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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論濁論] - 재벌 빵집 철수한들…

[淸論濁論] - 재벌 빵집 철수한들…

요즘 길을 가다 빵집에 들르곤 한다. 국내 최대 체인점인 파리바케뜨도 가봤고, 동네의 작은 빵집도 들어가 봤다. 들른 김에 빵맛도 보고 커피도 마신다.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주인들에게 ‘삼성의 빵집 철수’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다수 언론의 논조로 봐서는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나와야 할 일이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생업에 바빠 뉴스 자체를 모르는 이도 있고,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는 반응이다. 철수를 하든 말든 자신들의 돈벌이와는 별 상관 없다는 것이다. 골목의 재래식 빵집들은 삼성보다 파리바케트가 더 무섭다고 했다. 파리바케뜨 가맹점 주인은 “이 돈 저 돈 끌어다 어렵사리 내 가게 하나를 냈다”고 말했다.

짐작했지만 막상 그들의 말을 직접 듣고 보니 허탈했다. 삼성 계열사인 호텔신라의 빵집 사업(아티제)은 소위 재벌의 골목상권 침해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받아왔다. 그런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당사자들의 반응이 고작 이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러 사람이 헛다리를 짚은 것일까. 아티제가 골목상권 침범과는 거리가 먼데도 이른바 마녀사냥의 제물이 된 것은 아닐까.

최근 뉴스를 다시 정리해 보자. 4월 26일 호텔신라는 고급 베이커리 브랜드 아티제를 대한제분에 넘겼다고 밝혔다. 아티제를 운영하던 ‘보나비’ 지분 100%를 301억원을 받고 밀가루 회사에 매각했다는 것이다. 보나비는 2004년 유럽형 라이프스타일 카페를 표방한 베이커리·커피 매장을 처음 연 후 오피스 상권과 부자동네를 중심으로 27개 매장을 운영해왔다. 지난해 매출은 241억원이었다. 대기업이 빵집까지 거느리며 서민 생업을 위협한다는 비난에 시달리던 삼성은 올 1월 말 사업 철수방침을 밝혔고, 4월부터 매각을 추진해왔다.

아티제를 인수한 대한제분은 어떤 곳인가. ‘곰표 밀가루’로 유명한 중견기업이다. 과거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 밀가루 회사는 요즘의 재벌 같은 지위를 누렸다. 그때에 비해서는 왜소해졌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은 결코 아니다. 대한제분이 보나비를 인수한 배경은 짐작할 만하다. 무엇보다 밀가루 기업으로서 빵사업을 하는 건 자연스럽다. 브랜드가 중요한데 마침 삼성이 8년간 세련되게 일궈놓았다. 브런치와 같은 서구식 음식문화가 점차 보편화하고, 빵 하나를 먹어도 고급을 찾는 트렌드도 우호적이다.

파는 쪽도 대한제분이 맘에 들었다. 애써 구축한 브랜드를 더욱 잘 키워나갈 수 있을 걸로 봤다. 딸을 키워 시집보내는 부모 마음에 비유할 만하다. 인수합병(M&A)에서는 종업원 문제가 늘 걸림돌이다. 그런데 대한제분은 아티제 종업원 350명 전원의 고용 승계도 약속했다.

호텔신라는 대형마트 홈플러스와 합작으로 하던 제빵사업(아티제 블랑제)에서도 손을 뗐다. 자사 지분 19%를 홈플러스에 몽땅 판 것이다. 아티제 블랑제리는 홈플러스 120개 전국 매장에 입점해 있다. 이로써 삼성은 문제의 빵집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아티제란 고급 빵집은 주인만 바뀐 채 그 자리에서 계속 장사를 할 것이다. 새 주인이 된 대한제분이 새로운 사업에 의욕을 보일 경우 매장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아티제 블랑제도 전국 홈플러스 매장에서 어제와 똑같이 손님을 맞고 있다. 자신들의 장사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빵집 주인들의 말은 백번 옳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얼 위해 이런 소란을 피웠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골목상권 살리기였고, 그 다음은 대기업의 지나친 사업확장에 제동을 걸 목적이었을 게다. 대한제분과 홈플러스가 대기업이 아니라고 본다면 두번째 목표는 부분적으로 달성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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