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HISTORY WORLD WAR Ⅱ] 스웨덴의 ‘신들러’

[HISTORY WORLD WAR Ⅱ] 스웨덴의 ‘신들러’

유대인 수천 명을 나치의 학살에서 구한 라울 발렌베리의 영웅적 행동은 시리아 사태에 교훈을 준다



KATI MARTON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 그의 탄생 100년 뒤인 지금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를 기억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이끄는게 뭘까(what motivates some people to risk their lives for others)?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미적거리며 살인자들에게 그 잔혹한 행위를 해도 된다는 확신을 주는 상황에서 말이다(while those in positions of power stall and give heart to the murderers). 유대인 수백만 명이 희생된 뒤에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유럽의 마지막 남은 유대인들을 구하려고 스웨덴의 자원자 발렌베리를 파견했다.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집단 학살자들이 구출자보다 더 의지가 굳은 이유가 뭘까(Why are mass murderers more determined than rescuers)? 발렌베리 같은 사람이 왜 그리 적을까(Why so few Wallenbergs)?

비극이긴 하지만 이런 의문은 매우 시의 적절하다(These questions are tragically relevant). 우리는 이미 르완다와 보스니아에서 집단학살을 겪었다. 지금은 시리아에서 학살자가 여전히 권력을 휘두른다. 그러는 동안 국제사회는 계속 머무적거렸고 지금도 그렇다(dithers).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홈스 같은 곳에서 자국민 학살을 자행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발렌베리의 영웅적인 행동이 못내 아쉽다.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1944년 여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유대인들은 이런 의문을 가졌다. 제복 입은 살인자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유대인을 잡아 넣는 상황에서 누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까? 그러나 경험 없는 32세의 한 스웨덴인이 자원해서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 라울 발렌베리의 성공적인 유대인 구출작전은 집단살인이 저지될 수 있고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mass murder can and must be stopped)는 점을 분명히 말해준다. 그러나 구출자들은 살인자들이 살인에 갖는 열정만큼 자신의 구조 임무에 열정적이라야 한다(But the rescuers must be as zealous about their task as the murders are about theirs). 그리고 더 창의적이라야 한다.

집단학살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세계는 그에 대응할 시간이 있다. 학살이 감행되기 전에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비하하는 말이 먼저 나돈다(Before the killing are the words that dehumanize the “Other”). 예를 들어 나치는 유대인을 인간의 아종(亞種)으로 간주하려고 했다(attempt to turn Jews into subspecies). 그 다음엔 그런 혐오를 제도화하는 법이 따른다. 예를 들어 공원 벤치에 ‘유대인 접근 금지(No Jews Allowed)’라는 표지가 붙었다. 1년 뒤 유대인들은 직장에서, 그리고 자기 집에서 쫓겨나 강제로 차에 태워졌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 다음해의 홀로코스트로 명백해졌지만 여전히 미국과 영국은 각료회의를 열고 어떻게 할지 논의만 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이런 끔찍한 일을 왜 막지 못했을까? 인간의 자의적인 맹목 능력(humanity’s capacity for willed blindness)이 일부 이유가 될지 모른다. 부분적으로 그런 맹목은 상상 불가능한 일을 상상하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에 나타난다(Partly, it stems from a very human inability to imagine the unimaginable). 미국 대법관 펠릭스 프랭크푸르터는 1942년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강제수용소)의 현황에 관해 폴란드 외교관 얀 카르스키의 브리핑을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 내가 말하진 않았다(I didn’t say he was lying). 단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I said that I cannot believe him).”

히틀러가 1925년 ‘나의 투쟁(Mein Kampf)’을 펴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 책이 집단학살을 암시한다고 제대로 이해했다. 히틀러는 그 책에서 유대인 말살이 자신의 신성한 임무(sacred mission)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세상을 떠난 내 남편 리처드 홀브루크의 조부는 고향 독일 함부르크에서 그 책을 읽고 바로 남미로 이민을 떠났다.

1944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난민위원회(War Refugee Board)를 설립했다. 유대인들을 구출하려는 조치였다. 그 위원회는 발렌베리를 부다페스트에 파견했다. 그때는 이미 완전히 정신 나간 나치 외에는 모두 독일이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나치 친위대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은 헝가리의 유대인 20만 명을 몰살시킨다는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손을 놓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유대인 구출 자원자 발렌베리와 노련한 살인자 아이히만 사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The race was now between Wallenberg, the volunteer, and Eichmann, the seasoned killer).

발렌베리는 기발한 책략(stratagem)과 전쟁난민위원회·유대인 관리청의 자금을 동원해 건물을 임대하고는 스웨덴 깃발을 내걸었다. 나치가 점령한 부다페스트의 아수라장에서 외교 면책을 주장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발상이었지만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그는 유대인 수백 명을 자신의 ‘조수(assistants)’로 고용해 그들도 어느 정도의 면책권을 얻었다. 특히 발렌베리는 독자적으로 스웨덴 여권을 만들어 누구든 원하면 즉시 스웨덴인이 될 수 있도록 했다(he crafted Swedish passports of his own design, which made instant Swedes out of anybody who wanted one). 그는 연기에도 뛰어났다. 게르만족의 권위(Teutonic authority)를 흉내내어 마음 약한 헝가리 관리들과 심지어 독일 장성들까지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르도록 했다. 아울러 나치 외무장관의 아내와 친분을 쌓아 나치 권력의 최상부에서 우군을 만들었다.

