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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ty : Rio de Janeiro] 나의 뿌리를 찾아서

[The City : Rio de Janeiro] 나의 뿌리를 찾아서

나는 마레샤우 에르미스에서 자랐다. 1913년 이 지역을 건설한 브라질 대통령의 이름을 딴 작은 노동자 계급 주거지였다. 관광 안내책자에는 마레샤우가 나오지 않는다. 많은 카리오카(리우데자네이루 주민들의 별칭)가 보지 못한 또는 망각한 도시 지역을 상징한다. 마레샤우는 리우 최초의 계획지구 중 하나였다. 가로수가 나란히 늘어선 거리, 학교 건물, 영화관, 문화센터…. 웅장한 유럽 스타일 기차역은 시내로 연결된 가장 편한 통로였다. 이 동네는 그곳에 정착한 수많은 포르투갈 이민자들에게 ‘작은 포르투갈’로 알려졌다.

수년간 방치되고 불경기를 겪으면서 마레샤우는 꾀죄죄한 도시 북부의 여느 무너져가는 동네와 다름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가장 정겨운 기억 일부를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 숲속에서 구아바와 망고를 따고, 자갈 깔린 거리에서 놀고, 사촌이나 친구들과 연을 날렸다.

지금은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영화감독으로 성공해 뉴욕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아내 이사벨라도 브라질 사람이지만 아이들은 미국 출생이다. 따라서 우리 부부는 문화적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이들에게 포르투갈어를 가르치고 해마다 리우를 방문한다. 그리고 이파네마에서 휴가를 보낸다. 고급스러운 아파트, 모자이크 보도, 세련된 상점들, 카리오카 귀공자들이 즐겨 찾는 근사한 바와 음식점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파네마를 보고 이 도시에 반한다. 역동적이고 유행을 앞서가는 국제적인 이파네마는 리우(어쩌면 브라질)의 정수다. 아이들은 우리 숙소 앞에서 몇 분 걸어가면 나오는 바닷가에서 놀 때 가장 행복해한다.

어머니가 지난해 돌아가셨다(아버지는 14년 전에 작고하셨다). 우리와 리우를 잇는 끈이 약해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 내 추억 속 리우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맛보게 함으로써 그 유대를 다시 공고히 하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가기 싫다고 투덜대는 녀석들을 렌트한 밴에 억지로 태우고 마레샤우의 할머니 댁을 향해 출발했다. 부자 지역인 남부와 블루칼라 지역인 북부를 연결하는 혼잡한 간선도로를 따라 자동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아갔다. 아이들의 눈이 겁 먹은 다람쥐처럼 커졌다. 멋

들어진 호텔과 번쩍이던 쇼핑몰이 사라지고 대신 버려진 공장과 널리 뻗은 파벨라(빈민가)가 생겨났다.

한 시간 남짓 차를 달린 뒤 옛 동네의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네 거리에서 펼쳐지는 작은 카니발도, 기차역도 그대로였다. 지금은 낡고 우중충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근사해 보였다. 철도 밑의 터널을 통과해 영화관에 가곤 하던 일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줬다. 우리는 기차가 머리 위를 통과하는 시간에 맞춰 터널에 들어갔다. 기차가 굉음을 내며 지날 때 멈춰 서서 터널 벽의 흔들림을 느꼈다.

마침내 할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게 내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인 걸 보고는 왠지 안도감이 들었다. 단지 자갈길에만 아스팔트가 덮여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태어날 때부터 알고 지낸 옛 친구와 이웃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나와 아내에게는 가장 따뜻한 재회였지만 아이들은 따분해 했다.

아이들은 지친 기색으로 어서 빨리 이파네마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때 뭔가가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형형색색의 연 수십 개가 하늘에서 어지럽게 솟아올랐다가 곤두박질치곤 했다. 수소문한 끝에 30년 전의 동네 연 가게를 찾았다. 함께 쭈그리고 앉아 연을 띄울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내가 아직도 연 날리는 법을 기억할지 반신반의했다.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카리오카로서의 내 명예가 걸린 일이었다. 성패의 열쇠를 쥔 강풍이 불기만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슝 하고 연이 솟구쳤다. 그 모습을 아이들은 넋을 놓고 지켜봤다. 미국 태생의 내 카리오카들이 내 소시적 친구·친척들과 노는 모습을 지켜볼 동안 데자뷰가 찾아왔다. 내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을 공유하는 게 마치 모두 하나가 된 듯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종이와 끈 이상의 무엇, 바로 뿌리를 통해 모두 혼연일체가 된 듯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만 거기에 없었다.

[필자가 감독한 최신 영화로 ‘리오(Rio)’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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