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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연구소에 짐?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연구소에 짐?

안철수연구소 침해사고대응센터. 안철수연구소는 오는 10월 16년 만에 처음 마련한 사옥으로 회사를 이전한다.

별안간 불어닥친 ‘안철수 돌풍’은 “앞으로 학교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발언으로 다소 잠잠해졌다. 불씨가 꺼진 건 아니다. 그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유력 대선주자 후보로 거론될 게 뻔하다.

그가 세운 회사 안철수연구소도 실체가 모호한 ‘대선 테마주’로 묶였다. 회사 실적이나 가치와 상관없이 변동성이 그만큼 커졌다. 최근 주가가 말해준다. 이 회사 주가는 안철수 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제기된 9월 2일 상한가를 쳤다. 주가는 5일과 6일에도 급등하며 장중 5만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52주 최고가인 것은 물론 거의 500주 만에 세운 신기록이었다. 증권가에서는 당장 ‘오버슈팅(일시적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는 현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후 주가는 안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 포기를 선언하고, 주가가 과도하게 올랐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9월 16일 3만4200원까지 빠졌다.

안철수연구소 임직원들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 회사의 한 팀장은 “주가가 올라서 좋기는 하지만 모처럼 회사가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데 그런 것은 뒷전이고 정치 테마주로 엮이면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직원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의 시각도 비슷하다. 안철수 신드롬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면서 호전된 펀더멘털은 정작 가려진다는 것이다.

주가만 본다면 안철수연구소는 오랫동안 조용하고 평온한 안철수 원장의 이미지 같았다.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 7월 초를 기준으로 이전 1년간 이 회사의 주가 그래프는 거의 ‘평지’에 가까웠다. 거래량도 많지 않고 주가 변동도 거의 없었다. 상한가를 친 것은 네 차례에 불과했다. 주가는 1년 내내 1만6000~2만원을 벗어나지 않았다. 시계열을 3년, 5년으로 늘려 봐도 마찬가지다. ‘인간 안철수’는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회사 안철수연구소’는 큰 이슈가 없는 안정적이고 평범한 회사였다.



올 매출 1000억원 돌파 가능이랬던 안철수연구소가 증시에서 다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올 7월 중순께다. 안철수 원장의 정치적 행보와는 관련이 없는 실적이 주된 이유였다. 이 회사의 지난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9.5% 증가한 229억원,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84.8% 오른 38억원이었다. 1분기 실적을 포함해 안철수연구소가 올 상반기에 올린 매출액은 433억원, 영업이익은 71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5.1%, 92.1% 오른 호실적이었다. 회사 측은 “지난해 R&D(연구개발)에 집중한 신기술을 바탕으로 차세대 보안제품과 신규 보안서비스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 결과”라고 밝혔다.

상반기에 지난해 매출의 60%를 넘은 안철수연구소를 바라보는 증권가의 기대도 커졌다. HMC투자증권의 최병태 연구원은 “산업특성상 상반기보다는 하반기, 특히 4분기에 매출이 증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안철수연구소의 연간 실적은 지난해 대비 큰 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증권가에서는 안철수연구소가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잠잠했던 주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만 최근 같은 폭등 양상은 아니었다.

9월 2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열린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올해 호실적은 안철수연구소가 지난 수년간 ‘성장성 부재’라는 평가 속에 매출 정체에 시달려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회사는 2008년 매출 660억원을 기록했지만 2009년 695억원, 지난해 698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이 멈췄다. PC 보급과 인터넷 이용자 증가세가 꺾이면서 정보보안 시장이 정체되자 회사의 성장도 따라 멈춘 것이다. 시장 환경도 나빴다. 안철수연구소는 1995년 설립 이후 국내 컴퓨터 안티바이러스 시장 1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군소업체가 난립하고 글로벌 정보보안 업체들이 대거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새로운 성장 엔진이 절실했다.

안철수연구소가 찾은 돌파구는 R&D 강화였다. 그동안 R&D 비용을 늘리고 엔지니어 인력을 대폭 보강한 결실은 올해 나타나고 있다. 올 초 안철수연구소 김홍선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동안 준비된 역량을 바탕으로 2011년에는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실제로 이 회사가 R&D에 주력한 네트워크 보안 분야 성장이 두드러졌다. 특히 UTM(통합 네트워크 보안제품) 매출 성장이 돋보였다. UTM은 올 3월 4일 수만 대의 ‘좀비PC’를 동원해 국내 주요 웹사이트를 마비시킨 디도스(DDos) 공격 같은 네트워크 보안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제품이다. 여기에 악성코드나 스파이웨어(사용자 모르게 정보를 빼가는 프로그램), 해킹 등을 막는 기업 PC용 제품인 ‘V3 인터넷 시큐리티 8.0’, 서버용 제품인 ‘V3넷’ 등 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V3 제품군도 견조한 매출 성장을 이뤘다. ‘V3 인터넷 시큐리티 8.0’은 국제 안티바이러스 평가기관인 바이러스 블러틴이 진행한 인증 평가에서 단 1개의 오진 없이 바이러스, 스파이웨어, 웜, 트로이목마 등 현재 활동 중인 각종 악성코드를 100% 진단해 ‘VB 100% 어워드’를 획득한 바 있다.

안철수연구소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국내 최고라는 데 이견은 거의 없다. 안철수연구소는 백신소프트웨어, 네트워크보안, 보안컨설팅, 보안관제서비스 등 정보보안 전체를 아우르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회사다. 또한 V3에 의존하던 매출도 네트워크보안, 컨설팅, 스마트폰용 보안 제품 등으로 다양화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평이다.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됐던 성장성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해외 해커들의 급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시큐리티 대응센터(ASEC)와 비상 대응팀(CERT)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 역시 국내에서는 안철수연구소가 유일하다.



기술력 최고지만 해외 진출은 부진안철수연구소가 오랜 부진을 털고 재도약하고 있지만 해외시장 진출이 더딘 건 한계로 지적된다. 안철수연구소는 2007년 ‘2010년 보안시장 글로벌 10 진입’을 목표로 세웠지만 오히려 해외 매출 비중은 줄고 있다. 2008년 55억원으로 전체 매출 대비 비중이 8.3%였던 해외 매출은 이듬해 12%까지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4.5%로 줄었다. 올 1분기 해외 매출은 6억4000만원에 불과했다. 글로벌 보안 시장에서 안철수연구소는 15~20위권, 글로벌 패키지 소프트웨어 업체 가운데 360~370위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원장과 안철수연구소를 따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 원장은 2005년 CEO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안철수연구소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지분 37.1%를 보유하고 있는 안 원장은 이사회 의장 지위만 유지하고 있을 뿐 2008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회사 경영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회사 측이나 안 원장 본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안철수 원장의 이미지나 안철수 신드롬이 아닌 안철수연구소 그 자체를 봐야 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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