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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보리출판사의 하루 6시간 근무 실험
일은 줄이고 품질은 높인다

[Company] 보리출판사의 하루 6시간 근무 실험
일은 줄이고 품질은 높인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 지식경제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193시간이다. OECD 평균 1749시간보다 444시간이 많다. 일8시간으로 환산하면 55.5일을 더 일한다.

경기도 파주출판도시에 있는 보리출판사는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들었다. 이 회사의 정규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다. 이른바 ‘나인 투 포(9 to 4)’다. 보리출판사는 3월 1일부터 ‘1일 6시간 노동제’(일6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 3월 한 달간 예행 기간을 거쳐 현재 실제 시행기간 한 달을 막 넘겼다. 1988년 설립된 이 출판사는 20여 년 동안 어린이 책, 생물 세밀화 그림책 등 300여 권을 펴냈다. 대표를 포함한 직원 수가 32명이다.

노동시간을 줄였지만 임금은 그 전과 변화가 없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 하루 6시간을 넘긴 연장근무에 따른 추가 수당도 주지 않는다. 대신 연장근로를 하면 근무한 시간만큼 시간을 적립해 대체휴가로 쓸 수 있다.

보리출판사 노사는 올해 초 합의를 통해 일6시간제를 결정했다. 보리6시간제TFT의 조혜원 부장은 “삶터와 일터가 나뉘지 않는다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일6시간제를 공개적으로 시행한 회사는 한국에서 보리출판사가 처음이다. 그러나 1930년대 미국에서 일6시간제는 흔했다. 켈로그, 시어스 로벅, GM, 스탠다드 오일, 허드슨 모터스 등과 일부 면화 제조업체가 당시 6시간제를 시행했다.

켈로그는 1930년 일6시간제를 시행했다. 공장근무를 기존 8시간 3교대에서 6시간 4교대제로 바꿨다. 『8시간 VS 6시간-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1930-1985, 이후』에 따르면 당시 켈로그 경영자는 삶의 의미가 있는 직장생활을 만들어주자는 의미로 일6시간제를 시행했다. 노동자가 6시간씩만 근무해도 회사를 경영하는데 문제가 없고, 직원들에게 좋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갑작스럽게 생긴 여유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퇴근 후 늘어난 여가시간을 술과 도박으로 날리는 직원들이 늘었다. 돈을 더 벌려는 직원들이 회사 몰래 ‘투잡’에 나서 늦게까지 일하는 바람에 다음날 켈로그 공장의 생산성은 크게 떨어졌다. 초과 근무로 수당을 더 받고 싶어하는 노동자가 늘면서 일6시간제를 반대하는 기현상도 빚어졌다. 켈로그는 55년간 일6시간제를 유지하다 경영진이 바뀐 뒤인 1985년 다시 일8시간제로 복귀했다.

보리출판사 노사는 지난해 5월부터 켈로그 사례를 놓고 세미나를 벌였다. 켈로그의 실패 원인을 보완할 방법으로 초과 근무 수당을 없애고, 일량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보리출판사가 이상적인 직장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만으로 일6시간제를 시행한 것은 아니다. 출판업계 업황이 나쁜 것도 한 이유다. 경기가 안 좋을 때는 그에 맞춰 일을 줄이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출판사 경영층은 ‘3000부 팔고 말 책 10권을 만들기보다 공들여서 3만부 팔릴 책 1권을 만들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보리출판사는 현재 연 25~30권 내외의 새 책을 내고 있지만 앞으로 연 3~4권 정도는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보리출판사의 신간 매출 비중은 10% 미만이다. 20%를 넘는 여느 출판사와 다르다. 스테디 셀러가 많아 지금까지 내놓은 책 중에 절판된 건 2종뿐이다. 신간을 만드는 노동시간을 줄여도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일6시간제 두 달이 지나면서 보리출판사 직원들은 서서히 자신의 일을 줄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굳이 초과근무 시간을 적립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일정을 다시 짜고 있다. 보리출판사는 앞으로 5개월 동안 일6시간제에 대한 평가를 계속할 계획이다. 일을 줄여도 매출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면 주4일제, 재택근무 등도 실험해볼 참이다.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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