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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ss] 런던의 마지막 왈츠?

[compass] 런던의 마지막 왈츠?

하계 올림픽을 보러 런던을 방문할 계획이 라면 조셉 로스의 ‘라데츠키 행진곡’(1932)을 읽어두는 게 좋겠다. 요즘 런던은 19세기 말의(fin-de- siecle) 빈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좋은 측면과 나쁜 측면 모두 그렇다.

100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이끌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82세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올해로 즉위 60주년(Diamond Jubilee)을 맞는다. 86세의 나이에도 활기가 넘치는 그녀는 요제프 황제와 마찬가지로 ‘불멸(immortality)의 통치자’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지난주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식(다음달 절정에 이른다)의 예행연습을 하는 군악대의 모습을 지켜봤다. 곰가죽 모자를 쓰고 선

홍색 상의를 입은 군악대원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예행연습 탓에 도로가 막혀 자동차 안에 앉아 있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각국의 국방비 지출이 대폭 삭감되는 마당에 영국은 어떻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군악대를 유지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노동당 출신의 전임 총리들이 늘려놓은 재정적자와 씨름하느라 ‘긴축(Austerity)’을 모토로 삼아 왔

다. 하지만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에선 긴축의 기미라곤 찾아볼 수 없다. 왕실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6월 3일에는 “템즈강에서 여왕이 탄 왕실 선박이 다른 선박 1000척의 호위를 받으며 강을 따라 수상행렬을 펼친다.”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의 공식 명칭)은 유럽 강대국 대다수가 왕조의 통치를 받는 다민족 제국이었

던 시절의 잔재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호헨졸레른 왕조, 오스만 왕조, 로마노프 왕조와 함께 몰락했다.

네덜란드나 스페인 등의 덜 알려진 왕조들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작스-코부르-고타(윈저의 구칭, 독일식이라는 이유로 개칭됐

다) 왕조는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사치를 누리던 1914년(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왕실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로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마지막 허세를 묘사했다. 이 왕조는 크로아티아인과 체코인, 헝가리인, 그리고

슬로베니아인들의 편협한 민족주의 때문에 몰락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스코트랜드인들이 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준비 중이다. 다

음은 웨일스인들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 1912년 당시 빈의 또 다른 특징은 신문의 과장된 보도 스타일이었다.

주로 유명인사의 추문을 보도하면서 그들을 얕보고 훈계하는 듯한 논평을 달았다. 당대의 풍자가 카를 크라우스는 빈에서 발행되는 ‘신 자유 신문(Neue Freie Presse)’의 위선을 끊임없이 조롱했다. 그가 현재 레베슨 위원회에서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전화 해킹 사건을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신이 났을 법하다. 이들 신문은 남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대중의 호기심을 불법적으로 충족시키려 한 세상에서 가장 부도덕한 뚜쟁이들이다.

또 100년 전 빈과 마찬가지로 요즘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도시 중 하나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국 소설가는

이언 맥이완이고 제일 좋아하는 미술가는 프랜시스 해멀이다. 또 가장 인기있는 오페라 하우스는 코벤트 가든이다.

하지만 요즘 런던에선 1912년 빈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천재성이 치명적인 포퓰리즘과 공존한다. 당시엔 어떤 일이든 그 주체가 ‘유대인인지 아닌지’가 판단 기준이 됐다. 요즘은 무슬림 이민자 사회에 대해 똑같이 위험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출신의 남자 9명이 여자 미성년자 수십 명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로크데일 같은 도시에서 이런 인식

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편 극우정당인 영국국민당(BNP)은 요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00년 전 유럽은 제국의 쇠퇴와 민족 갈등, 경제 불안정으로 분열됐다. 걱정스럽게도 오늘날 영국에 그 세 요소가 모두 존재한다. 최근 우리는 미국 금융기관에 큰 손해를 입힐(blow a large hole) 장소를 찾는다면 런던이 제격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2008년엔 AIG가, 올해엔 JP모건 체이스가 런던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 JP모건 체이스는 CDX.NA.IG.9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신용부도스와프(CDS)에 잘못 투자해 최소 20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 이 대규모 거래로 ‘런던 고래(London Whale)’라는 별명을 얻은 책임자의 이름은 브루노 익실로 합스부르크 왕가를 연상케 한다.

현재 영국 경제는 유럽 대다수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중침체에 빠져 있다. 지난주 영국은행은 경제성장 전망을 다시 한번 하향 조정했다. 영국은 다행히 유로존에 속하진 않지만 그리스 위기가 유럽통화동맹(EMU)의 전면 해체로 이어진다면 상황은 한층 더 안 좋아질 것이다. 카를 크라우스는 합스부르크 왕조가 이끄는 오스트리아를 “세계 파괴의 실험실”로 묘사했다.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지만 윈저 왕조가 이끄는 영국도 언젠가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진 않을까?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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