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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 (5) 현장 중시 -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 (5) 현장 중시 -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정조 ‘어제는 도성 안의 크고 작은 상인들을 창덕궁 선정문(宣政門) 앞에 모두 모이게 하고, 그리로 가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전황(錢荒:화폐유통량 부족 현상)과 물가는 어떻게 안정시켜야 할지, 세금을 걷고 금전을 빌려주는 정책은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지,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물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숨김없이 말하도록 하니 그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중에는 장기적으로 정책에 반영할 만한 말들과 당장 시행해도 좋을법한 생각이 많았습니다.’(정조8.3.20). 정책을 마련할 때에는 궁궐 안에서의 탁상공론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함을 다시금 확인했나이다.



불시에 점검해 긴장 불어넣어야

세종 훌륭하구나. 현장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과인 또한 전에 백성들의 구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현장 담당자의 의견에 따라 절차와 방식을 변경하여 큰 효과를 거둔 적이 있다(세종19.1.2). 소출량이 뛰어난 농부들에게 직접 물어 그 경험을 정리함으로써 농사법을 개량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세종10.7.13), 공법을 제정할 때도 법이 적용될 당사자인 백성들의 의견을 전국적으로 모두 수렴하여 법을 보완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세종12.8.10).



정조 하온데 전하, ‘임금이 일의 실상(實相)을 직접 살피고 일일이 현장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장을 잘 아는 이들을 불러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자들이 안일하게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거나, 책임을 모면하려 상황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사옵니다.’(홍재전서 권166).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옵니까.



세종 ‘우리는 궁중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민생의 고단함을 다 알지 못한다. 따라서 기회가 닿는 대로 백성들을 찾아 직접 묻고, 듣는 것이 좋다.’(세종10.12.20). “일전에 내가 심한 가뭄이 걱정되어 벼농사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자 평복에 내금위 군관 한 사람만 거느린 채 홍제원에 나간 적이 있었다. 황폐한 논을 보고 놀라서 농부들에게 작황을 물으니 하나같이 피 끓는 한숨만 내쉬었다. 그들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으나 눈물이 나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더욱 화가 났던 것은 그간 신하들이 올해 농사는 잘 되었다고 보고 했었기 때문이다. 궁궐에 돌아와 이를 질책하니, 지신사(知申事: 왕의 비서) 곽존중은 홍제원 땅이 원래 척박해서 그렇다고 했다. 확인하니 그 땅은 본시 비옥한 땅인데도 말이다.”(세종7.7.1). 그래, 너의 말처럼 현장 담당자들이 잘못된 보고를 올려도 임금은 그냥 모른 채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 이런 자들이 생겨났다면 이는 전적으로 임금이 부덕한 탓이니 우리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어쨌든 이런 행태를 단속하고 이것이 가져올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임금이 직접 현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자주 찾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불시에 찾아 점검함으로써 아래에서 올바로 실태를 보고하고 있는 지를 확인하고, 담당 관원들에게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 ‘임금이 직접 찾아갈 수 없는 먼 지역은 비밀리에 감찰과 어사를 파견하면 된다. 민생을 직접 살펴서 혹시라도 고을 수령의 탐욕스러운 행실로 고통 받는 백성은 없는지, 백성들이 굶주리고 헐벗어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도움을 못 받고 있지는 않은지를 모두 확인하여 임금에게 보고토록 해야 한다. 한갓 소문도, 임금에 대한 비판도, 정책에 대한 의견도, 백성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전하게 해야 한다.’(세종5.7.3).



정조 그런데 전하, “그런 감찰이나 어사(御史)는 파견하지 않을 수도 없으나, 자주 보내서도 안 되지 않겠습니까. 어사가 모함에 휘둘리면 자칫 좋은 관리가 파직될 우려가 있고, 어사가 제대로 민정을 살피지 못하면 오히려 상황이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홍재전서 권170). 또한 임금이 수령을 믿지 못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사옵니다.



세종 너의 말이 옳다. 수령과 관리들에 대한 임금의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자주 보내는 건 좋지 않다. 다만 그들에게 긴장감을 유발시킬 수 있는 정도만 되면 될 것이다. 또한 감찰이나 어사로는 자질이 검증된 사람을 보내야 한다.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보아, 통찰력과 재능이 뛰어나며 특히 강직하고 바른 말을 함에 주저함이 없는 자들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정조 명심하겠나이다.



임금에게 직접 고하게 하라

세종 아울러 백성들이야 말로 곧 현장이고, 백성들의 삶이야말로 현장의 참된 모습이 아니겠느냐. 백성들이 자신의 상황을 직접 임금에게 호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정조 신문고나 격쟁(擊錚)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취지는 공감하오나, ‘백성들이 북이나 징을 쳐서 자신의 사정을 위에 알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든 것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하소연할 곳이 아무데도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남을 무고하거나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는 백성들이 나오고 있으며, 절차를 지키지 않고 사소한 일까지 중앙에 가져와 하소연함으로써 행정업무를 번거롭게 하고 있사옵니다.’(정조7.1.18).



세종 임금이 직접 찾아가 살펴줄 수 없다면, 최소한 그들이 내게 찾아와 숨김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통로를 열어둬야 하지 않겠느냐. 만약 “어떤 백성이 임금의 행렬 앞에 무작정 뛰어들어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자 한다면, 비록 그것이 위법한 행위더라도 그 백성에게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썼을 정도로 절박한 사정이 있음을 헤아리고, 행차를 멈추고 반드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군왕의 법도이다.”(세종26.5.5). 하물며 신문고나 격쟁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그런데 신하들 중에는 이 제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백성들이 제기한 민원을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 번거로워서도 있지만, 혹여 백성의 입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날까 두려워해서이다. 그리하여 “신문고를 함부로 치는 자에게 죄를 주라고 주장하곤 하는데, 이렇게 된다면 자신의 억울함을 아뢰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법이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는 사례가 생길 것이다.”(세종10.5.24).

따라서 거짓을 고하거나 남을 무고한 것이 아닌 이상,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다만 신문고를 두드리거나 격쟁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해당 지역의 수령과 감사에게 자신의 사정을 알려 판결을 받도록 한다면 너의 우려도 해소되지 않겠느냐? 수령과 감사, 혹은 사헌부에 자신의 억울함을 고했는데도 이를 살펴서 처리해주지 않았을 때, 그때는 지체 없이 임금 앞에 와서 자신의 사정을 고하게 하며, 아울러 백성들의 억울함을 처리해주지 않은 관리들은 법에 의거 엄중히 처벌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세종4.1.21).


정조 삼가, 하교를 받들어 대처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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