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부품소재업계 M & A 시동 걸다
Business 부품소재업계 M & A 시동 걸다
경북 대구에 있는 부품업체 A사. 1997년 창업한 이 회사는 14년 동안 반도체 칩을 생산했다. 지금도 330㎡ 규모의 낡은 공장에서 월 1만여개 칩을 만든다. 홍콩에 수출도 한다. 생산하는 칩의 종류는 10여 종. TV·MP3·휴대전화 등 대부분의 전자제품에 들어간다. 그러나 A사 대표는 걱정도, 불만도 많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많은 영업이익을 남길 수 없어서다. 연구개발(R & D)을 통해 핵심기술력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
이런 이유로 A사는 단품을 대규모로 생산해 제조원가를 낮추고 싶어한다. 여기서 남은 돈을 R & D에 투입하는 게 목표다. 그런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대량생산을 위해선 인수합병(M & A)밖에 답이 없지만 쉽지 않다. 자금이 있어도 좋은 매물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힘들다. M & A전문가에게 의뢰하면 고가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A사 대표는 “많은 경제전문가가 부품소재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M & A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부품소재산업은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뿌리’다. 지난해 수출액은 2290억 달러. 전체 수출액의 49.1%에 이른다. 세계경제가 침체에 다시 빠진 올해 실적도 눈부시다. 올 3분기까지 무역흑자만 641억 달러를 올렸다. 3분기 누적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성장 가능성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지식경제부 이승우 부품소재 총괄과장은 “국내 부품소재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2020년이면 5.8%로 늘어나 홍콩·일본을 제치고 중국·미국·독일에 이어 세계 4위로 도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9년 세계시장 점유율은 4.8%로 세계 6위였다.
핵심기술력 갖추려 해당기업 인수부품소재산업은 한계도 뚜렷하다. 국내 부품소재기업은 대부분 영세하다. 50인 미만의 소기업이 전체의 86%다. 이런 영세부품업체들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연명한다. A사처럼 대량생산을 통해 제조원가를 낮추기 힘든 구조다. 핵심기술력도 부족하다. 지경부의 해외 부품소재 M & A 지원사업 주관기관인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KITIA) 신순식 상근부회장은 “우리의 부품소재 기술경쟁력은 선진국의 80% 수준에 불과하다”며 “특히 소재산업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의 자료를 보면 리튬 2차 전지용 양극화물질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발광소재의 기술력은 선진국의 60% 수준이다. 디스플레이·반도체의 핵심소재로 쓰이는 TAC필름·액정의 99.5%, 80.1%는 일본에서 수입한다. 부품소재산업의 무역흑자가 해마다 늘어나도 대일무역 역조현상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지난해 한국은 대일부품소재 무역에서 243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지난 10년간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1677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의 거센 추격도 문제다. 우리는 대중국 부품소재 수출로 일본에서 기록한 적자를 만회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대중 부품소재 무역에서 49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이 범용 부품소재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어서다. 한국으로선 ‘넛 크래커’(Nut-Cracker·선진국에는 기술·품질 경쟁에서 밀리고, 개도국에는 가격경쟁에서 밀리는 현상)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김영진 M & A연구소 대표는 “부품소재기업들이 지금처럼 단품 또는 소량 위주로 생산해서는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며 “특히 소재 부문은 장기간 연구개발이 필요한 만큼 M & A를 통한 대형화·전문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선진국은 M & A를 발판으로 부품소재산업을 키웠다. 금융시장이 발달한 미국·유럽의 경우 IB 및 M & A전문가를 통해 부품소재업체의 M & A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은 각 지역상공회의소가 M & A센터·레코프(M & A컨설팅업체)·일본정책투자은행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M & A 중개기능을 한다. 중국은 중화전국공상연합회 M & A공회·상하이지식교역소 등 공공기관이 M & A를 유도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주력사업팀장은 “국내 부품소재업체들의 M & A가 부진한 이유는 전문중개기관의 부재에 있다”며 “국내외 M & A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정책도 절실하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부품소재업계에 청신호가 울린다. KITIA가 2007년 신설한 부품소재 대형화·전문화 전문기구 ‘M & A데스크’가 요즘 들어 성과를 내고 있다. M & A데스크의 역할은 M & A를 원하는 부품소재기업에 매물정보를 제공하거나 재무적 투자자를 연결하는 것이다. KITIA의 M & A데스크는 현재 전세계 M & A 전문 중개기관 97곳과 협의체를 구성했다. 이 중에는 국내 회계법인·증권사·재무자문사 22곳이 포함돼 있다. 이를 발판으로 일본·유럽의 M & A 유망 매물기업 80곳을 발굴해 국내기업 17곳과 M & A 비밀유지계약서를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KITIA 한원철 차장은 “M & A 절차가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업체명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일본 자동차 금형회사, 유럽의 발광다이오드(LED) 형광체 제조기업 등 매물기업의 종류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부품소재업체들의 활발한 M & A는 긍정적 효과를 창출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해외 선진기술을 쉽게 획득할 수 있다. 세계시장 진출의 거점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다. KITIA 박원정 과장은 “해외기업 M & A로 이미 상용화됐거나 상용화할 기술을 습득하면 트렌드를 이끌 수 있는 제품생산이 가능하다”며 “그러면 세계시장 선점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국내 중소 부품소재업체 CEO의 도전정신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나치게 리스크를 따지다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다. 신순식 부회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기술력을 보유한 해외기업을 M & A하고 싶다면 핵심기술력 보유 여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된다. M & A를 통해 세계시장을 개척하길 원한다면 현지 바이어와 네트워크가 좋은 기업을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국내 중소 부품소재업체 CEO들은 기술력도 있고, 네트워크도 훌륭하고, 게다가 재무 건전성까지 뛰어난 매물기업만 찾는다. 욕심이다.” 그는 “M & A의 원칙은 한가지 타깃을 두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뚜렷한 목표 정한후 인수기업 찾아야중소부품업체 M & A를 위한 정부의 끊임없는 지원과 관심도 필요하다. 정부 M & A지원책의 수혜를 입은 곳은 대부분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지경부는 “정부의 적극적인 부품소재기업 대형화·전문화 정책으로 국내 일부기업이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했다”면서 LG화학과 현대모비스를 그 사례로 꼽았다. 두 회사는 올 5월 미국의 유력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가 선정하는 세계 10대 자동차 부품회사에 올랐다. 하지만 각종 경비부담 탓에 M & A를 포기하는 중소 부품소재업체는 여전히 많다. 신 부회장은 “정부가 육성하는 기술을 보유한 중소 부품소재업체가 M & A를 진행할 때는 정부지원을 통해 법률심사·회계심사·컨설팅 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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