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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마케팅 - 가격 파괴·중고품·렌털사업으로
소비자의 닫힌 지갑 연다

불황 마케팅 - 가격 파괴·중고품·렌털사업으로
소비자의 닫힌 지갑 연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0.4% 줄었다. 전분기 대비 민간소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9년 1분기 이후 11분기 만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세 번째다. 소비 부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물가는 높은데, 소득 개선은 더디다. 가계 빚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900조원이 넘는 가계 부채를 두고 활기찬 소비를 기대하기 어렵다.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도 급격히 불황형으로 변하고 있다. 실속형·알뜰형 가치소비가 늘고 있다. 기업들도 불황 마케팅에 돌입했다. 유통업계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 파괴’ 상품을 내놓고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50% 세일 상품이 연일 등장한다. 중고품 시장은 불황 속 호황이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중고품 거래가 눈에 띄게 늘고, 구매층도 다양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명품, 골프채 등 고가 제품을 취급하는 중고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사지 않고 빌려 쓰는 ‘렌털 비즈니스’가 주목 받는 것도 불황기의 특징이다. ‘불황기에는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실용성 강한 차선(플랜B) 상품을 고를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마케팅 법칙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최근 소비 트렌드와 기업의 불황 마케팅 현장을 취재했다.



반값 TV·50% 할인

명품도 흔해



백화점·대형마트 세일 경쟁

저가 브랜드 업체 공격적 마케팅 나서


2월 1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영업시작을 알리는 문이 열리자 기다리던 수십 명의 고객이 우르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이 향한 곳은 해외명품전이 열리고 있는 백화점 9층 이벤트 홀. 20대 딸과 함께 온 김진희(가명·51)씨는 장바구니를 들고 진열대를 훑었다. 그는 명품 브랜드인 에트로 가방 1개와 재킷 1개를 골랐다. 가방은 50% 할인된 70만원, 재킷은 30% 싼 36만원에 구입했다. 김씨는 “비싸서 사지 못했던 브랜드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냐”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매년 2월과 8월 두 차례 ‘에비뉴엘 해외 패션 대전’을 연다. 명품 브랜드를 싼값에 할인해 파는 특별 세일기간이다. 이번 이벤트는 2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진행됐다. 할인 폭은 예년보다 큰 30%에서 최대 70%였다. 이벤트에 참여한 브랜드는 지난해 40개에서 60개로 확대했고, 준비 물량은 30% 가량 늘렸다. 반응은 좋았다. 행사기간 동안 40억원어치가 팔려 지난해보다 60% 증가했다.



대형마트는 PB제품 확대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경기 불황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고가 브랜드 구입을 주저했던 고객이 많이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월 10일부터 3일간 명품 할인행사를 연 신세계 백화점(본점) 관계자는 “역대 최대 규모로 행사를 진행했는데 약 30억원어치가 팔려 지난해보다 20% 정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백화점 업계가 불황 파고를 넘기 위해 가격파괴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 침체로 소비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매출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백화점 매출은 5년 만에 성장세가 꺾였다. 주고객인 고소득층 소비가 부진한 게 원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4~5분위 소득계층 가계의 실질 소비지출은 2010년 하반기 이후 크게 위축됐다.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 가계의 소비 증가율은 2010년 3분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네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최근 백화점 업계가 30~50% 안팎의 파격 할인행사를 잇따라 여는 배경이다.

대형마트도 할인 경쟁이 치열하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중순 롯데마트가 선보인 ‘통큰 TV’다. 32인치 LCD TV를 49만9000원에 판매한 롯데마트는 출시 6개월 만에 1만대 가량을 팔았다. 국내 가전회사인 모뉴엘과 제휴해 12월 말 내놓은 ‘통큰 LED TV(49만9000원)’는 2시간 만에 모두 팔렸다. 이마트도 지난해 10월 대만 TPV가 제조한 ‘이마트 드림뷰 TV’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10~11월 1만대를 모두 팔았다.



