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 은행도 할 말은 있다] “미국 월가에 빗대 ‘탐욕’ 비난은 억울”
[Hot Issue : 은행도 할 말은 있다] “미국 월가에 빗대 ‘탐욕’ 비난은 억울”
10월 6일 이명박 대통령은 KB·신한·우리·하나·산은 등 5대 금융지주 회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이 대통령은 회장들에게 “미국 월가 시위를 보다시피 위기일수록 사회적 약자의 불만이 많을 수 있으니 우리나라 금융도 이를 아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계의 탐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우리도 탐욕을 배제하고 배려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일주일 뒤 금융위원회 김석동 위원장은 금융권의 고배당이나 높은 성과급 지급 등에 대해 “과도한 탐욕과 도덕적 해이를 버려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우리나라 금융회사는 16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넣어 살린 만큼 금융권 스스로 답을 내야 하고 모른다면 금융권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은행권 탐욕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동안 금융소비자들은 금융회사의 자기 배 불리기를 비난해 왔다. 비판의 대상은 금융권의 임금·수수료·배당·이자놀이 등 속칭 ‘탐욕 4종 세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은행들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뱅커들의 속내에는 “억울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미국의 반금융권 시위는 급여가 높은 투자은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상업은행과는 거리가 있다”며 “국내에서는 시중은행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외국인들 배당 보고 국내은행에 투자”가장 큰 비판 대상이 됐던 수수료 문제에 대해 반박해 오던 은행권은 일단 ‘인하’로 방향을 틀었다. 김석동 위원장이 “당국이 직접 제어하진 않겠다”면서도 “스스로 들여다볼 때가 됐다”고 지적했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높은 수수료 부과에 대해 은행들은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국민이 주는 수수료와 이자로 사는 은행이니 어려울 때는 도와야 한다고 본다”며 “선제로 수수료를 낮췄지만 더 할 게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8월과 9월 수수료를 낮춰 시중은행 중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을 이용한 송금·인출 수수료가 가장 낮다. 우리은행은 현금 인출 수수료가 영업시간에는 700원, 영업시간이 지나면 800원이다. 반면 국민은행은 영업시간 전후에 따라 800원과 1000원, 신한·하나은행은 각각 1000원과 12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이들 은행이 우리은행 수준으로 수수료를 낮춘다면 100~400원 정도 수수료가 내려간다.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수수료 인하를 위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서민에 대한 수수료를 대폭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영업시간 내외 ATM 인출·송금 수수료, ATM 현금 2회 이상 인출 수수료, 65세 이상 노인· 차상위계층· 소년소녀가장 등의 수수료 인하 또는 면제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수수료 면제 항목이 제한적인 데다 일부 은행의 경우 인하 폭이 작아 은행이 부담하는 규모는 미미하다는 여론은 여전하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은행이 수수료를 서비스 개념이 아닌 수익 기반으로 여기는 측면이 있어 서민부담을 경감시키는 실질적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배당 문제에 대해선 은행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주요 은행의 배당성향이 일반 상장회사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의 배당성향 평균은 25.6%로 상장회사의 평균치보다 10%포인트 높다. 은행권은 일단 자성 모드다. 한동우 신한지주 회장은 “배당보다 내부 유보금을 늘리고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겠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우리금융 배당 규모는 회사의 지침에 따라 결정되지만 경영진은 배당을 많이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우선 “주주 배당을 줄이라고 한다면 누가 은행에 투자하겠느냐”는 하소연이 나온다. A지주회사 고위 관계자는 “투자자의 대부분이 외국인인데 이들은 다른 나라 금융회사보다 많은 배당을 바라고 국내에 투자한다”며 “배당하지 않거나 축소한다면 투자자들을 떠나라고 밀어내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자 장사’에 대한 비난에도 은행권은 할 말이 많다. 국내 18개 은행이 올 상반기 사상 최대인 9조9000억원의 이익을 봤다. 이 중 80%가 예대마진이다. 상반기 예대마진이 가장 높은 은행은 한국씨티은행(4.07%)이었고 기업은행이 3.67%로 뒤를 이었다. 외환은행과 우리은행 등도 3%를 넘어섰다. 언론과 시민단체는 이를 “앉아서 고스란히 벌어들이는 돈”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과도한 예대마진을 통해 이익을 내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얘기다. 국내 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예대마진이 2009년 2.44%를 기록한 이후 작년 2.35%, 올해 1분기 2.14%, 2분기 2.08%로 감소 추세라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 여신제도부 유윤상 부장은 “예금금리가 대출금리만큼 오르지 않은 건 예금은 고정금리, 대출은 변동금리가 각각 적용되기 때문이며 고의로 마진을 확대한 건 아니다”고 반박했다.
“예대마진 갈수록 줄어들어”마지막으로 높은 임금이다. 수차례에 걸쳐 대규모 공적자금을 받은 곳으로는 은행권이 유일한 데다 국내 임금근로자 평균(3408만원)보다 2배 가까운 연봉을 지급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직원 5000명 이상 대기업의 임금인상률이 5.2%에 달했지만 은행들은 임금을 동결했고, 2009년에도 임금 인상을 반납하거나 삭감하는 등 범국민적인 고통 분담에 동참했다고 주장한다. 은행원들의 평균 임금은 5575만원으로 증권 6831만원, 보험 5617만원, 대기업 7648만원보다 훨씬 적다고 반박했다. 은행연합회 유 부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근 3년간 임금 동결과 반납·삭감 등을 통해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고통 분담에 앞장섰다”고 주장했다. 은행연합회의 이런 항변에도 시장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위기 때마다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아남은 은행이 손쉽게 돈벌이를 하면서 그들만의 돈잔치를 벌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은행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국금융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인터넷 게시판에 가보면 ‘총파업 하자’ ‘4% 인상에 합의한 노조는 반성하라’ ‘깎인 임금 원상 복귀해 달라’는 글로 넘쳐난다. 왜 여론이 금융권과 은행에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내는지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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