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박용만 두산 신임회장
[CEO] 박용만 두산 신임회장
“사람이 변신할 수 있으면 사업을 바꿔가면서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두산은 원하든 원치 않든 기네스북에 등재된 가장 오래된 한국 기업입니다. 앞으로 국내 기업들에게 롤 모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용만(58) 두산그룹 회장이 4월 5일 기자 간담회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사람은 시스템과 기반 없이 역량만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며 “지금은 사람으로 승부를 내는 게 가장 확실하고 지속 가능한 길”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직접 만든 광고 문구처럼 결국 두산은 ‘사람이 미래’라는 이야기다. 그는 “업종을 잘 모르면 업종 쇠태기 때 기업 역시 쇠태 하지만, 사람이 자산인 기업은 업종이 바뀌어도 살아남는다”면서 “두산이 바로 그 대표기업”이라고 덧붙였다.
하버드대 강연이 첫 해외 출장사람을 강조한 것은 4월 2일 밝힌 취임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박 회장은 당시 ‘따뜻한 성과주의’를 그룹의 핵심 전략으로 꼽았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을 비롯해 많은 글로벌 기업이 개인간의 경쟁을 유도해 상위 위주로 끌고 가고 하위는 도태시키는 전략을 취한 게 사실. 박 회장은 “구성원 간의 끝없는 경쟁과 기계적 도태를 반복하는 환경에선 조직이 지속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며 “리더는 차가운 평가의 눈이 아니라 따뜻한 육성의 눈으로 구성원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뜻함과 성과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연이어 ‘사람’을 강조하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완전히 달라진 그룹 DNA와 무관치 않다. 소비재 중심 회사였던 두산은 1990년대 중반 네슬레·한국코닥 등을 매각한 데 이어 2000년대부터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 고려산업개발(두산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 밥캣을 잇따라 인수하며 중공업 기업으로 거듭났다. 박 회장은 간담회에서 “지금까지 (인수합병에서) 24건을 팔았고, 18건을 샀다”며 “모두 42건의 M & A를 하면서 금액으로 보면 4조4000억 팔았고 9조원 정도 샀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1998년 당시 3조4000억원이었던 두산의 매출은 지난해 26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국내와 해외 매출 비중도 1998년 9대 1에서 지금은 4대 6으로 뒤바뀌었다. M & A를 통해 그룹 외형이나 사업 부문만 바뀐 게 아니었다. 박 회장은 “2000년 이후 그룹이 급격한 속도로 변하면서 구성원도 많이 바뀌었다”며 “지금 구성원을 보면 대부분이 두산 명함을 쓴지 10년이 안 된 분들이고 3만9000여 임직원 중 절반이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116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령 회사가 10년도 안된 젊고 글로벌 한 직원들을 거느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 문화였다. ‘그룹 변신에는 성공했지만 그에 걸맞은 기업문화가 없다’는 것. 박 회장은 “젊은 조직이라 역동적이고 배타성이 없지만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기업문화와 철학이 뿌리내리는 것”이라며 “올해는 강력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문화를 구축하고,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이 사람을 중시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무리 바빠도 인재 발굴은 직접 챙긴다. 대학 신입사원 채용설명회에 직접 참석해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내세우며 회사의 경영 실적과 비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기본. MBA 졸업생을 스카우트하기 위해선 직접 미국에 건너가 개별 인터뷰를 진행한다. 나아가 매년 열리는 신입사원 환영회엔 빠지지 않고 참석해 사원들과 술잔을 부딪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 회장이 그룹 회장 취임 후 처음 갖는 해외 출장지도 다름아닌 미국 하버드 대학이다. 그는 4월 14일 하버드 대학의 비즈니스스쿨·로스쿨·케네디스쿨 학생회가 공동 주최하는 ‘아시아 비즈니스 콘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자로 참석해 두산의 성공 배경을 설명할 예정이다.
