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 질주하던 현대차그룹 올해는 감속 불가피
[Car] 질주하던 현대차그룹 올해는 감속 불가피
지난해 11월 열린 LA모터쇼. 이곳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는 상황에서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톱 5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동일본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일본 업체들이 뒷걸음을 치고 미국 업체들이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공격적인 신차 출시로 미국시장 점유율 8.9%를 기록했고 유럽시장도 5%를 넘어섰다.
올해 현대·기아차를 둘러싼 경영여건은 만만치 않다. 올해 자동차 시장은 수요가 예년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근 수년간 현대·기아차에 반사이익을 안긴 GM과 토요타 등 미국과 일본 자동차 메이커가 재기에 나서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급성장에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과 정부의 세제지원, 노사안정 등이 작용했지만 앞으로의 경영환경은 이전만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토요타 사상 최대 판매량 목표현대·기아차는 지난해 판매량, 매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등 모든 면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현대차가 10%를 웃도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데 이어 기아차도 지난해 8.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액 77조7979억원, 영업이익 8조755억원을 달성하면서 영업이익률이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인 10.4%를 기록했다. 기아차도 같은 기간 매출액 43조1909억원, 영업이익 3조5251억원을 기록하며 8.2%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국제회계기준(IFRS) 연결기준).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405만9438대를, 기아차는 253만8020대를 판매했다. 이재록 기아차 재경본부장은 “물량이 달릴 정도로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재고일수가 3개월에서 1.8개월로 짧아졌다”고 밝혔다. 재고 감소는 관리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이 본부장은 “재고 관리 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무 개선 효과가 있다”며 “판매량 증가와 재고 감소는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중고차 가격을 올렸다”고 말했다.
올해 현대차그룹은 다소 주춤할 전망이다. 금융위기의 부진을 털고 부활을 선언한 미국과 대지진의 여파에서 회복한 일본 업체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특히 ‘제 2의 내수시장’인 미국에서 현대·기아차에 밀린 토요타의 공세가 거세다. 동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 여파로 글로벌 3위 메이커로 추락한 토요타는 올해 생산과 판매 목표를 사상 최대 규모로 올려 잡았다. 1위 탈환을 위한 ‘대반격’을 선언한 것이다. 토요타는 올해 글로벌 생산 목표치(다이하쓰와 히노 제외)를 전년 대비 24% 증가한 865만대로 제시했다.
이는 역대 최대였던 2007년의 853만대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판매 목표치는 올해보다 20% 급증한 848만대로 잡았다. 이 역시 사상 최대였던 2007년의 실적 843만대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23년 만에 처음으로 안방에서 시장점유율을 늘린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업체들 역시 어렵게 잡은 호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미국 정부로부터 한때 500억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은 GM은 빠르게 회복세를 탔다. GM은 지난 한 해 총 902만5942대를 판매해 2010년에 비해 7.6% 성장하며 글로벌 1위 자리에 올랐다. 포드도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총 569만5000대를 판매하며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여기에 폭스바겐도 공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또 유럽시장에서 자동차 수요가 줄고 있는 것도 현대차그룹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은 2011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국내외 경기 전망이 밝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내실경영’으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방침이다. 정몽구 회장은 올해 판매목표로 700만대를 제시했다. 이는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판매량 660만대보다 불과 40만대 많은 수치다. 전년 대비 6% 성장이라는 ‘소박한’ 판매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정 회장은 “2012년 자동차 산업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업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는 내실을 다져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올해 현대차그룹이 700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정관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팀장은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매년 목표량 이상의 판매실적을 달성해 왔다”며 “올해 역시 연말에는 목표량인 700만대를 넘어서는 숫자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6% 성장률의 의미는 내실 강화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높은 공장가동률 유지, 재고 감소를 비롯한 질적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 고유가와 유럽 재정위기로 시장 여건이 불확실한 만큼 전략형 차종을 대거 투입하는 전략을 펼 계획이다. 먼저 현대차는 주요 시장인 미국에 4종의 신차를 투입하고 유럽에 직영 체제를 구축해 글로벌 판매 강화에 나설 계획이다. 미국에 출시하는 신차는 그랜저HG와 신형 싼타페, 아반떼 쿠페, 엘란트라 투어링(신형 i30 왜건) 등 4개 모델이다.
유럽형 전략 차종으로 위기 진원지 공략유럽의 위기도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i30와 i40 등 유럽에 맞는 전략형 신차로 판촉을 강화할 방침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스위스 프레이그룹과 독일·프랑스 대리점 매매계약을 맺고 직영 판매체제를 구축했다. 두 나라는 2010년 기준 유럽 전체 산업수요의 41%를 차지할 만큼 유럽의 최대 자동차 시장이다. 또 3월 초부터 유럽에 신형 i30를 투입했고 i30왜건, i20 신모델도 잇따라 내놓을 계획이다. 기아차는 준중형 해치백 씨드를 오는 5~6월께 판매할 계획이다. 씨드는 기아차의 유럽 전략 차종으로 현대차 i30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KB투자증권의 신정관 팀장은 “올해 7월 현대차의 베이징 3공장과 11월 브라질 공장이 완공되면 현대차의 생산능력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여기에 유럽, 미국, 중국 시장에서 현지 전략형 차량 출시가 이어지면 수익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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