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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약 빅뱅] 비아그라 물질특허 만료 복제약 전쟁 전초전

[복제약 빅뱅] 비아그라 물질특허 만료 복제약 전쟁 전초전



국내외 제약업계를 뒤흔든 신약인 비아그라의 물질특허가 5월 17일 만료됐다. 이에 따라 3000억원에 달하는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에 ‘빅뱅’이 시작됐다. 국내 제약사들이 앞다퉈 비아그라 제네릭(복제약)을 출시했거나, 준비 중이다. 복제약은 당장 손 쉽게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유명 고혈압·백혈병 치료제 특허가 3년 안에 풀리면 제약업계는 또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제약업계는 리베이트 근절과 약가 인하라는 악재를 만나 휘청대고 있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대형 제약사는 신약개발로 비상구를 찾고 있다. 비아그라 특허만료를 둘러싼 국내 제약업계의 현주소를 짚어봤다.‘사랑의 묘약.’ 세상에 처음 나온 먹는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PDE5 억제제)의 별칭이다. 로맨틱한 별칭을 가진 비아그라는 실제 인류의 성에 대한 인식까지 바꿔 놓았다. 섹스에서 소외된 수많은 노인이나 발기부전 환자의 욕구를 해소시켰다. 삶의 질을 높인 약, 길어진 노년까지 청춘을 만끽하게 만들어준 약. 비아그라는 발기부전치료제의 대명사이자 말 그대로 ‘사랑의 묘약’이다.

제약업계에서는 돈이 되는 신약을 ‘비아그라같은 약’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시장을 단숨에 선점하고 오랫동안 수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아그라 이전까지 이렇게 많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신약은 없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만든 비아그라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 시장에서 승승장구 해왔다. 1999년 국내 첫 출시 이후 13년 동안 발기부전치료제 시장 처방량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08년까지 전 세계 120개국 3500만명 이상의 남성이 비아그라를 복용했다. 10년간 총 18억정, 1초당 6정이 판매된 ‘수퍼신약’이다. 한국의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매년 10%씩 성장해 지난해 1000억원을 돌파했다. 비공식 유통경로와 블랙마켓(암시장)까지 합하면 한 해 3000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묘약의 물질특허가 5월 17일 풀렸다. 복제약 기술이 뛰어난 한국의 제약사들은 이 날을 기다려왔다. 성분이 비슷한 또 다른 이름의 ‘비아그라’를 시장에 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리베이트 근절과 약가 인하 등으로 업황이 악화된 국내 제약업계는 비아그라 제네릭을 위기탈출의 돌파구로 삼고 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시판 허가를 받은 비아그라 제네릭 의약품은 15개사 28개 품목이다. 이 중에서 CJ제일제당의 ‘헤라그라’, 일양약품 ‘일양실데나필’, 비씨월드제약 ‘실비에’, 대웅제약의 ‘누리그라’, 한미약품 ‘팔팔정’ 등 5개 제품이 5월 24일 현재 시장에 출시됐다.



비아그라 복제약 가격 경쟁 치열비아그라 제네릭 시판은 경제학적으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소수 독과점 상품이 점유하던 시장을 단숨에 28개 상품이 분점하기 때문이다. 제네릭 특성상 소비자들은 성분이 비슷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비슷한 성분의 약이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브랜드로 출시된 상황이다. 시장 분점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실제 비아그라 제네릭을 만드는 각 제약사간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성분은 비슷하니 가격으로 시장을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출시된 비아그라 제네릭 의약품 중 가장 저렴한 제품은 한미약품의 ‘팔팔정’으로 50mg 1정에 2500원이다. 비아그라 오리지널 가격이 1정당 1만2000원(실소매가 1만5000원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 4.8분의 1가격이다. 4월에 삼진제약이 허가 받은 해피그라세립50mg은 4000원에 출고됐다. 5월에 나온 CJ제일제당과 일동제약, 한미약품, 대웅제약이 내놓은 비아그라 제네릭의 50mg 기준 가격은 3000원 내외였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비아그라 제네릭 제품 가격을 2000원 이하로 책정하면 어느 제약사든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 시장진입을 앞둔 제약사들은 ‘팔팔정’ 이후 출시될 제네릭 상품 가격을 1정당 2000원~2500원 사이로 재조정 중이다. 가격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비아그라 제네릭의 재료가 되는 실데나필시트르산염은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가격이 거의 같다. 이 때문에 각 제약사들은 각자의 제네릭 상품의 마케팅 비용과 유통 마진 등을 최대한 줄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에서 출시된 비아그라 제네릭을 보면 효능을 좀더 높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성분이 같다면 효능을 더 높여야 상품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비아그라 오리지널이 정제형(알약)인 것과 달리 제네릭은 세립형(분말)으로도 나왔다. CJ제일제당의 ‘헤라그라’는 분말로 만들어 체내 흡수 속도를 높였다. 이외에도 입안에서 녹여먹는 필름형 제품도 출시될 전망이다.