발렌베리는 끊임없이 머리를 짜냈다(improvised endlessly). 한 가지 계책이 실패하면 곧바로 대안을 시도했다. 훌륭한 지도자가 그렇듯이 그는 다른 사람들도 용기 있는 행동을 하도록 의욕을 고취시켰다. 학살자들이 살인에 열정을 갖듯이 발렌베리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출하는데 그에 맞먹는 열정을 바쳤다(Wallenberg brought the same passion to rescue as the killers did to murder).

관료주의적 형식이나 관례에 묶인 외교관과는 정반대로 발렌베리는 유대인 구출이라는 사명감에 불탔다(The very opposite of a diplomat tied up in red tape and protocol, Wallenberg was a man on a mission). 그는 완전히 자포자기한 부다페스트의 유대인들에게 자존심과 희망(dignity and hope)을 불어넣었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1944년 말 부다페스트 외곽에 소련군의 대포 소리가 메아리치는 순간에도 아이히만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발버둥쳤다. 나치와 헝가리 부역자들은 유대인 수천 명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옮기려고 독일 국경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발렌베리는 누더기 차림으로 행진하는 유대인들 사이를 헤치며 “스웨덴 여권을 가진 사람은 손 드시오(Raise your hand if you hold a Swedish passport)!”라고 외쳤다. 이런 식으로 그는 죽음의 행진에서 수십 명을 구해내 부다페스트로 다시 데려갔다. 어쩔 수 없이 계속 행진을 해야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음식과 코냑, 담요를 떠 안겼다. 비인간적인 종말로 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인간적인 몸부림이었다(a final human gesture for those en route to an inhuman end).

발렌베리 자신도 그 못지 않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위험하거나 강제노동에 적합하다고 간주된 수천 명과 함께 소련군의 포로가 됐다. 그후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그는 소련에서 포로의 몸으로 1947년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1980년대가 돼서야 그의 진정한 삶과 죽음이 세계에 알려졌다(But it was not until the 1980s that the world took real notice of the missing Swede).

발렌베리의 이야기는 법을 지키는 것이 반드시 가장 고결한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는 점도 말해준다(Wallenberg’s story also illustrates that sometimes obeying the law is not the highest act of morality). 나치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도자에게도 저항해 집합 장소에 나가지 않은 유대인들, 적발되면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 노란 별 표시를 달지 않은 유대인들은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모멸적인 포고령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궁극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았다(The orderly acceptance of every degrading edict was ultimately not in the Jews’ interest).

라울 발렌베리는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는 사람이 반드시 집단학살자들보다 머리싸움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에 보여주었다(Raoul Wallenberg showed the world that rescuers need not always be outsmarted by mass murderers).

필자는 고(故) 리처드 홀브루크(미국 외교관으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사를 지냈다)의 미망인으로 ‘발렌베리(Wallenberg)’ 외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녀의 회고록 ‘파리-러브스토리(Paris—A Love Story)’가 곧 발간될 예정이다. 번역 이원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한국-프랑스 ‘경제계 미래대화’ 출범…우주·신소재·탄소중립 협력

2김상철 한컴 회장 차남, 90억 비자금 조성 의혹…검찰, 징역 9년 구형

3‘서울 선언’으로 기회 잡은 韓, 네이버 핵심 역할…하정우 ‘소버린 AI’ 강조

4달성군, 중소기업 대상 '맞춤형 R&D기획 지원사업’ 추진

5포항시, 한중일 3국이 모여 동반성장 모색하는 '동북아 CEO 경제협력 포럼' 개최

6대구시 공무원 올해도 골프대회 .. 홍준표 "당당하게 즐겨라"

7경산 유흥주점서 난동부린 'MZ 조폭' 6명 검거

8삼성, 청년과 ‘동행’하다…대전서 문 연 11번째 ‘주거 지원’ 시설

9개인정보위, 카카오에 ‘역대 최대’ 과징금…회사 “행정소송 검토”

실시간 뉴스

1한국-프랑스 ‘경제계 미래대화’ 출범…우주·신소재·탄소중립 협력

2김상철 한컴 회장 차남, 90억 비자금 조성 의혹…검찰, 징역 9년 구형

3‘서울 선언’으로 기회 잡은 韓, 네이버 핵심 역할…하정우 ‘소버린 AI’ 강조

4달성군, 중소기업 대상 '맞춤형 R&D기획 지원사업’ 추진

5포항시, 한중일 3국이 모여 동반성장 모색하는 '동북아 CEO 경제협력 포럼'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