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감별사가 뜬다 - 짝퉁 제품 귀신 같이 찾는다
명품 감별사가 뜬다 - 짝퉁 제품 귀신 같이 찾는다
감별회사 ‘마이스타우트’ 대표이자 9년째 명품 감별사로 활동하고 있는 조진석(37)씨. 조씨는 최근 한 명품 수입업체에서 감별 고문직 제안을 받았다. 최근 한 케이블 방송에서 진짜 같은 ‘짝퉁’ 가방을 골라낸 실력을 인정 받아서다. 그는 5개 가방을 놓고 짝퉁 여부를 100% 감별했다. 모델이 들고 나온 가방을 먼 발치에서 본 순간 감을 잡은 그는 냄새를 맡거나 내피나 안감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짝퉁’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절단기로 가방을 잘랐다. 조씨는 “요즘 가짜 제품은 중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며 “중고 가게와 정품 매장에서 쉽게 속아넘어갈 만하다”고 말했다.
국내 중고 명품 판매 1위 업체인 구구스에는 명품 감별사가 근무하고 있다. 품목별·분야별로 1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구구스는 감별사가 직접 제품을 감정하고 진위 여부에 대해 100% 책임진다. 2002년 출범해 지금까지 감별사를 통해 40만개의 명품 감정 실적을 보유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온라인 오픈마켓인 11번가에 진출했다. 구구스 관계자는 “오픈마켓은 명품 브랜드 짝퉁 거래의 온상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지만 구구스 제품은 ‘전문가가 감정한 중고 명품’이라는 고객의 신뢰를 얻고 있어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1분기에 적발한 짝퉁 제품은 76만568점. 금액으로 3330억원에 달했다. 161개 브랜드 단속 건수 중에 루이비통이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샤넬, 구찌, 버버리 순으로 많았다. 금액으로는 롤렉스, 까르띠에 등 명품 시계가 1, 2위를 차지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소비자의 명품 선호도에 가짜 브랜드 순위도 달라진다”며 “요즘은 가짜 명품도 고객 관리를 위해 고유번호까지 새겨 넣고 애프터서비스(A/S)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짝퉁 시장’이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짝퉁 제조 기술로 진화현재 가짜 명품을 감별하는 공식 기관은 한국의류산업협회 산하 지적재산권보호센터가 유일하다. 지적재산권보호센터는 국내에 유통되는 짝퉁 제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섬유·패션 관련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2004년 3월 설립됐다. 이곳의 감별사는 10명 내외다. 이들은 경찰과 검찰, 관세청에서 처벌을 목적으로 요청이 있을 때마다 진품 여부를 감별한다. 지적재산권보호센터의 이재길 팀장은 “해마다 수백 점의 짝퉁 가방이나 지갑을 감별하다 보면 색상과 무늬, 바느질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노련해진다”며 “최근 명품 감별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실제로 감별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라고 말했다.
현재 명품 감별사라는 자격증은 따로 없다.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감별사는 명품 브랜드 업계에서 일을 했거나 명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공부를 해서 활동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정확히 알려진 숫자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1000명 내외로 보고 있다. 이 팀장은 “공식적으로 위조품을 가려내는 커리큘럼이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제도가 없다”며 “진품 여부 감별을 위해 학습하더라도 위조 제품은 갈수록 정교해지기 때문에 모든 사례에 대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감별사 양성 프로그램 생겨나모조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감별사를 찾는 기업도 늘고 있다. 최근 국내에 유통하고 있는 수입업체나 중고 명품시장이 커지는 것도 이유다. 감별회사 마이스타우트 조진석 대표는 “명품 감별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최근에는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4년 전부터 국내에서 명품 가방 유통업체에서 감별사로 일하고 있는 김주형(39) 과장은 7년간 중고명품 감별사로 일하다 스카우트 됐다. 짝퉁 제품이 국내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게 그의 임무다. 3년여 동안 짝퉁을 찾아내기 위해 로고의 모양이 다르진 않는지, 장신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를 보고 다녔다. 이런 단속 덕에 4년 전에 비해 지금은 20% 정도 짝퉁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한 달에 10건 정도는 쏟아지니 하루라도 긴장을 풀 수 없다. 그는 “예전에는 고객이 가져오는 제품을 감별하는 데만 신경 썼지만 명품 인기가 높아지면 가짜가 길거리 좌판에 또는 시장 한 모퉁이에 보란 듯 진열돼 있어 일이 크게 늘었다”며 “특히 기술이 정교해져 가짜를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명품 감별사는 자격증 제도는 없지만 최근 명품 감별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구구스는 명품 제품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총 40주에 걸쳐서 보석부터 명품시계, 가방 등 제품 감정과 시세, 명품 전문지식 등을 교육받는다. 매년 상(6월)·하반기(12월) 각각 1회씩 실시하는 시험은 필기(60점)·실시(30점)·주제발표(10점)를 합산해 총점에 따라 1~3급의 자격을 부여한다. 한국골드협회도 주얼리 감별 강의 중에 명품시계를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교육을 포함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5조원이 넘고 세계 4대 명품시장으로 부상했다”며 “시장이 커질수록 그림자처럼 위조 제품도 늘어 감별사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희 이코노미스트 기자 bob28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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