현재 발기부전치료제 관련 제약업계 시장점유율은 비아그라 40%, 미국 릴리의 시알리스 33%, 한국 동아제약의 자이데나 20%, 나머지 기타 치료제 7% 수준이다. 공식적인 발기부전치료제 시장규모가 1000억원인 것으로 감안하면 비아그라는 최소 400억원 규모. 새로 나온 비아그라 제네릭은 1차적으로 이 400억원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아그라 제네릭이 오리지널 시장 점유율을 쉽게 뺏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는 “비아그라 오리지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에 비아그라 제네릭이 다른 발기부전 치료제 점유율을 잠식할 수 있다”면서 “혹은 의사 처방을 받지 않는 블랙마켓에서 가짜 비아그라를 대체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자이데나를 만드는 동아제약의 김용운 과장은 “제네릭의 실제 효능은 오리지널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비아그라 제네릭 상품은) 비아그라를 싸게 살 수 있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비아그라 오리지널의 점유율이 초기 다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자이데나는 비아그라와 달리 매일 먹는 치료제이기 때문에 비아그라 제네릭과 타깃이 달라 시장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비아그라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의사와 상담과 권유에 따라 약을 선택한다. 의약계 한 관계자는 “비아그라 오리지널에 대한 의사들의 신뢰가 굳건하고, 제네릭에 대한 안정성 등에 대한 검증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비아그라 제네릭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3개월 가량은 점유율을 늘릴 수 있겠지만 결국 비아그라 오리지널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비아그라뿐만 아니라 특허가 만료돼 제네릭 의약품이 출시된 많은 전문의약품이 3개월 정도 시장에 충격을 준 뒤 판매가 중단되는 경우가 흔했다”고 덧붙였다.



끝나지 않은 특허 소송비아그라의 모든 특허가 완전히 만료된 건 아니다. 비아그라 특허는 물질특허와 용도특허로 구분된다. 의약품의 용도특허란 동일한 의약품에 새로운 효능이나 효과를 추가하거나 용법용량이 추가된 경우 발생한다. 화학적 방법에 따라 제조된 물질의 발명에 주어지는 물질특허와는 성격이 다르다. 식약청은 5월 17일 만료된 물질특허를 기준으로 비아그라 제네릭 시판을 허가했다. 반면 용도특허는 특허청에 걸려있고 2014년 5월 13일 만료된다. 비아그라 제네릭 제조에 뛰어든 대기업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지난해 5월 특허심판원에 용도특허의 범위를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화이자가 용도특허를 인정받는다면 현재 출시된 비아그라 제네릭은 모두 특허를 침해한 셈이 된다. 비슷한 소송이 진행된 미국에서는 2019년까지 화이자가 용도특허를 인정받았다.

국내 제약사는 현재 용도특허 범위를 놓고 특허청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특허청이 화이자의 손을 들어주면 현재 시판 중인 비아그라 제네릭 제조사는 큰 타격을 입는다. 화이자 측은 용도특허를 인정받게 되는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든 비아그라 제네릭에 대한 시장 진입을 막을 계획이다. 그러나 국내 제약사들은 용도특허 심판과 무관하게 발기부전치료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소송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제네릭 시판을 서둘렀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화이자가 적극적으로 용도특허 소송에 나서지 않은 것은 국내 제약업계가 쥐고 있는 국내 의약계 영업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화이자가 비아그라뿐만 다른 제품을 지속적으로 한국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선에서 국내 제약사와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3월 15일 발효된 한·미FTA도 비아그라 제네릭 산업과 직접 연관돼 있다. 협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용도특허를 인정받은 신약은 한국에서도 용도특허가 인정된다. 일부 변리사들은 한국의 비아그라 용도특허가 FTA 발효 이전 사안이라는 이유로 미국 특허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의 소송은 한·미FTA 이후 한·미간 첫번째 대형 특허 소송으로 향후 FTA 특허 관련 주요 판례가 될 수 있어 섣불리 결론을 예상하긴 어렵다.



특허만료를 앞둔 대형 신약 수두룩비아그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제약기업에서 만드는 주력 신약의 특허 만료가 연이어 대기 중이다. 국내 제약사의 제네릭 산업도 특허만료 스케줄에 따라 더 분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화이자의 폐렴치료제 ‘프리베나’ 등 4종의 특허가 만료됐고 오는 9월 과활동성방광치료제 ‘데티롤’, 2014년 항류머티스제 ‘엔브렐’이 특허만료를 앞두고 있다. 프리베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의사와 언론으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는 폐렴구균 질환의 예방백신이다. 특히 폐렴구균 질환이 5세 미만 아동의 가장 큰 사망원인으로 알려지면서 영유아라면 누구든 맞는 주사제로 유명해졌다.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 40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린 약이다.

노바티스는 고혈압치료제 ‘디오반’과 ‘엑스포지’를 9월에,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을 2015년 7월에, 호르몬분비억제제 ‘산도스타틴’을 2015년 11월에 특허가 만료된다. 혈압을 낮추는 강압제인 디오반은 매년 세계적으로 25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약이다. 고혈압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요가 꾸준하다. 디오반 제네릭이 나오면 고혈압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글리벡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약이다. 하지만 한달 약값이 무려 300~450만원이 넘을 정도로 비싸다. 노바티스는 이 약을 1정에 2만5005원씩 받고 있다. 백혈병 환자와 가족들은 줄기차게 글리벡 약가 인하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노바티스는 글리벡으로 매년 9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유지하면서 약가 인하를 거부해왔다. 백혈병 환자들은 글리벡 특허가 만료돼 제네릭 약이 시중에 풀리길 고대하고 있다. 보령제약은 보다 근접한 글리벡 제네릭을 만들기 위해 노바티스를 상대로 지난해 글리벡 조성물 특허 무효심판을 청구해 소송 중이다.

이 밖에 수많은 고급 치료제가 특허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들 치료제는 비아그라 못지 않은 매출을 올리는 약들로 2012년을 기점으로 연이어 특허가 만료된다. 비아그라 제네릭을 놓고 벌이는 국내외 제약사들간 긴장은 향후 이어질 또 다른 대형 신약 제네릭에 대한 전초전 격이다. 제네릭 시장의 ‘빅뱅’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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