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ience] 다중우주의 숨겨진 실체를 찾아서

우리의 우주가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는 우주일까? 아인슈타인은 그 의문을 특유의 시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What really interests me is whether God had any choice in creating the world).”
오해하기 쉽지만 결코 신학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법칙(the laws of physics)이 은하계, 항성, 행성으로 가득한 우리의 우주 같은 유일무이한 형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지 알고 싶어했다. 아니면 물리학의 법칙이 자동차 판매 대리점 마당에 가득 찬 매년 바뀌는 새로운 모델의 차들처럼 다양한 모습을 가진 우주의 존재를 허용할 수 있을까? 만약 다양한 우주가 허용된다면 우리가 고성능 망원경과 거대한 입자 가속기(particle colliders)를 통해 알게 된 장엄한 우리의 우주가 무작위 과정(random process)을 통해 만들어졌을까? 신의 주사위 굴리기처럼 가능한 여러가지 형태 중에서 우리가 가진 우주의 특징이 선택됐을까(a cosmic roll of the dice that selected our features from a menu of possibilities)? 아니면 우주가 현재 이런 상태인 이유를 설명해 주는 더 심오한 이론이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시대에는 우리 우주가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다는 개념이 허황된 이야기(mind-bender)로 들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아이디어가 물리학의 외곽 지대를 벗어나 주류로 진입했다. 더구나 이제 우리는 우리가 아는 우주가 지금과 다른 속성을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단지 상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세 가지 우주물리학 이론의 지지자들은 우리와 다른 우주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른 입자로 만들어졌고 다른 힘의 지배를 받는 수많은 우주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을 그린다.
이 거대한 코스모스를 ‘다중우주(multiverse)’라고 한다[‘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중우주론은 수십 년 만에 가장 열띤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물리학계를 양 극단으로 갈라 놓고 있다. 한쪽에서는 현실 이해의 업그레이드된 단계(the next phase in our understanding of reality)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상력이 지나친 이론가들이 만들어낸 졸렬한 모조품(a travesty born of theoreticians letting their imaginations run wild)으로 완전히 터무니 없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을까? 또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나? 그 답을 찾으려면 먼저 빅뱅 이론부터 이해해야 한다(we first come to grips with the big bang).
빅뱅의 순간을 찾아라! 아인슈타인은 1915년 그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을 발표했다. 중력(force of gravity)을 이해하려는 10년 연구의 결정판이었다. 그 이론은 수학적 아름다움의 경이였다(a marvel of mathematical beauty). 행성의 운동부터 항성이 발하는 빛의 궤도까지 모든 것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정식(equations)을 제공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고 몇 년 뒤 과학자들은 그 공식을 이용한 수학적 분석을 통해 우주공간 자체가 팽창해 각 은하계가 서로 멀어져 간다(space itself is expanding, dragging each galaxy away from every other)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이 가져온 이런 놀라운 결과를 처음엔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1929년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의 우주 관측으로 팽창 사실이 확인됐다. 과학자들은 만약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각 현시점 바로 이전에는 늘 우주의 크기가 더 작았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렇다면 먼 과거의 한 순간에는 지금 우리가 보는 모든 것(모든 행성, 항성, 은하계, 심지어 우주 공간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지극히 작은 하나의 점(an infinitesimal speck)으로 압축돼 있었을 것이고, 거기서 점차 외부로 팽창해 현재 우리가 아는 우주로 진화했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거기서 빅뱅 이론이 탄생했다. 그후 몇 십 년 동안 빅뱅 이론은 수많은 관측 자료에 의해 입증됐다. 그러나 빅뱅 이론에는 한가지 중대한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 최초의 우주 폭발 자체가 그 이론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Of all things, it leaves out the bang).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최초의 폭발 직후 우주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는 멋지게 설명해 주지만, 우주 시초의 극한적인 환경에 적용했을 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1을 0으로 나누려 할 때 계산기에 오류 메시지가 뜨는 것과 비슷하다. 빅뱅 이론은 그 최초의 폭발이 왜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단서조차 제공하지 못한다(The big bang thus provides no insight into what might have powered the bang itself).