가격파괴 전 업종으로 확산브랜드 제품보다 가격이 싼 자체상표(PB)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PB 마케팅 경쟁도 뜨겁다. 지난해 이마트 전체 판매 품목 중 PB 비중은 25%로 2006년 대비 8%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홈플러스는 18%에서 27%로, 롯데마트는 17%에서 25%로 증가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실속, 알뜰형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전체 매출액 중 PB가 차지하는 비율을 2년 내 40%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초저가 상품’이 진열대를 메우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는 지난해 선보인 ‘990원 야채’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990원짜리 품목을 가공식품, 생활용품 등 500여 종으로 확대했다. ‘미투(Me Too)’ 전략이 보편화된 대형마트 업계 관행으로 볼 때, 초저가 상품 경쟁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파괴 전략은 유통업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불황일수록 주목 받는 저가 브랜드들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저가를 내세워 틈새시장에 안착한 저가항공사들은 요즘 가격을 한계치까지 내리는 분위기다. 일부 저가항공사는 1월 설 직후부터 여름 휴가철 사이 비수기 항공권을 최대 70% 싼 가격에 내놨다.

제주항공은 3월 23일 이후 인천~나고야 노선을 왕복 9만9000원(세금·유류할증료 불포함)에 다녀올 수 있는 특가품을 내놨다. 원래는 17만원이었다. 티웨이항공은 2월 6일부터 3월24일까지 김포~제주노선 편도항공권을 주중 1만5000원, 주말 2만원에 이용할 수 있는 특판 항공권을 판매한다. 세금과 유류할증료를 포함하면 김포∼제주 왕복권이 6만2200원이다. 같은 구간 대한항공 편도 이용료 10만9000원보다 싸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저가항공사 이용객 수는 1052만 명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저가 화장품브랜드인 미샤는 공격적인 비교 광고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말 SK-Ⅱ 에센스 화장품 공병을 가져오는 고객에게 미샤 정품을 주는 마케팅을 펼쳤던 이 회사는 최근 수입화장품 에스티로더를 상대로 ‘에센스 제품 비교 품평을 제안한다’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가격은 싸지만 품질은 차이가 없다는 이미지를 소비자에 각인시키려는 노이즈 마케팅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격파괴·저가 마케팅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업종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한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존 국내 시장은 외국보다 제품 다양성이 부족해 반값 제품이 등장할 기회가 적었다”면서 “최근 국내에 불어 닥친 가격파괴 경쟁은 장기 불황에 직면해 나타난 새로운 시장 현상이자 기업의 차별화 전략”이라고 말했다.



실속파 겨냥한 중고

마케팅 열풍


국내 시장 10조원 규모 추정

쇼핑몰·대기업 등 뛰어들어


2월 20일 낮 2시.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400m 거리에 있는 헌책방은 책을 고르는 고객으로 붐볐다. 대형 서점에 비하면 초라한 660㎡(200평) 크기지만(광화문 교보문고는 8598㎡) 독서 열기는 뜨거웠다. 고객은 어린이부터, 중고생, 청년, 노인 등 다양했다. 족히 150명은 돼 보였다. 한 켠에는 중고책을 팔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 중고서점은 인터넷서점인 알라딘이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그 전에는 유명 나이트클럽이 있던 자리다. 먼지 풀풀 날리는 헌책방 개념을 바꿔, 깔끔하게 단장한 매장은 불황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책은 정가의 반값에 판다. 오래된 책은 더 싸게 판다. 요즘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는 TV 드라마의 원작 소설은 1만3000원짜리가 6900원이다. 소설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2900원에 판다. 이 날 서점을 찾은 한 30대 주부는 “올해 초등학교 들어가는 딸 아이 책을 사러 왔는데 값도 싸고 책 상태도 좋다”며 만족해 했다. 알라딘의 김성봉 마케팅팀장은 “기대 이상으로 고객 반응이 좋다”며 “불황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2011년 온·오프라인 합계 중고책 판매는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김 팀장은 “경쟁 온라인서점들도 오프라인 중고서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중고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명품, 스마트폰, 골프채 등 고가 중고 제품 거래가 늘고 예전에는 구매를 꺼리던 의류·화장품·가전제품 등도 중고 시장에서 잘 팔린다. 일부 대기업도 중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중고시장이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온라인을 제외한 중고시장은 약 4조원 규모였다.



중고품 구매 중장년층으로 확대중고시장 확대는 온라인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2008년 말 약 300만 명이던 네이버 인터넷카페 ‘중고나라’ 회원 수는 2010년 600만명을 넘었고, 올 2월 21일 현재 870만명에 달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중고나라를 자주 찾는 회원은 약 200만 명, 누적 방문자 수는 13억명을 넘었다”고 말했다. 2003년 개설된 이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중고품은 지난해만 3000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인터넷 쇼핑몰도 중고시장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오픈마켓 11번가에 따르면 지난 1월 중고품 거래액은 전년 동월 대비 50% 가량 늘었다. 11번가 관계자는 “중고품 거래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거래되는 상품도 IT(정보기술) 기기에서 의류, 가전제품, 서적, 명품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1번가는 이런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최근 ‘중고 스트리트’라는 중고품 전문관을 오픈했다.

