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es] 펀드매니저보다 시스템을 믿는다
[Riches] 펀드매니저보다 시스템을 믿는다
서울 청담동에 사는 자산가 A씨는 몇 년 전 한 중소형주 펀드에 가입했다. 이름 그대로 중소형주를 주로 매매하는 이 펀드는 벤치마크 대상인 코스피200 지수 대비 초과 수익을 꾸준히 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수익률이 뚝뚝 떨어졌다. 어, 하는 순간에 펀드의 수익률과 등급이 급전직하했다.
그가 보유한 다른 펀드는 수익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유독 중소형주 펀드만 손실을 기록한 바람에 결국 손해를 보고 환매했다. 그 과정에서 이유가 궁금해 담당 프라이빗 뱅커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중소형주 펀드를 맡아 운용하던 유명 K 펀드매니저가 중간에 퇴사해 투자자문사를 세운 후 혼선이 생겼다는 답이 돌아왔다. K 펀드매니저가 그 펀드에서 손을 떼자 운용에 차질이 생겨 수익률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유명 펀드매니저 떠나자 펀드 수익률 급락지난 5월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펀드매니저의 평균 근무기간은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짧았다. 특히 현대자산운용과 GS자산운용은 1년6개월, 메리츠자산운용은 1년5개월에 불과했다. 평균 근무기간이 가장 긴 KTB자산운용도 6년8개월에 그쳤다. 펀드를 담당하는 핵심 인력의 이동이 잦으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금융투자협회가 제공하는 펀드매니저 종합 공시서비스인 전자공시시스템(http://dis.kofia.or.kr)에 접속하면 각 운용사 펀드매니저의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A씨는 중소형주 펀드와 악연 탓에 펀드매니저 개인 역량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펀드에 가입하기로 했다. 그는 ‘인덱스펀드’를 소개 받았다. 인덱스펀드란 특정 지수(대부분 코스피200)의 수익률과 동일한 수익률을 달성하도록 구성된 펀드다. 주가지수와 동일한 수익률을 추구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매우 저렴하고 펀드매니저가 개입할 수 있는 범위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용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몇몇 펀드가 주가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지만, 장기적으로 측정해 보면 대부분의 펀드가 주가지수 이상의 수익률을 거두지 못한다. 따라서 단순한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A씨가 가입한 인덱스펀드에 가입하는 방법 이외에 개인의 운용 역량에 영향을 받지 않고 주식시장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ETF(Exchange Traded Fund)라고 부르는 ‘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할 수도 있다. 인덱스펀드의 경우 투신사가 투자자의 환매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펀드에 편입된 주식을 시장에 매각해야 한다. 이 주식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해당 주식의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주가지수도 하락하게 된다. 이에 따라 다시 인덱스펀드 수익률이 떨어져 해당 펀드 가입자의 손실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투자자와 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주가지수와 비슷한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게 ETF의 큰 장점이다. ETF는 프로그램 매매에 따른 연쇄 주가 폭락이 1987년 블랙먼데이의 한 원인으로 지적됨에 따라 1993년 1월 미국에서 처음 선보였다. 현재 독일, 영국, 스위스,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이 도입하고 있다.
ETF는 인덱스펀드와 달리 주식시장에 상장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인덱스펀드보다 훨씬 큰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덱스펀드는 매일매일의 종가를 기준으로 기준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하루에 한 개의 가격만 형성된다. ETF는 증권거래소에서 매순간 매수·매도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 예를 들면 오전에 주식시장이 급락해 50포인트가 떨어졌다가 오후에 다시 급등해 50포인트가 올라 결국 보합으로 장을 마감했다고 가정해 보자. 인덱스펀드의 기준가는 전일의 기준가와 거의 동일하게 결정될 것이며, 장중 급등락이 투자자에게는 아무런 기회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전 마이너스 50포인트인 시점에서 ETF를 매입해 오후 플러스 50포인트 시점에서 매도한 투자자는 꽤 높은 수익률을 거두었을 것이다. 이런 투자시점의 자유로움 외에도 ETF 매도 시에는 일반주식 매도 때와는 달리 증권거래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운용할 수 있다.
시스템트레이딩펀드는 절대수익 추구인덱스펀드와 ETF는 펀드매니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주가지수를 그대로 추종하도록 만든 펀드이기 때문에 매우 냉철한 투자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도 주가가 떨어지는 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8월 초 이후의 주가 폭락과 엄청나게 커진 변동성이 지배하는 시장에서도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는 B씨는 남몰래 미소를 짓고 있다. B씨를 미소 짓게 만든 펀드는 바로 ‘시스템트레이딩펀드’다. B씨가 가입한 시스템트레이딩펀드는 펀드매니저의 자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미리 설정해 놓은 다양한 원칙의 공식에 따라 주식과 선물을 기계적으로 사고팔아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다. 주식시장의 변화에 따라 순간적으로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매수·매도 주문을 내도록 설계된 시스템트레이딩펀드는 인간의 감정과 감(感)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객관적으로 검증된 매매규칙에 따라 운용된다.
B씨가 가입한 시스템트레이딩펀드는 8월 1일부터 8월 24일까지 14%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 기간의 코스피 지수는 2160선에서 1740선으로 떨어져 마이너스 20%의 하락률을 보였다. 특히 이런 시스템트레이딩펀드는 인덱스펀드, ETF가 주식시장의 등락과 함께 움직이는 걸 벤치마크로 삼는 것과 달리 주식시장의 등락과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게 목표다.
일반 주식형 펀드는 펀드매니저가 주식시장 시황을 분석하고,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사고팔아 펀드를 운용하는 구조다. 반면 시스템트레이딩펀드는 파생상품이나 차익거래 등 컴퓨터를 통해 자동적으로 운용되는 프로그램 매매로 펀드 수익률 변동위험을 최소화했다. 보통 연 10% 내외의 꾸준한 수익을 추구하고 있으며,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다. 주식시장 현물과 주식선물의 가격 차이가 벌어질 때 저평가된 쪽을 매수하면서 동시에 고평가된 쪽을 매도해 수익을 거두는 ‘차익거래기법’, 동일 업종의 주식 중 고평가된 주식을 매도하고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하는 ‘롱숏(Long-Short)전략’ 등이 가장 대표적 시스템트레이딩 전략이다. 줄어들지 않는 변동성,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성의 시대에는 인덱스펀드, ETF, 시스템트레이딩펀드 등과 같이 사람의 주관성을 배제한 냉철한 투자방식을 선호하는 투자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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