인플레이션 우주론1980년대에 이르러 물리학자 앨런 구스는 빅뱅 이론을 한층 더 발전시킨 ‘인플레이션 우주론(inflationary cosmology)’을 내놓았다. 핵심은 가상의 우주연료(hypothetical cosmic fuel)다. 이 연료가 우주 공간의 아주 작은 영역에서 농축되면 짧지만 엄청난 외부 돌진을 일으킨다. 그것이 바로 ‘빅뱅’이다. 수학적 계산에 따르면 그 폭발은 너무도 강해 양자 영역(quantum realm)의 작은 순간적 흐트러짐이 엄청나게 증폭돼 우주공간 전체를 뒤덮을 수 있었다. 신축성이 뛰어난 합성섬유 스판덱스를 지나치게 잡아당기면 직조 무늬가 드러나듯이 이런 폭발은 극소 온도 변화(miniscule temperature variations)의 정확한 패턴을 드러내 온도가 약간 높은 부분과 약간 낮은 부분을 뚜렷이 보여준다. 1990년대 초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배경복사 탐사선(COBE)이 이런 온도 변화를 처음으로 탐지했다.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빛으로 우주탄생을 설명하는 빅뱅이론의 강력한 증거로 추정된다. 그 연구의 성과로 존 매더와 조지 스무트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놀랍게도 그 수학적 분석은 우주가 팽창하면서 우주연료가 저절로 재충전되며, 충전이 너무도 효율적이라 연료가 고갈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도 보여주었다(as space expands the cosmic fuel replenishes itself, and so efficiently that it is virtually impossible to use it all up). 다시 말해 빅뱅이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닐지 모른다는 뜻이다. 바로 여기서 다중우주론이 등장한다. 그 연료가 빅뱅의 에너지를 제공해 지금 우리의 팽창하는 우주 영역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빅뱅도 일으켜 각각 독자적으로 팽창하는 우주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우주는 다중우주라는 거대한 거품탕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팽창하는 거품일 것이다(Our universe would then be a single expanding bubble inhabiting a grand cosmic bubble bath of universes—a multiverse).

아주 놀랍고도 매혹적인 이론이다. 만약 옳다면 오랜 우주 재평가의 노력에서 최고의 업적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If correct, it would provide the capstone on a long series of cosmic reappraisals). 우리의 우주 지식은 끊임없이 수정돼 왔다. 오래 전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지구는 태양의 궤도를 도는 여러 행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다음에는 태양도 우리 은하계에 존재하는 항성 수천억 개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그 다음에는 우리 은하계가 우주에 존재하는 수천억 개의 은하계 중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수많은 은하계, 항성, 행성으로 가득한 우리의 우주가 거대한 다중우주 안에 거주하는 수많은 우주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나 1980년대에 선구적인 물리학자 안드레이 린데와 알렉산더 빌렌킨이 다중우주 가설을 제시했을 때 학계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the community of physicists shrugged). 다른 우주 여럿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 우주들은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영역의 밖에서 존재하며 우리는 우리의 우주에만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우주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우리도 그 우주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우주들이 우리의 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다. 우리의 과학은 우리가 보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전념하는 학문이 아닌가(a discipline devoted to explaining what we do see)?
그런 상태가 약 10년 동안 유지되던 중 한가지 놀라운 천문학적 관측이 의문을 풀어줄 만한 단서를 제공했다(And that’s where things stood for about a decade, until an astounding astronomical observation suggested an answer).
암흑에너지의 수수께끼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의 발견은 참으로 혁명적이었지만 그 팽창에서 거의 모두가 당연시한 측면이 있었다. 지구의 중력(gravitational pull) 때문에 하늘을 향해 던진 공이 높이 오를수록 속도가 떨어지듯이 각 은하계가 서로 미치는 중력 때문에 우주의 팽창 속도가 줄어들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1990년대 들어 두 팀의 천문학자가 우주의 팽창속도 감소율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진 은하계들을 수년 동안 관찰하면서 우주의 팽창속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 분석이 끝나고 그들 모두 큰 충격에 휩싸였다. 두 팀 모두 우주의 팽창속도가 줄어들기는커녕 약 70억 년 전 증속구동되기 시작한 이래 계속 가속되고 있다(the expansion of space went into overdrive about 7 billion years ago and has been speeding up ever since)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늘로 던진 공이 처음에는 속도가 약간씩 줄어들다가 갑자기 훨씬 더 빨리 치솟는 식이다.
