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뮤지컬 ‘위키드’ - 선과 악의 편견을 넘어서다
[Culture] 뮤지컬 ‘위키드’ - 선과 악의 편견을 넘어서다
2003년 초연 이후 9년째 브로드웨이 공연 매출액 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블록버스터 뮤지컬 ‘위키드(Wicked)’ 해외 공연 팀이 내한한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오즈의 마법사’에는 도로시를 도와주는 착한 마녀 글린다와 서쪽의 사악한 나쁜 마녀 엘파바가 등장한다.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구분되는 두 마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인물이었다는 것이 ‘위키드’의 내용이다.
‘위키드’의 주인공은 나쁜 마녀로 알려진 녹색 마녀 엘파바이다. 작품 속의 엘파바는 녹색 피부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지만 독서를 좋아하고 정의감 있는 학생이다. 그에 비해 착한 마녀로 알고 있는 글린다는 꾸미기를 좋아하는 공주병 환자로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룸메이트가 된 둘은 오해 속에 거리를 두다, 특별한 경험으로 친구로 발전한다. ‘위키드’는 너무나도 다른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의 다른 점을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는 성장 스토리이다.
여기에 하나의 이야기가 추가된다. 바로 편견에 대한 것이다. 오즈의 세계에서는 동물들도 말을 하고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오즈의 마법사는 동물들에게 말하는 능력을 빼앗아 사육하려고 한다. 엘파바는 이를 알아내고 오즈의 마법사에 대항하자,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라고 모함한 것이다. 엘파바가 녹색 피부 때문에 따돌림을 받았던 것처럼 작품은 우리가 가진 선과 악으로 나눈 것이 얼마나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나눴던 원작을 비틀어서 다르다는 이유로 악으로 규정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담고 있는 주제는 이처럼 철학적이고 심오하지만 보여지는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다. 이것이 ‘위키드’가 오랜 동안 사랑을 받아온 이유이다. ‘위키드’는 진지한 이야기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의 겁쟁이 사자, 양철인간, 허수아비의 탄생 비화를 들려주어서 재미를 준다. “원래는 이런 거야”하며 그럴 듯한 비밀을 엿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6미터의 거대한 타임 드래곤이 연기를 내뿜으며 극이 시작하고, 거대한 버블 머신을 탄 글린다가 비누거품을 내뿜으며 등장한다. 오즈의 마법사가 사는 에메랄드 시티의 화려한 무대와 엘파바가 순식간에 지팡이를 타고 공중 높이 솟아오르는 장면 등 화려한 볼거리를 지녔다. 특히 오즈의 사람들의 디테일과 과감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350벌의 의상은 패션쇼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갓스펠’의 작곡가 스티븐 슈왈츠의 음악은 클래식한 느낌과 팝을 넘나들며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한다. 특히 엘파바가 하늘로 솟아오르며 부르는 ‘중력을 넘어서(Defying Gravity)’는 모든 편견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을 담고 싶은 작품의 주제와 닿아있는 곡이다. 이 곡은 오디션장에서 지원자가 가장 많이 자유곡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미국 드라마 ‘글리’의 주인공이 이 노래를 불러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호주 배우들로 구성된 해외 투어 팀으로, 호주에서 최장기간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후 싱가포르를 거쳐 한국에 오는 프로덕션이다. 주인공들의 기량이 브로드웨이 배우들에 버금가는 캐스팅으로 구성되었다. 오픈런 공연으로 5월 31일부터 블르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볼만한 공연 3
남자 기생들의 절절한 사랑 ‘풍월주’최근 동성애 장르가 인기다. ‘M. 버터플라이’를 비롯, ‘쓰릴 미’, ‘헤드윅’, ‘라카지’ 등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풍월주’ 역시 그러한 팬들에게 어필하려고 기획된 창작뮤지컬이다. 소위 BL(Boys Love)이라고 하는 과거의 야오이 문화를 향유하는 팬층에 어필하기 위해 기획된 작품이다.
야오이 문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을 타깃으로 한 기획 작품인 만큼 공연장 관객들도 97% 이상이 여자 관객들이다. 7월 29일까지 컬처스페이스 엔유.
유년에 봉인된 기억 속으로 ‘블랙메리포핀스’ ‘메리 포핀스’와는 메리라는 유모가 등장한다는 것 이외에는 상관이 없다. 1926년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라첸 슈워츠 박사의 저택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박사는 네 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는데, 유모인 메리가 화상을 입어가며 이들을 구해냈다. 이들은 다른 가정으로 재입양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12년이 지난 어느 날 박사의 수첩이 발견되면서 사건이 다시 부각된다.
그들이 12년 만에 다시 모였는데 놀랍게도 어느 누구도 화재가 일어난 날의 기억이 없다. 메리는 화재의 용의자로 재수사를 받게 되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날의 일을 묻어두려고 한다. 작품은 그날의 기억을 향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면서 아픈 기억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뮤지컬에서는 보기 드문 ‘심리 추리 스릴러’ 형식을 추구하며 밀도 있게 사건을 전개한다. 누가 화재를 냈느냐를 쫓아가던 이야기는 과연 그날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로 질문을 옮겨가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충분히 어필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정상윤, 송상은, 강하늘, 김대현 등 뮤지컬계에서 최근 주목 받는 젊은 배우들이 총집결했다. 7월 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1관.
가족애가 느껴지는 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작년에 대구에서 처음 선보인 후 훈훈한 감종을 전하는 토종 뮤지컬의 힘을 보여준 ‘식구를 찾아서’가 재공연한다. ‘식구를 찾아서’는 뮤지컬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대구 팔현마을에서 홀로 가축들을 키워며 살아가는 박복녀 할머니 집에 무턱대고 지화자 할머니가 찾아와 이곳이 자신의 아들 집이라고 우긴다. 이유인 즉, 요양원으로 온 아들의 편지 주소가 바로 박복녀 할머니 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새침데기 소녀 같은 지화자 할머니와 억세지만 속정 깊은 박복녀 할머니는 푸닥거리며 싸우다 정이 들어 함께 아들을 찾아 나선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함께 식사를 하고 정을 나누면 그것이 식구가 아닌가. 아들이 지화자 할머니를 요양원에 버리고 도망간 사연이 밝혀지지만 새로운 식구를 구성한 지화자 할머니는 박복녀 할머니가 있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박복녀 할머니가 키우는 개 몽, 고양이 냥, 닭 꼬는 늘 배고픔을 호소하며 시끌벅적 세상 사는 느낌이 들게 한다. 사람들이 없으면 자신들의 기구한 운명을 들려주는 세 가축들의 쇼가 웃음을 준다. 6월 24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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