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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대 그룹 승부수] SK그룹 - 하이닉스 발판으로 ‘SK 4.0 시대’ 연다

[2012 10대 그룹 승부수] SK그룹 - 하이닉스 발판으로 ‘SK 4.0 시대’ 연다

지난해 12월 20일 오전 8시. 최태원(52) SK그룹 회장이 서울 서린동 본사에 출근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출근이었지만 SK 임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최 회장은 바로 전날 밤 늦게까지 검찰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 도착한 직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을 보고받았다. 관련 임원을 불러 북한에서 발생할 만한 돌발변수를 체크했다.

이틀 후인 12월 22일 최 회장은 경기도 이천의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지난해 11월 인수가 확정된 뒤 처음이었다. 검찰의 최 회장 수사로 하이닉스의 경영 정상화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가 나오던 때였다. 최 회장이 하이닉스를 직접 방문한 이유는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대기업 총수가 검찰수사를 받을 때 현안을 챙기는 일은 드물다. 최 회장의 고민과 위기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흑룡의 해가 밝았지만 비상을 꿈꾸던 SK는 위기를 맞고 있다. 회삿돈 횡령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은 SK그룹의 오너 형제 최 회장과 최재원 그룹 수석부회장은 각각 불구속 기소, 구속기소됐다. SK그룹에는 비상등이 커졌다. 검찰 수사가 겹쳐 신규 투자규모를 1월 5일에야 발표했다.



2012년 우울한 출발SK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19조1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배 이상 많다. 예상을 뛰어넘는 막대한 투자로 명예회복에 나섰지만 SK그룹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CEO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서다. 불구속 기소된 최 회장은 경영보다는 공판참석과 재판준비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오너만이 기업의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거나 구체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렇다고 SK그룹 분위기가 완전히 침체한 것은 아니다. 최 회장의 불구속 기소로 회사 임직원이 다소 위축된 건 사실이지만 ‘경영환경이 좋지 않았던 2011년에도 좋은 실적을 냈다’는 말도 나온다. SK그룹은 지난해 연이은 악재에 시달렸다. 2011년 4월 최 회장의 대규모 선물투자손실이 알려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SK와 SK텔레콤은 11월 국세청의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SK그룹은 지난해 매출 120조원, 영업이익 7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 최대 실적으로 2010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00조원, 5조원이었다.

구체적인 전략을 확정하진 않았지만 SK그룹은 지난해부터 ‘SK 4.0 시대’의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SK 1.0은 섬유, 2.0은 정유, 3.0은 이동통신사업이 주력이었다면 SK 4.0 시대의 핵심은 반도체다. 그룹 관계자는 “1980년대 유공, 1990년대 한국이동통신에 이어 하이닉스 인수에 성공한 SK는 제3의 도약을 꿈꿀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SK그룹의 반도체사업은 이동통신 이후 최대 프로젝트다. 최 회장의 선친 최종현 회장이 이루지 못한 꿈이기도 하다. 최종현 회장은 1978년 4월 금성사(현 LG전자)에 이어 반도체사업 진출을 선언하고 그해 10월 선경반도체를 세웠다. 그러나 뜻밖의 변수가 터졌다. 1979년 발생한 ‘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해 국내외 경제가 침체했다. 반도체 생산설비를 해외에서 도입할 여력이 없어진 선경반도체는 1981년 7월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해산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SK그룹은 올해 신규투자액 가운데 절반 이상인 10조원을 하이닉스반도체 신규라인과 차세대 이동통신 인프라 확충에 쓰기로 했다.



2차 전지와 태양광 사업 주목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하이닉스 인수가 2012년 SK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SK그룹은 통신과 정유산업에서 국내 1위를 달리면서도 ‘내수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하이닉스 인수로 SK그룹은 수출주도형 기업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커졌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스마트폰을 직접 생산할 수 있어 애플식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수 한화증권 연구원은 “SK텔레콤은 하이닉스 인수로 규제가 심한 통신사업에서 벗어나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물론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강지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는 단기적으로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양사의 중장기 전략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SK그룹에 득보다 실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부정적 전망을 의식한 듯 최 회장은 지난해 12월 하이닉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SK 회장으로서 하이닉스를 반드시 성공시켜 그룹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만들겠다”며 “하이닉스가 SK그룹의 식구가 되는 것은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SK에도 기회이자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SK 4.0 시대의 또 다른 핵심은 2차 전지와 태양광 사업이다. 국내 최초 정유·석유화학기업인 SK이노베이션은 회사의 신성장동력인 ‘2차 전지’를 올해부터 생산한다. 생산기지는 올해 완공하는 2차 전지 충남 서산공장이다.

현재 전기차 1만대 분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200㎿h 규모의 1단계 공장은 시운전에 들어갔다. 올 연말까지 300㎿h 규모의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서산공장이 완공되면 SK이노베이션 글로벌테크놀로지(배터리 기술개발)·충북 증평의 LiBS(리튬이온전지 분리막) 생산라인과 연계돼 연구개발(R&D)~소재~생산을 아우르는 ‘삼각벨트’가 형성된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2차 전지 생산기술력을 갖춘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종합에너지회사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이제 석유나 화학제품 판매만으로는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다”며 “보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생산효율성을 높이는 기술, 미래를 주도할 기술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내 1위 PET필름 제조업체 SKC는 올해 고부가가치 제품인 태양광·열수축 필름제품 생산과 수출에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지난해 일괄생산체제를 구축한 태양광사업은 SKC의 전략사업 중 하나다. 박장석 SKC 사장은 신년사에서 “올해는 핵심사업의 질적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며 “신규 필름 사업화와 신규화학사업 발굴로 새로운 성장엔진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지금 ‘위기 속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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