세계의 과학자들은 그 가속 현상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모든 은하계를 갈수록 더 빨리 서로에게서 멀어지도록 밀쳐내는 힘이 무엇일까? 가장 유망한 해답은 아인슈타인의 옛 아이디어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중력이라고 하면 흔히 한가지 일만 하는 힘으로 생각한다. 각 물체를 서로 잡아 당기는(pull objects toward each other) 인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중력이 물체들을 서로 밀쳐내도록 만들기도 한다(it can push things apart).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달, 지구, 태양 같이 익숙한 물체에서 나오는 중력은 물론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우주에 다른 무엇이 있다면, 예를 들어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다면(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 보이지 않는 분무처럼), 그 에너지 분무에서 나오는 중력은 서로를 밀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에너지의 척력(repulsive gravity, 서로 밀어내는 힘)은 우주의 팽창속도가 증가했다는 관측 결과를 설명하는데 긴요한 이론이었다.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분무의 척력이 모든 은하계를 서로에게서 더 멀리 밀어낸다. 우리는 그 힘을 암흑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른다. 그 때문에 우주의 팽창속도는 느려지지 않고 더 빨라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다. 우주의 팽창속도를 그처럼 높이려면 얼마나 많은 암흑에너지가 우주의 곳곳에 스며들어야 할까? 천문학자들이 그 밀도를 추론하자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숫자가 나왔다. 적절한 단위로 표현했을 때 암흑에너지의 밀도는 너무도 낮았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38.
동시에 연구자들이 암흑에너지의 양을 물리학 법칙으로 계산한 결과 계산차수가 100배 정도 크게 나왔다(a hundred orders of magnitude larger). 과학사에서 관측과 이론 사이의 가장 큰 격차였다.
그로 인해 과학계의 자기반성(soul searching)이 시작됐다.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은 연구와 실험과 계산을 부지런히, 그리고 충분히 하면 우리 우주 현실의 기본적인 구성과 관련된 세부 사항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었다. 물론 아직 설명되지 많은 세부 사항이 많다. 전자(electron)와 쿼크(quark) 같은 기본 입자의 질량(mass) 같은 문제가 그 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가 되면 물리학자들이 그 설명을 찾을 것으로 우리는 기대한다.
그런데 암흑에너지의 양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크게 실패하면서 바로 그런 자신감에 의문이 제기됐다. 그래서 일부 물리학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추구하게 됐다. 그 이론도 역시 다중우주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한다.
왜 다중우주론인가?이 새로운 접근방식의 과학적 뿌리는 16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위대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려고 고민했다. 왜 하필 1억4966만㎞일까? 케플러는 오랫동안 이 거리를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보면 그 이유는 자명하다. 지금 우리는 은하계에 행성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안다. 행성은 각각 다양한 거리에서 주인 항성의 궤도를 돈다. 거기서 케플러의 탐구에 오류가 생겼다. 물리학의 법칙은 특정 거리를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the laws of physics do not single out any particular distances as special).
지구-태양 거리가 주는 특별한 의미는 생명체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it yields conditions hospitable to life)는 사실뿐이다. 우리가 태양에 더 가까이 있거나 더 멀리 있다면 극단적인 온도 때문에 우리 같은 생명체가 발 붙이지 못한다. 따라서 비록 태양-지구 거리의 근본적인 설명을 찾으려는 케플러의 시도는 부질 없었지만 우리 인간이 그런 거리에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분명히 있다.
암흑에너지의 가치(양)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도 어쩌면 우리는 케플러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최고 우주이론인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자동적으로 다른 우주들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거리에서 항성의 궤도를 도는 행성이 많듯이 암흑에너지의 양이 서로 다른 우주가 많을지 모른다. 따라서 물리학의 법칙으로 암흑에너지의 한가지 특정 가치를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특정 행성과 항성과의 거리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우리가 제기해야 할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측정한 암흑에너지의 특정 양을 가진 우주에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why do we humans find ourselves in a universe with the particular amount of dark energy we’ve measured)?