실제 박 회장은 좋은 인재에 남들보다 더 투자하고 더 육성하는 게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연결된다고 믿는다. 2004년 두산 전략기획실 사장으로 ‘동대문 야전사령관’을 자청할 당시에도 기자를 만나 “구조조정과 M & A 역시 결국은 사람으로 귀결되더라”며 “좋은 인재를 더 많이 육성할 수 있는 체력 좋은 기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회장의 중시하는 ‘사람 경영’은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강조한 ‘천재론’과는 거리가 있다. 박 회장은 성적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능력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대신 그 사람이 두산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박 회장이 중시하는 ‘두산맨’은 어떤 모습일까. 무엇보다 두산의 경영이념인 ‘인화’에 어울려야 한다. 그는 “두산에서 인화는 화목과 다르다. 화목을 위해 억지로 가다 보면 화목이 안 이뤄지더라“며 ”진정으로 인화를 이뤄 하나가 되려면 서로 거리낌이 없어야 하고, 그러려면 조직 운영이 공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두산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유연성 있고 끈기 있는 두산맨 강조수많은 인수합병을 통한 기업 변화를 겪으며 박 회장이 터득한 인재 평가 기준도 남다르다. 그중 하나가 유연성이다. 박 회장은 과거 인수한 기업의 임직원들을 평가하는 자신의 잣대를 기자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기업을 인수한 후 인수한 회사의 인력을 평가할 때는 제 나름대로 몇 가지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변화에 대한 태도입니다. 먼저 능력이 좋고 경험이 풍부한데 변화에 느린 사람들이 있죠. 이들은 반드시 포용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데 변화를 발 빠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존 조직에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역량을 보고 판단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능력과 경험이 많으면서 의도적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과감하게 내보내야 합니다.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기 때문이죠.”
투지도 빼놓을 수 없다. 박 회장은 “사람을 평가할 때 끈기를 중요시 여긴다”며 “끈기는 인내심이 아니라 주어진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투지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유연성과 투지는 누구보다 박 회장 본인에게 어울리는 덕목. 일례로 박 회장은 단기 승부를 내는 도박이나 내기 골프를 좋아하지 않지만 한번 목표를 정하면 끈질기게 노력한다. 기업을 인수할 때나 인재를 발탁할 때도 유연하다.
박 회장은 “과거 두산동아 출판사에서 눈 여겨 보던 영업직원이 있었는데 중공업으로 보냈더니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더라”며 “그 사람의 지금 업무와 상관없이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두산의 핵심 전략도 2G(Growth of People, Growth of Business)다. ‘사람에 의해 기업이 성장하고 다시 기업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박 회장의 경영 철학 때문이다. 박 회장은 “사람은 업무나 사업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지 강의실에서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그런데 회사가 어려우면 사내에서 성장을 하기 힘들다”고 말해 왔다.
‘따뜻한 성과주의’의 밑거름은 소통박 회장은 유연하고 끈기 있는 인재들이 두산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사 제도 개선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잭 웰치 전 GE 회장 아래서 인사 제도를 실제 운용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인 빌 클라인을 고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룹의 최고경영층과 각 계열사의 대표들이 핵심인재를 1대 1 또는 2대 2로 직접 만나 그룹경영 전반을 리뷰하는 ‘피플세션(People Session)’도 GE의 인사 시스템을 벤치마킹 한 것. 박 회장은 “글로벌 기업의 인사제도를 보고 바꾸는데 처음엔 과연 한국에서 가능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며 “하지만 다른 체제가 들어오자 한 두 달 만에 사람들도 (거기에 맞게) 바뀌더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직원 평가를 인건비 비중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모자란 역량을 붙여 제도화하는 쪽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따뜻한 성과주의가 나온 배경이다.