온라인몰에서 중고품을 사고 파는 소비자의 연령도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션 관계자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 구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올 1월 연령대별 중고품 구매 현황에 따르면 40~50대는 전년 대비 20%, 60~70대는 30% 정도 늘었다.

최근에는 중고품 거래 전용 애플리케이션(앱)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중고품 앱은 번개장터, 오늘마켓, 헬로마켓, 코끼리중고장터, 니어바이, 다나와장터 등 20여 개에 달한다. 누적 다운로드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번개장터는 최근 월 20만~30만 건의 중고품 거래가 이뤄진다. 인터넷쇼핑몰과 달리 중계 수수료가 없어 알뜰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

중고차 시장은 불황 속 호황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차 이전등록 대수는 332만대였다. 전년 대비 18.4% 증가했다. 반면, 신차 등록은 159만대로 같은 기간 4.7% 늘었다. 중고차 등록대수가 신차 등록의 2배를 넘은 것은 국토부 집계 이후 처음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차량 교체주기가 짧아진 영향이 있지만, 장기 불황이 자동차 구매행태를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중고차 등록은 전년 대비 3.1% 증가했지만,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23%, 27% 늘었다.

올해 들어 판매가 다소 주춤한 중고차 업계는 소비 형태가 불황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고 경차나 소형차, 액화천연가스(LPG) 중고차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SK엔카, 카즈 등 중고차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대형·중형 가솔린 중고차 값은 떨어지고 경차와 LPG 차량 가격은 오르고 있다. SK엔카 관계자는 “고유가와 불황으로 소비 심리가 실용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이 커지면서 수입차 업계도 속속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토요타가 GS카넷과 손잡고 중고차 판매에 들어갔다. 양사는 한국토요타의 품질 검사를 거친 토요타 중고차를 GS카넷 직영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도 지난해 9월 스타클래스라는 중고차 인증판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크라이슬러코리아, BMW코리아 등도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고가 중고품 거래도 활발중고 스마트폰·명품·골프채 등을 취급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론칭한 중고 스마트폰 판매 사이트인 ‘T에코폰’의 거래량은 출범 첫 달 300대에서 지난 1월에는 2만대로 늘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T에코폰에 등록된 인기 중고모델은 대부분 10분 안에 판매된다”며 “등록 한 달 이내 판매되는 비율은 95% 정도”라고 말했다. 유명 휴대전화 거래사이트인 세티즌에서도 중고폰이 활발하게 거래된다. 이 사이트에서 거래된 중고폰은 지난 1월 한 달 동안 1만4000건이었다. 지난해는 월 평균 9500건이었다. 세티즌 관계자는 “2009년 7만7000건이던 거래 등록 건수는 2011년 12만 건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에서는 2010년 8월 출시된 아이폰4(16GB) 중고폰이 출고가의 절반인 40만원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갤럭시S2나 아이폰4 32GB는 등록 후 매달 6~9%씩 가격이 떨어진다.

시장 규모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고명품은 압구정동 일대에만 오프라인 전문 매장이 3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인기고, 골프메신저·골프프라이스 등 중고 골프채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도 갈수록 늘고 있다. 골프매신저에 따르면 국내 중고 골프채 시장은 연간 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헌 것도 아니고, 새 것도 아닌 ‘리퍼비시드’ 제품 판매가 늘어나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리퍼비시드는 초기 불량품이나, 소비자가 반품한 것, 진열됐던 제품을 신상품처럼 재정비해 판매하는 제품을 말한다. 최근에는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20~50%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LCD TV,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스마트폰, 고급 의류, 명품, 가구 등 리퍼비시드 마케팅을 확대하고 있다.



‘육아부터 가전까지’

렌털 비즈니스 부상



렌털업체만 2만4000여 곳

대형마트 가전제품 대여 사업 가세


냉랭한 소비시장을 반영하는 트렌드 중 하나가 렌털 비즈니스의 확산이다. 한국렌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렌털 전문업체는 2만5000개에 달한다. 협회 관계자는 “2007년 2조원 정도였던 렌털산업 규모가 최근에는 10조원 이상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렌털 품목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정수기나 의료기기, 사무기기 등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이 렌털 시장 주류를 이뤘다. 최근에는 가전제품, 의류, 육아욕품 등 실생활과 밀접한 품목이 늘고 있다. 특히 경제 사정이 어려워 목돈 마련이 힘든 새내기 직장인·청년층·신혼 부부를 겨냥한 마케팅이 주목 받고 있다.