이 정도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질문이다. 암흑에너지가 우리보다 더 많은 우주의 경우 물질이 모여 은하계를 형성하려고 할 때마다 암흑에너지의 척력이 너무 강해 물질이 뭉치지 못하고 서로 멀리 떨어져 나가 은하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반대로 암흑에너지의 가치가 훨씬 작은 우주에서는 척력이 인력으로 바뀌어(the repulsive push changes to an attractive pull) 물질이 뭉치는 속도가 너무 빨라 그 충격으로 인해 붕괴되기 때문에 은하계가 형성되지 못한다. 은하계가 없으면 항성도, 행성도 없다. 따라서 그런 우주에는 우리 같은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다른 우주가 아닌 바로 이 우주에 존재한다. 우리가 해왕성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인간은 우리 같은 생명체에 적합한 환경에(where conditions are ripe for our form of life)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우주들을 관측할 수 없다고 해도 그 우주들의 존재는 분명히 과학적인 역할을 한다. 다중우주는 암흑에너지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된다(the multiverse offers a solution to the mystery of dark energy). 우리가 관측하는 암흑에너지의 양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다중우주론 지지자들은 개략적으로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학자는 이런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유치하며, 심지어 모욕적이라고(unsatisfying, silly, even offensive) 생각한다. 그들은 과학이란 ‘그냥 그렇게 생겼다(just so)’는 이야기가 아니라 확정적이고, 정확하며, 양적인 설명(definitive, precise, and quantitative explanations)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명하려는 특징이 현실의 모든 면에서 다양한 수학적 가치를 취할 수 있고 또 실제로 취한다면, 한가지 가치의 확정적인 설명을 추구하려는 생각은 잘못이다. 행성들이 어떤 거리에서 주인 항성의 궤도를 돌지 확정적으로 예측하라는 요구가 이치에 맞지 않듯이(가능한 거리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다중우주의 일부라면 암흑에너지의 가치를 정확히 예측하라는 요구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가능한 가치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중우주는 과학적인 방법을 바꾸지도 않고 설명의 기준을 낮추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제기했는지 재평가하도록 요구한다.
끈 이론 물론 이런 접근법이 성공하려면 다중우주의 다양한 암흑에너지의 가치들 사이에 우리가 측정한 바로 그 값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끈이론(string theory)’이 주목을 받는다.
끈이론은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unified theory)’의 꿈을 실현하려는 시도다. 모든 물질과 힘을 합쳐 하나의 수학적 융단으로 짜낼 수 있는 이론을 말한다. 1960년대 말 처음 만들어진 이 이론은 모든 기본입자의 깊은 내면에 아주 작은 끈 같고 진동하는 에너지 필라멘트가 있다(deep inside every fundamental particle is a tiny, vibrating, stringlike filament of energy)고 가정한다. 바이올린 줄마다 다른 진동 패턴이 서로 다른 음을 만들어내듯 기본 입자에 들어 있는 끈의 진동 패턴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자가 만들어진다는 이론이다.
끈이론의 선구자들은 엄격한 수학적 구조 때문에 확정적이고 테스트 가능한 단일 예측을 내놓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이론에 따른 세부적인 분석은 수많은 해답을 제시했다. 각각이 서로 다른 우주를 상징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현재 가능한 우주의 수는 10의 500승이다. 너무 큰 수라 비유나 이해를 불허한다.
끈이론 주창자들에게는 그 이론으로 유일무이한 우리의 우주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다중우주 옹호론자들에게는 끈이론이 제시하는 너무도 다양한 우주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한다.
내 발에 맞는 구두를 찾으려면 다양한 사이즈를 구비한 가게에 가야 하듯이 다양하게 갖춰진 다중우주에서 만이 특정한 암흑에너지 양을 가진 우리의 우주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단독으로는 목표에 못 미친다(On its own, inflationary cosmology falls short of the mark). 끊임 없는 빅뱅이 어마어마한 수의 우주를 만들어내겠지만 그중 다수는 비슷한 특징을 가질 것이다. 사이즈 5와 13은 많지만 내가 찾는 사이즈는 없는 구두가게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끈이론을 융합하면 다양한 우주가 넘쳐난다. 끈이론으로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우주가 인플레이션 우주론에 따른 잇따른 빅뱅으로 실제 우주로 만들어진다. 우리의 우주를 거기서 찾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100%다. 아울러 인간 같은 생명체에 필요한 특징 때문에 바로 그 우주에서 우리가 산다.
위험이 큰 모험 과학
수년 전 칼 세이건은 특이한 주장은 특이한 증거를 필요로 한다(extraordinary claims require extraordinary evidence)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우주들의 존재를 주장하는 이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확보될 수 있을까?
