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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골목의 진화 - 톡톡 튀는 스토리로 번화가에 도전

옆골목의 진화 - 톡톡 튀는 스토리로 번화가에 도전



옆골목은 중심 상권에선 보이지 않는 골목이다. 평소 들르는 가게,자주 다니는 길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지역이다. 그런 공간에 번화가에서나 볼 수 있는 상권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다. 중심 상권보다 임대료가 싸기 때문에 새로 가게를 내려는 사람이 몰려서다. 이들은 제품과 함께 스토리를 팔아 번화가의 소비자를 끌어들인다. 이미 옆골목이라고 말 하기 무색하게 발전한 거리가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진화하는 골목도 있다.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패션·문화 중심지로 떠오른 옆골목을 들여다 봤다.2006년부터 서울 홍대 앞에서 33㎡(약 10평) 규모의 카페를 운영한 김지영(가명·35)씨는 2009년 정든 가게를 접어야 했다. 6년 전 월 100만원이었던 임대료가 조금씩 오르더니 2009년에는 250만원으로 올라서다. 카페를 접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다른 직업을 찾기도 여의치 않았다.

다행히 홍대의 옆골목인 합정동 근처에 36.3㎡(약 11평) 짜리 반지하 가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씨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목이 좋기로 유명한 홍대 상권에서도 실패했는데 합정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에서였다. 기우였다. 합정은 김씨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김씨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이 지역에 몰려들면서 그럴듯한 카페촌이 형성됐다. 김씨는 특기를 살려 자신의 카페에서 수제 쿠키를 구웠다. 개성으로 승부를 걸자는 취지에서였다. 김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다양한 동물 모양 쿠키를 개발해 손님에게 구워줬다. 의외로 반응이 좋아 단골 고객이 많이 늘었다. 김씨는 “홍대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할 때는 ‘끝났다’고 생각했다”며 “후미진 골목상권이 내게 기회가 될 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옆골목 놀이터로 생각하는 사람 많아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옆골목이 진화하고 있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독특한 가게가 늘면서 옆골목이 번화가를 위협하는 주요 상권으로 부상한 것이다. 권소영 서울문화포럼 사무국장은 “대형 프랜차이즈에 질린 사람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골목길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며 “자신만의 보물을 수집하듯 새로운 골목이나 가게를 찾아 다니는 걸 하나의 놀이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옆골목 상권이 형성된 건 급등한 부동산 임대료 영향이 컸다. 목 좋은 상권의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서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는 상인이 늘었다. 임대료·권리금에 부담을 느낀 상인들은 중심 상권을 떠나 옆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심 상권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임대료가 저렴한 곳은 옆골목 밖에 없었다. 실제로 홍대에서 합정·상수로, 삼청동에서 부암동으로, 대학로에서 혜화로로 가게를 옮긴 상인이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은 눈앞이 깜깜했다고 털어놨다. 김씨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빈티지 열풍’이 불었다.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하면서 사람들은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했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진 옆골목이 ‘추억의 장소’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옆골목으로 몰려들었고, 중심 상권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옛스런 가게를 연 상인들에게 재도약의 기회가 됐다.

이런 상인들은 독특한 콘셉트로 승부를 걸었다. 홍대의 옆골목 합정·상수에 있는 대부분의 가게는 나름의 색깔이 있다. 디자인과 맛, 그리고 재미있는 스토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새로운 카페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대관료를 감당하지 못해 대학로를 떠난 연극인들은 바로 옆골목인 혜화로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수준 높은 작품으로 관객을 끌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무장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의 힘도 컸다. 소비자들은 이들 가게가 가진 사소한 특징까지 모아 인터넷 공간에서 공유하기 시작했다. 따로 돈을 들여 광고하지 않아도 그 이상의 효과를 냈다.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공유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느끼는 거부감도 덜하다.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대표는 “최근 연극인들의 최대 관심사가 페이스북”이라며 “이 신비한 장치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매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 자본 때문에 옆골목으로 밀려난 상인들에게 거대 자본이 도움을 준 사례도 있다. 이태원에 자리 잡은 꼼데가르송 길이 그 예다. 삼성·SPC 등 대기업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만한 건물을 지으면서 이곳은 패션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이전에는 이태원 번화가 끝에 맥없이 연결돼 있는 이름 없는 길에 불과했다. 지금은 강북의 신사동으로 불리며 매력적인 골목이 됐다.

홍대 문화권과 합정·상수 문화권을 가르는 지점에 있는 ‘홍대 상상마당’이란 복합문화공간은 대자본과 소상인이 윈-윈 하는 예다. 공연·전시·예술강의 기능을 갖춰 찾는 고객이 많다. 홍대에 머물던 사람들이 합정·상수 인근 지역까지 내려오게 만들었다. 2007년 9월에 문을 열었는데, 공교롭게 합정·상수 지역에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 게 상상마당이 들어선 이후다. 반면 합정·상수에서 약속 장소를 설명하거나 길을 알려줄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건물이다. KT&G로선 충분한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옆골목은 이제 후미진 공간이 아니다. 중심 상권 부럽지 않은 인프라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고객들도 늘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합정·상수, 부암동, 혜화로는 중심 상권을 오고 가며 들르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목적지가 됐다. 한때 서로를 내몰던 중심 상권과 옆골목은 하나의 상권으로 합쳐지고 있다. 합정·상수가 홍대상권에 합류하면서 ‘홍대앞’ 상권은 예전에 비해 두배 이상으로 커졌다. 부암동도 마찬가지다. 삼청동과 부암동, 서촌 지역을 이어 역사·문화 탐방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하나의 거대한 문화 거리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서 혜화로까지 지금의 세배에 달하는 연극 탐방길이 생길 수도 있다.

옆골목 상권은 빠르게 성장한다. 과거 홍대앞이 중심상권으로 발전하고 지금처럼 밀집 지역이 되는데 10년 정도 걸렸다면 합정·상수 지역이 포화상태에 이른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합정·상수 지역은 벌써부터 높은 임대료와 권리금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09년에 막 카페가 생기기 시작한 걸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다. 그 원인을 둘러싼 의견은 다양하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원래 주변지역은 중심지가 만들어 놓은 인프라나 활용하고 유동인구의 덕을 보기 때문에 발전속도가 빠를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건축디자인컨설팅 업체 이승연 이스트포 대표는 SNS를 통해 정보의 공유 속도가 빨라진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얼마 전 마을 공동체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울 원서동 곳곳을 꾸민 적이 있다”며 “디자인한 곳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하더니 원서동을 찾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옆골목 상권이 이렇게 커졌지만 이곳 상인들의 고민은 또 다시 깊어지고 있다. 옆골목 상권이 뜨면서 부동산 가격도 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자본으로 무장한 대형 가게와 프랜차이즈 업체가 골목을 장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옆골목은 식상한 상권 중 하나로 전락할 지 모른다. 소상인들은 또 다시 새로운 옆골목을 찾아 떠날 것이다. 경쟁도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옆골목에 나중에 진출한 가게들은 기존 가게보다 더 뛰어난 콘텐트와 디자인으로 무장하고 있다. 기존 가게들이 계속해서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 옆골목 경제는 냉정하다.



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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