자동차 장기 렌트와 가전제품 대여가 대표적이다. 자동차 장기 렌트는 불황과 고유가 시기를 맞아 실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AJ렌터카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 렌트를 한 개인고객은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자동차를 렌트하면 LPG 차량을 이용할 수 있어 연료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월 30만~40만원 정도면 차량 이용료, 수리비, 보험료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연간 2만km 이상을 주행하는 운전자라면 렌트로 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말한다. 3년을 탄다고 가정했을 때, 차종에 따라 300만~500만원까지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차를 구입해 3년 뒤 되파는 비용을 계산해서 나오는 금액이 그렇다. KT금호렌터카 관계자는 “예전에는 목돈이 없는 사람이 과시하기 위해 장기 렌트로 외제차를 타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자신이 매월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연료량까지 꼼꼼하게 따져 국산 자동차를 빌리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TV 홈쇼핑 업체들도 이 시장에 가세했다. 장기 렌트 상품은 요즘 홈쇼핑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CJ홈쇼핑 관계자는 “지난해 중순 첫 상품이 방송된 이후 매 방송마다 평균 2000건 이상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상품 중 상당수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장기 렌터카는 방송 할 때마다 꾸준히 팔린다”고 말했다.

가전제품 렌털도 마찬가지다. 그간 가전제품은 정수기나 공기청정기 정도만 대여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을 대여해 쓰는 고객이 늘고 있다.

대형 할인마트도 렌털 사업에 가세했다. 올 1월 이마트는 업계 최초로 가전제품 렌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매월 3만원 정도만 내면 80만원짜리 LCD TV를 내 것처럼 쓸 수 있다. 약정기간(3~4년) 동안은 애프터 서비스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한번에 목돈을 지출할 여력이 없는 신혼부부들이 많이 문의한다”고 말했다.



명품 대여로 구매 욕구 충족렌털업체를 가장 활발하게 이용하는 고객은 정보에 밝은 20~30대의 젊은 소비자다. 소비 욕구는 강한데, 경제력은 약해 대여를 통해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나경 연구원은 “최근 젊은 소비자들은 명품과 신제품에 대한 이용 욕구가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라며 “취업이 힘들고 경제난에 직면한 이들이 렌털을 통해 최대한 싸게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등장한 것이 명품 대여업체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해 지금은 수백 개의 업체가 있다. 주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운영되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갖춘 곳도 많다. 정가의 3~5% 가격으로 일주일 정도 대여가 가능하다. 모임이 많은 연말에는 두 달 전에 예약을 해야 대여가 가능할 정도로 이용객이 많다.

최근에는 일상복이나 정장, 한복, 신발 등 다양한 패션 전문 렌털업체이 늘고 있다. 취업 면접이나 관혼상제 때 입기 위한 정장 대여가 특히 많다고 한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양성순(남·23) 씨는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입기 위해 40만~50만원 하는 정장을 부모님께 사달라고 하기 부담스럽다”며 “졸업할 때쯤 되면 유행이 바뀌어 또 새 정장을 사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부들 사이에서는 육아비용을 줄이기 위해 대여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소비행태로 자리 잡았다. 육아용품이나 장난감, 동화책 등을 대여해주는 국내 업체는 300개 이상으로 늘었고, 오프라인 매장까지 갖추는 곳이 많아졌다. 이들 업체는 ‘실속 소비’를 강조한다. 유아용 장난감이나 동화책은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 유아용 보행기나 지지대 등은 2~3개월 밖에 못쓴다. 하지만 이들 제품 대부분이 10만~30만원 정도로 고가여서 선뜻 사기에는 부담스럽다. 이 같은 소비자의 고민을 대여업체가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배달에서 수거까지 업체가 모두 담당한다. 2개월 정도 대여하는데 보통 3만~4만원 정도다.

7살 딸과 3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주희(40·고양시 일산동) 주부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인터넷을 통해 장난감을 대여한다. 그는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무언가를 빌려서 아이에게 주는 것이 찜찜해 이용하지 않았지만 둘째는 갓난 아기 때부터 대여용품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며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부담스럽고 주변 엄마들이 많이 사용하니까 큰 거부감 없이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첫째 딸아이에겐 두 달에 한 번씩 동화책을 빌려 읽어준다. 책 정가의 20% 정도만 지불하면 수십 권짜리 전집 동화책을 2~3개월 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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