다른 우주들은 우리의 관측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그 답변은 ‘아니오’인 듯하다. 그럴 경우 다중우주는 과학의 범주 밖에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성급한 판단이다. 하나의 제안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그 중요한 특징의 일부에 접근이 불가능하더라도 확보될 수 있다(Evidence for a proposal can be amassed even when some of its important features are inaccessible).
블랙홀을 예로 들어 보자(Take black holes). 블랙홀에서는 어떤 물질도, 심지어 빛도 탈출할 수 없기 때문에 관찰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흔히 과학자들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블랙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 있게 설명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당화될 수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처럼 한가지 이론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경우 우리는 관측할 수 없는 현상에 같은 이론을 적용해 예측하는 데도 자신을 갖는다.
다중우주론의 토대가 되는 이론들은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우리 우주의 물질에 관해 정확한 예측을 해준다. 거기서 우리가 자신을 얻을 수 있다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인 다른 우주들에 대한 예측에도 정당하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이 문턱을 넘어서기까지는 한참 멀었다.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우주배경복사를 정확하게 예측해 주며, 암흑에너지는 우주팽창의 가속화된 속도를 정확히 설명해 준다. 그러나 끈이론은 아직 가정에 머물러 있다(But string theory remains hypothetical). 현대의 가장 강력한 가속기를 이용한다고 해도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보다 수십억 배 작은 차원에서 그 주된 특색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중우주의 더 직접적인 증거는 우리의 팽창하는 우주와 이웃 우주들 사이에서 잠재적인 충돌이 일어날 때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우주의 접촉사고(fender bender)는 우주배경복사에서 온도 변화의 추가적인 패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정교한 망원경이 언젠가 탐지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바로 그것이 다중우주의 증거를 찾는 가장 유망한 가능성으로 간주된다.
물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다중우주론을 테스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은 그 기원이 신중한 수학적 분석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제안은 분명히 잠정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건전한 회의를 갖고 접근해야 하며, 그 설명적 틀도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뉴턴의 머리 위에 사과가 떨어졌을 때 중력의 법칙을 발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상상해 보라. 단지 어떤 사과는 아래로 떨어지고 어떤 사과는 위로 떨어지며, 아래로 떨어지는 사과를 우리가 보는 것은 위로 떨어지는 사과들이 외계로 날아가버린 지 오래됐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고 상상해 보라. 경박한 비유로 들리지만 요점은 진지하다(The example is facetious but the point serious). 다중우주론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면 과학자들이 더 심도 있는 설명을 찾지 않아도 되는 핑계(a cop-out that diverts scientists from seeking deeper explanations)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다중우주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은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케플러식의 쳇바퀴를 돌 수 있다(treadmill in which they furiously chase answers to unanswerable questions).
이 모든 점을 종합해 보면 다중우주론은 고위험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the multiverse falls squarely in the domain of high-risk science). 앞으로 다중우주를 고려하려는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는 사건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마침내 올바른 암흑에너지 가치를 계산해 낸다든가, 단일 우주만 만들어내는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확인한다든가, 끈이론이 가능한 우주의 보고를 지탱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할 경우 등이 그렇다.
그러나 합리적인 내기가 원래 그렇듯이 위험이 클수록 보상도 크다. 지난 5세기 동안 우리는 관찰의 힘과 수학적 계산을 사용해 갖가지 오해를 불식시켰다(we’ve used the power of observation and mathematical calculation to shatter misconceptions). 진기하고, 작고, 지구 중심적인 우주에서 수십억 개의 은하계를 가진 거대한 우주로 이동한 여정은 신이 나면서도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었다(both thrilling and humbling).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신성시되는 믿음을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다(We’ve been compelled to relinquish sacred belief in our own centrality). 그러나 그런 우주적인 격하(cosmic demotion) 덕분에 우리는 인간 지식의 역량이 일상적인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어 특이한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다중우주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여정에서 그 다음 단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거대한 우주 풍경을 채우는 놀라운 우주들의 파노라마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가능성 때문에 일부 과학자는 다중우주론의 높은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중 하나다.
[필자는 컬럼비아대 교수로 이론물리학의 대가다. 근저로 다중우주 이론을 설명한 ‘멀티 유니버스(The Hidden Universe)’가 있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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