가스 용기가 녹았을 때 머리 부분이 분리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섭씨 700도 불 속에서도 터지지 않아대륙제관의 ‘2008년형 부탄가스’는 이 문제를 해결한 제품이다. 머리 부분이 높은 압력에도 분리되지 않도록 ‘더블 심(double seaming)’으로 단단하게 묶었다. 아울러 부탄가스 용기에 12개 배출구를 만들어 내부압력이 올라가면 가스가 서서히 빠질 수 있게 했다.

대륙제관의 2008년형 부탄가스는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다. 국내 특허는 물론 미국의 UL인증(안전시험인증), 유럽의 파이마크(π Mark·공식안전인증)를 획득했다. 2008년형 부탄가스는 현재 세계 60개국 150여 개 업체에 수출되고 있다.

박 대표는 그러나 2008년형 부탄가스에 만족하지 않았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넘어 불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완벽한 부탄가스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륙제관 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은 무리다 싶었다. 한 연구원은 “불 속에서 부탄가스가 터지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하다”며 맞섰다. 박 대표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실패해도 괜찮다. 도전해 보자. 좋은 결과가 나오면 우리 명성은 글로벌 시장에 퍼질 것이다.”

박 대표의 독려로 대륙제관 연구원들은 2008년 말 연구에 착수했다. 별별 아이디어를 총동원했다. 결과는 매번 신통치 않았다. 부탄가스 용기의 압력차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 부분을 두껍게 만들었지만 정작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삽입되지 않았다. 안전장치를 부탄가스 용기에 붙이는 시제품도 개발했다. 하지만 상용화에 실패했다.

‘불 속에서도 터지지 않는 부탄가스’ 개발이 진통을 거듭하던 2009년 중순, 한 연구원이 해법을 찾아냈다. 그는 박 대표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고온에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는 걸 막기 위해 ‘더블 심’이 아니라 ‘트리플 심(triple seaming)’을 써보면 어떨까요? 2008년형 부탄가스보다 한 번 더 묶으면 머리 부분이 이탈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제품 개발로 위기 돌파박 대표는 무릎을 쳤다. 트리플 심 기술은 대륙제관이 ‘드럼통’을 생산할 때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박 대표는 “한번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고, 놀랍게도 ‘불 속에서 터지지 않는’ 부탄가스가 개발됐다. 박 대표는 “뛰어난 연구인력이 없었다면 이번 신제품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륙제관은 R&D(연구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업체로 유명하다. 1986년 업계 최초로 R&D 전담부서를 만들었고 1997년 5월 부설 연구소를 설립했다. 현재 45명의 연구원이 있고, 매출액 대비 R&D 비용은 10%가 넘는다. 특허·실용신안 등 지적재산권은 200개에 달한다.

대륙제관이 ‘터지지 않는 부탄가스 시리즈’를 개발·출시한 데엔 박 대표의 공도 컸다. 대륙제관이 설립된 1958년 태어난 그는 2003년부터 회사를 이끌었다. 회사 창업자는 박 대표의 아버지 박창호(89) 총회장이다. 그가 CEO를 맡은 후 대륙제관은 전성기를 맞았다. 1994년 코스닥 상장 이후 연속 흑자 기록을 이어갔다. 특히 2006년에는 매출 1000억원 돌파와 2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이 유력했다.

그런데 그해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대륙제관의 아산 부탄가스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피해액은 70억원에 달했다. 부탄가스 거래업체 50여 곳은 대륙제관을 이탈했다. 1000억원을 넘보던 매출은 670억원으로 49% 줄었고, 2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은 물 건너갔다. 대륙제관 임직원이 크게 흔들릴 때 박 대표가 나섰다. “부탄가스 사업을 절대 접지 않겠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부탄가스를 만들자. 2006년 대형 화재 사고는 우리에게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의 목표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었다.

박 대표의 독려는 알찬 결실로 이어졌다. 대륙제관의 ‘2008년형 부탄가스’는 회사가 재기하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2006년 600억원대로 추락했던 대륙제관의 매출은 2009년 1297억원으로 올라섰다. 2010년에는 전년보다 18% 증가한 152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3000만불 수출의 탑도 수상했다. 박 대표는 “불 속에서 터지지 않는 부탄가스가 2008년형 부탄가스 실적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부탄가스 역사에 방점을 찍었다”며 “불 속에서 터지지 않는 부탄가스 실적이 제대로 반영되는 2012년에는 매출 3000억원도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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