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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영화 ‘크로니클’ - 당신이 만약 초능력자가 된다면…

[Culture] 영화 ‘크로니클’ - 당신이 만약 초능력자가 된다면…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거야”. 스파이더맨이 남긴 이 유명한 대사는, 영화 속 모든 슈퍼 히어로가 가슴에 새겨두고 있는 행동 수칙이다. 슈퍼맨처럼 선천적으로 특별한 힘을 선물 받았든, 스파이더맨처럼 사고로 초능력자가 되었든, 배트맨처럼 재력으로 힘을 만들었든, 슈퍼 히어로들은 사회적 책임감에 짓눌렸다. 악의 무리를 무찌르고, 사회적 선을 이뤄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그들은 보통 이중인격자로 그려진다.

대표적인 예가 배트맨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그는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놓인다. 사랑하는 여인과 시민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 중 단 한 명만 구할 수 있는 상황. 잠시 고민하던 그는 사적인 선택, 즉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러 간다. 사회적 책임 대신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던 배트맨은 결국 사랑하던 여인을 잃고, 새로운 악의 씨앗을 틔워버리고 만다. 그 뒤로 슈퍼 히어로들은 고뇌의 늪 속으로 침잠했다. 더불어 슈퍼 히어로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할리우드가 ‘바른 생활 초능력자’들의 교과서적 선행에 질리기 시작한 무렵, 망나니 히어로 ‘아이언 맨’이 등장해 큰 인기를 모은 것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가면 뒤에 인간적 욕구를 숨겨 온 여타의 슈퍼 히어로와 달리 ‘아이언 맨’은 당당하게 대중 앞에 정체를 드러낸다. “내가 아이언 맨이다”라는 토니 스타크의 폭탄 선언에 영화 속 대중 뿐 아니라 영화 밖 관객도 열광했다. 원래 바른 생활 사나이보다는 ‘나쁜 남자’가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이다. 눈치 빠른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은 만날 골머리를 싸매고 앉아서 징징거리는 ‘햄릿 형’ 슈퍼 히어로를 대체한 신세대 능력자들을 찾아 나섰다. 3월 15일 개봉하는 ‘크로니클’은 그 신호탄 격인 영화가 될 것이다. 사회적 책임감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집어 던져버린, 발칙한 십대 초능력자들에게 전 세계 영화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



초능력 자랑하는 발칙한 영웅줄거리는 아주 간단하다. 평범한 고등학생 세 명이 우연히 발견한 땅굴에서 무언가를 본 뒤, 초능력을 얻게 된다. 손만 까닥해도 물건을 움직일 수 있고, 하늘을 날 수도 있다. 이제 소년들이 자신의 힘에 책임감을 느끼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영화의 홍보 문구는 영화의 정체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초능력을 가진 자가 모두 영웅은 아니다’.

새로 생긴 힘이 신기하기만 한 철딱서니 없는 소년들은 이 능력을 갖고 ‘논다’. 공놀이를 하다가 내키는 대로 날아가는 공을 허공에 멈추게 하고, 염력으로 포크를 움직여 친구 손등을 찍으며 장난을 친다. 하늘을 나는 엄청난 능력도 그들에게는 럭비 경기를 더 재미있게 즐기는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아마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를 상상했다면 소년들의 행동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저토록 엄청난 힘을 겨우 장난과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주먹다짐에 쓰다니!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만약 지금 물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염력이 생긴다면,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을 찾아나설까. 아니다. 아마 서류뭉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책상을 말끔하게 정리하거나, 집 안의 무거운 가구들을 번쩍번쩍 들어서 재배치할 생각이 먼저 들지 모른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은 출퇴근 지옥철에서 해방되는 데 쓸 것 같다. 크로니클의 조쉬 트랭크 감독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들이 초능력을 갖게 된다면,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바꾸고 싶어할 것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초능력을 그려보고 싶었다. 우러러 봐야 하는 영웅은 지겹지 않나?”

온 세상의 중심이 ‘나’인 젊은 세대의 세계관을 슈퍼 히어로 영화와 접목한 조쉬 트랭크 감독의 크로니클은 비주얼 면에서도 젊은 세대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투브,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대중에게 노출하는 데 거부감이 없는 젊은 세대는 과거의 슈퍼 히어로처럼 가면 뒤로 숨지 않는다. 오히려 휴대전화 영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촬영해서 공유하고 자랑한다. 이런 장면을 통해 젊은 관객들은 크로니클의 주인공들에게 쉽게 공감하고, 자신과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를 보는 기분이다. 이제 스타와 대중과의 간극은 사라졌다. 태어날 때부터 스타는 없다. 능력이 있다면 오늘의 평범한 대중이, 내일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이건 비단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크로니클은 명민하게도 이 지점을 파고든다.

올해로 스물일곱 살이 된, 파릇하게 젊은 신인감독 조쉬 트랭크의 아이디어는 전 세계 관객과 화끈하게 통했다. 올 2월, 전통적으로 할리우드 최악의 비수기로 불리는 수퍼볼 시즌에 개봉한 크로니클은 첫 주 주말에만 2200만 달러의 극장수익을 거둬들이며, 제작비의 두 배가 넘는 이익을 얻었다. 현재까지 북미에서만 6000만 달러의 수익을 냈고, 전 세계적으로 1억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중이다. 스타 배우는커녕, 새파란 신인 감독의 데뷔작 성적으로는 ‘초능력’에 가까운 수준. ‘영웅은 이래야 한다’며 가르치려 드는 권위적인 시선을 벗어버림으로써 새로운 관객과 소통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 젊은 한국독립영화 3 ■

‘홈 스위트 홈’
감독 문시현 | 출연 김영훈, 유애경, 이광수

개봉 3월 15일 | 관람등급 미정

김기덕 사단 최초의 여성 감독인 문시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고시원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위장 이혼을 하고 고시원에 흘러든 중년 남자와 그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하는 여고생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러기 아빠의 상실감, 가장의 책임감, 내 집 마련의 고단함 등 우리 사회의 중년 남성의 사실적인 얼굴을 더듬는다. 김기덕 사단 감독의 영화인만큼 충격적인 묘사도 빠지지 않는다.



‘청춘 그루브’감독 변성현 | 출연 봉태규, 이영훈, 곽지민

개봉 3월 15일 | 15세 관람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힙합 음악과 청춘의 방황을 짝지은 청춘 영화. 힙합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세 청년은 램페이지스라는 힙합 그룹을 결성한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민수의 배신으로 팀이 해체되고, 친구들 역시 뿔뿔이 흩어진다. 3년 후, 자신들의 모습이 담긴 야한 동영상이 공개될 거라는 소식에 세 청년은 다시 모인다. 청춘의 갈등과 화해가 힙합 리듬 속에 흥겹게 흘러간다.



‘핑크’감독 전수일 | 출연 이승연 서갑숙 이원종

개봉 3월 15일 | 청소년 관람불가

‘검은 땅의 소녀와’(2007)를 만든 전수일 감독의 신작. 영화는 상처입은 영혼들이 모여드는 선술집 ‘핑크’를 배경으로 상실의 아픔을 들여다본다. 근친 성폭력으로 영혼이 망가진 여인의 일상이 외딴 소도시의 쓸쓸한 풍경과 맞물려 먹먹한 공기를 만들어 낸다. 서갑숙이 연기한 옥련을 비롯한 배우들의 메마른 표정이 영화의 서늘한 분위기를 주도한다. 충격적이면서도 슬픈 끝맺음이 인상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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