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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의약품 유통 전문 지오영의 이희구 회장

CEO 의약품 유통 전문 지오영의 이희구 회장


2009년 골드먼삭스도 투자…내년 코스닥 상장 예정

‘돈도 없고 스펙도 없다. 성공하고 싶다면 6개월만 미쳐라. 반드시 인생이 바뀐다.’ 국내 1위 의약품 유통업체이자 16개 제약회사를 거느린 이희구(61) 지오영 회장이 3월에 출간한 『성공을 쫓지 말고 성공을 리드하라』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2002년 8월 출범한 후 9년 만에 16개 계열사를 두고 매출 2조원을 눈앞에 둔 기업을 일군 비결이 아닐까.



동생 뒷바라지 위해 무작정 상경동부약품·가야약품·청십사약품 등 16개 회사를 거느린 지오영은 현재 250여 개 국내 제약사와 50여 개 글로벌 제약사의 의약품을 전국 1만여 병원과 약국에 공급하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의약품 도매유통시장 규모는 대략 9조원. 지오영과 더불어 백세약품, 동원약품, 복산약품 등이 국내 제약유통의 ‘빅4’로 꼽힌다. 이들은 대부분 의약품 제조와 유통을 병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오영의 지난해 매출은 1조8795억원으로 시장점유율 22%로 단연 1위다. 이어 초당약품을 포함해 12개 제약회사를 갖고 있는 백제약품의 매출이 7700억원이다. 제약업계와 의약품 유통업계에서 처음으로 매출 2조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지오영의 올해 매출 목표는 2조1000억원).

무일푼으로 상경해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 2조원대 기업을 일군 이희구 회장을 9월 21일 서울 문래동 지오영 본사에서 만났다. 그의 시작은 초라했다. 그는 1974년 대학 졸업 후 경남 거창에 있는 혜성여자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교사 생활을 그만뒀다. 장남이라 동생들을 돌봐야 했는데 교사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짐을 꾸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이 회장은 “나는 요즘 말하는 스펙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제약사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약품 계열사인 아세아양행에 들어갔다. 간신히 직장을 구했지만 연수성적과 영업실적은 꼴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구멍가게 앞을 지나다 청소용 타월이 눈에 띄었다. 이거다 싶었다. 그날 이후 자신의 영업구역인 서울 관악구에 있는 150여 개 약국 가운데 하루에 40~50곳을 찾아갔다. 아무 말 없이 약국 진열대와 창문을 닦기 시작했다. 두 달간 청소를 하자 처음엔 귀찮아했던 약사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두 달 만에 하루 평균 약국 2~3개씩 새로 거래를 텄다. 먼저 약을 사겠다는 약국도 생겼다. 6개월 만에 전국 영업사원 300여 명 중 최고 실적을 올렸다. 입사 3년 만에 서울 영업소장 직을 맡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던 그와 다르게 회사는 흔들리고 있었다. 자금 압박과 신약개발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하면서다. 그래서 이 회장은 1978년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웅제약은 품질이 좋고 인지도가 높아 영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두 달 만에 월매출 10억원을 올렸다. 전국 1위의 매출을 기록했다. 덕분에 33세에 국내 최연소 영업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세일즈왕에 오른 비결을 묻자 “사람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에서 남부사무소장으로 지낼 때였다. 매달 판매목표는 달성했지만 수금이 어려웠다. 7~8개월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계속되는 미수금에 고민하다 이 회장은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꽃게작전’이었다. 그는 이른 새벽 수산물시장에 가서 꽃게를 샀다. 그걸 3~4개씩 묶어 7명의 팀원에게 나눠주고 새벽에 미수금이 있는 약사의 집을 찾아가도록 했다. “생각이 나서 샀다”는 말과 함께 꽃게를 전달했다. 계속되는 방문에 처음에는 의아스러워했지만 결국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구나”라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그 후 밀렸던 미수금을 모두 받았다. 이 회장은 “비즈니스 상대도 이성처럼 틈날 때마다 생각하고 탐구해야 한다”며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이성 사귀듯 생각하고 탐구하라”국내 최연소 영업본부장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1982년 퇴직금과 아파트를 팔아 마련한 8000여만원으로 인천에 있는 동부약품을 인수하며 사업가의 길을 내디뎠다. 그는 순수 의약품 유통업체를 만들 목표를 세웠다. 당시 주위 사람들은 극구 만류했다. 스위스계 의약품 유통업체인 쥴릭파마를 비롯해 막강한 외국 유통업체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업에서 배운 노하우를 십분 활용했다. 예전에 영업했던 관악구 지역의 약국을 먼저 공략했다. 약사들과 맺은 친분을 이용해 약을 공급했다. 모르는 지역은 처음 영업을 시작했을 때처럼 약국을 찾아다녔다. 6개월을 열심히 뛰었다. 제2의 사업가의 길은 순조로웠다. 그사이 모은 돈으로 1년 후 대신약품을 인수했다. 그렇게 1년에 하나씩 작은 제약회사를 인수했다. 이 회장은 “지난 30여 년 동안 나와 제약회사는 함께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기반을 넓혀가면서 2002년 애초 목표였던 국내 순수 의약품 유통업체인 지오영을 설립했다.

지오영은 인천에 물류와 배송 등 고품질의 서비스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물류센터를 만들었다. 건축면적 7179m², 연면적 2만1373m²에 달한다. 국내 최대 규모다. 시간당 600개 약국의 주문에 대응할 수 있는 운용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배송차량 40대가 동시에 배달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의약품을 유통해 약국과 병원의 재고관리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약품 유통업계에서 뿌리를 내리자 2009년에는 골드먼삭스가 400억원을 투자했다. 내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할 예정이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지오영이지만 이 회장에게도 고민이 있다. 바로 국내 의약품 시장 확대다. 현재 국내 순수 제약회사는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글로벌 제약회사다. 이 회장은 “의약품 유통업이 외국 회사에 넘어가면 외국산 의약품이 밀물처럼 들어와 국내 제약산업의 기반이 무너진다”며 “동남아시아 국가처럼 자국산 약이 없으면 비싼 외국산 약을 쓸 수밖에 없어 국민의 부담이 늘게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길 계획이다. 1만 개가 넘는 약에 전국 6만여 고객을 맡을 실력이 있다면 누구든 후보가 될 수 있다. 지오영에는 그의 자녀를 비롯해 친인척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는 “실력도 없는데 회장 자녀라고 회사를 맡으면 그동안 지오영이 이룩한 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어릴 때부터 교육시켰던 만큼 집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희 이코노미스트 기자 bob28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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