박 회장에 따르면 ‘따뜻한 성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적인 소통이다. 박 회장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팀워크를 올려야 조직의 성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리더의 역할에서도 소통은 절대적이다 .박 회장은 “기업의 의사결정은 고독한 영웅이 밤을 지새며 내리는 결정이 아니다”며 “여건, 자원 등 모든 요소가 투명하게 논의될 때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때 포토 저널리스트를 꿈꿨다는 박 회장은 재계에서 ‘소통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13만명의 팔로워(followers)를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트위터에선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와 파워를 누렸다. 페이스북을 통해선 자신의 직접 쓴 글과 찍은 사진을 통해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SNS를 한 것은 기업 철학과 무관하게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며 “메신저를 좋아하는데, 출장이 잦다 보니 시차가 안 맞아 트위터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이야기 할 때 웃어주면 제일 행복한데, 몇 번 웃기니 팔로어가 늘어나더라”면서 “지금은 준개그맨이 돼 있는데, 요새는 어떡하다 보니 좀 뜸해졌다. 시간이 없어 안 하는 건 말이 안되고 정신적 여유가 없어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SNS 이외에도 박 회장의 소탈한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는 다양하다. 박 회장은 사내 젊은 사원들과도 ‘번개’를 통해 스스럼없이 저녁 자리를 갖는 편이다. 최근에는 SBS 연예프로그램 ‘짝’에 출연했지만 파트너를 찾는 데 실패한 자사 직원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평소 의전 없이 경영활동을 해 많은 에피소드도 낳고 있다. 지난해 말 박태준 전 총리의 빈소에 수행비서 없이 홀로 나타나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사내는 물론 세상 사람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벌이며 국내 기업인들에 대한 경직된 이미지를 깼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제가 회장이 언제 되리라는 건 생각을 안 해 봤습니다. 제가 결정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실무를 쭉 하면서 일을 하면서 전문 경영인처럼 일을 해 왔기 때문에 그룹을 대표하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은 해 봤습니다.”
박 회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내놓은 답변처럼 그는 오너보다는 전문경영인에 가까운 인생을 걸어왔다. 박 회장은 “두산 사장 시절엔 헤드헌팅 회사로부터 다른 회사 CEO 자리를 제의 받은 적도 있다”고 말할 정도다.
고 박두병 회장의 5남인 박용만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미국 유학생활 동안 용돈이 넉넉지 않아 자취 생활을 하면서 직접 음식도 해먹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얼리어답터 기질은 이 때도 발휘됐다. 1980년대 초반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미국에서 유학하던 동생 박용만에게 소원이 있으면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한 것. 그러자 동생 박용만은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컴퓨터라면 사무실 한 켠을 가득 채우는 ‘슈퍼 컴퓨터’를 떠올리던 때였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미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개인용컴퓨터(PC)가 유행하고 있었다. 지금도 박용만 회장은 아이패드3 등 새로운 디지털 기기가 나오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개봉기를 올리는 얼리어답터로 유명하다.
한국에 돌아온 박 회장은 사회생활을 1977년 외환은행에서 시작했다. “남의 눈칫밥을 먹어봐야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다”는 두산가의 철학 때문이다. 1883년 두산건설에 사원으로 입사한 박 회장은 두산음료·두산식품·동양맥주·두산동아 등에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박 회장은 1995년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부사장)으로 임명되며 경영 전면에 나서며 그룹의 구조조과 M & A를 진두지휘 했다.
박 회장의 들려주는 M & A의 목적은 영토 확장이 아니다. 그는 “기업 M & A의 기준은 성장 잠재력,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업종, 인수의 용이성 등 3가지”라며 “영토 확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사들임으로써 경영의 구조적인 스피드를 높이는 수단이 바로 M & A”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M & A 계획에 대해선 “지금도 (M & A 대상 기업) 리스트를 놓고 끊임없이 검토하고 있다”며 “단순한 지분 참여나 영토 확장을 위한 M & A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회사 CEO 제의 받기도박용만호가 본격 출범했지만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자체가 급격히 변하진 않을 전망이다. 박용만 회장이 이미 그룹 실무 전반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룹 체질 개선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두산그룹은 수입차 사업에서 손을 뗐다. KFC 등 남아있는 외식 사업도 털어낼 예정이다. 박 회장의 전문 분야인 해외 진출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회장은 해외 최대 법인인 밥캣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다. 박 회장은 “유로존 문제나 유가 등 글로벌 경제가 불안하지 않다”며 “밥캣의 경우 7분기 째 흑자를 내고 있고 올해는 2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회장은 8년 전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던진 말이 있었다. “2015년엔 두산을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의 회사로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당시만 해도 두산은 매출 5조원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박 회장은 “5조원짜리 회사 사장이 말하니까 웃을지 모르겠다”며 단서를 붙였다. 하지만 어느새 매출 25조원의 글로벌 그룹 총수가 됐다. 박용만 회장이 이끄는 두산호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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