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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자연스런 은퇴자 공동체가 뜬다

[Retirement] 자연스런 은퇴자 공동체가 뜬다

노후에 ‘어디에서 누구와 살 것인가’는 인생 후반의 행복 여부를 가늠하는 여러 중요한 결정 중 하나다. 병원을 포함해 각종 편의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사는 게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꼭 챙겨야 할 건 주변 사람들과 교류다. 은퇴 이전에는 각종 모임이 많아 자신이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지만 은퇴 이후에는 이런 네트워크가 약해질 수밖에 없어 자칫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심리적 고독감은 노후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이 된다.

고령자의 신체적·정신적 요구에 맞도록 여가·의료시설을 두루 갖춘 ‘지속적인 케어 커뮤니티(CCRC: 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 개념의 실버타운이 노후 주거의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시설을 이용할 만한 경제력이 없거나 그럴 의향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비싼 주거비도 부담이지만 친구와 가족 곁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노후 주거 시설이에 따라 이런 시설화(Institutionalization)의 대안으로서 ‘자기 집에서 살기(Aging in place)’가 유행하고 있다. 2010년 미국 은퇴자협회(AARP)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지금까지 살던 집에서 가능한 오래 살기를 강하게 원했다. 67%는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오래 남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국토연구원 자료(2007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들은 노후 희망 주거 형태로 76.1%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꼽았다. 익숙한 곳에서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는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아파트와 같은 주거형태는 자칫 사람들과 교류가 줄어들 문제점이 있다. 다른 사람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노후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주거 대안이 필요하다.

노후의 주거 대안으로 관심을 모으는 게 바로 ‘자연발생 은퇴자 공동체(NORC)’이다. 1980년대 중반 위스콘신대 마이클 헌트라는 사회학자는 ‘NORC’라는 새로운 현상을 규명했다. 고령자들이 자연스럽게 어떤 지역에 모여 사는 현상이다. 서로 가까이 사는 다수의 고령자가 일종의 특별 ‘은퇴자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분담하고 갖가지 사회활동에 서로를 끌어들인다. 겉모습은 인위적으로 만든 실버타운과 꽤 많이 닮았다. 그러나 계획적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공동체가 NORC라는 기준은 없다. 건물이 될 수도 있고 한 도시 전체가 되기도 한다. 헌트 교수는 NORC가 형성되는 3가지 일반적인 방식을 설명했다. 첫째, 경제 또는 인구통계적인 요인으로 청년층이 떠나고 고령자들만 남는 방식이다. 둘째, 기존에 정착한 고령자층이 지속적으로 거주하며 그 숫자가 불어나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거주 목적으로 새로 전입한 고령자들이 주를 이루는 방식이다.

1896년 미국 뉴욕시는 펜사우스 코압 아파트에 있는 NORC를 대상으로 통합프로그램을 처음 실시했다. 당시 펜사우스 아파트 단지의 주민 2800명 중 65세 이상자가 75%를 차지했다. 대다수 NORC와 마찬가지로 비영리단체를 꾸려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펜사우스 고령자 프로그램은 그 뒤 고령자의 욕구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자원봉사자, 의료서비스 제공자, 정부기관의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 운용자와 더불어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작업을 착수했다. 이 모델의 강점은 새로운 시설이나 인프라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기존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기만 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펜사우스 코압의 입주 대기자 명단이 6000명에 달한다. 이 모델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마을회관 개조한 김제시 사례도 미국 뉴욕시에는 40~50여개의 NORC가 운용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고령자 지원활동을 운영하는 다양한 모델이 뿌리내리고 있다. 도로트라는 비영리 단체는 수십 년 동안 정기적인 가정방문, 병원호송, 교육, 고령자 대상의 물품 배달을 주선해왔다. 로스앤젤레스의 파크 라 브레아 아파트의 사례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 비영리단체가 아파트 단지 운영위원회와 협력해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셔틀차량 운행, 주택개조 알선, 식사 배달과 카운슬링 추천, 핫라인 전화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주민 스스로가 자원봉사자로 나서 프로그램 중 일상적인 작업의 상당 부분을 떠맡게 되면서 NORC 회원들이 주인인식을 갖게 됐다.

NORC 사례는 미국의 특정 사례이지만 그 개념은 보편적이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비공식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 데 도시에 비해 고령화가 진전된 농촌에서 이미 시작됐다. 이른바 ‘그룹 홈(Group Home)’이다. 65세 이상이 전체 주민의 20%가 넘는 전북 김제시에 그룹 홈이 90여개나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이는 마을에 사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동생활 시설이다.

2006년 김제시가 마을회관을 개조해 주방용품과 가전제품, 침구류 등을 들여놓고 공동 숙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한 달에 두세 차례 보건소 의료진들이 방문해 그룹 홈 거주자의 건강검진과 진료 등을 해준다. 이들 거주자들은 마을에 각자의 집이 있지만 가끔 집을 돌보거나 쌀과 김치 등 먹을거리를 가지러 갈 때를 빼면 거의 이곳에서 함께 생활한다. 웬만한 가정집보다 시설이 나아 편안하고 가족 같은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즐거움과 슬픔을 나눌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이런 실험이 성공한다면 서울과 같이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도 새로운 주거대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 실버타운에 가지 않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행복한 은퇴자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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